샛길-수도 이전 관련 헌재 판결에 대해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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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헌법재판소 결정이 너무도 중차대한 듯해서 글을 씁니다. 헌재 결정 이후 언론의 보도를 보니 한 가지 큰 의문이 듭니다. 마치 어제 헌재 결정이 수도 이전이 부당하다는 쪽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도가 되는데, 이는 명백한 오해라도 보입니다. 어제 헌재가 한 것은 수도 이전의 절차에 관한 판단이었지, 수도 이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즉 절차적으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으로 판단내렸을 뿐이지, 수도 이전에 대한 현 정부(넓게는 입법부)의 추진 의사가 잘못 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니며, 헌재는 그 추진 의사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거나 규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오늘의 헌재 판단이 설혹 어느 정파에 유리하다하여, 찬성하거나 반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마치 4/15 총선 이전에는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다가, 4/15 총선 이후에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럼 이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기준이 아주 중요합니요. 바로 헌법 정신이요, 헌법이요, 법인 것입니다.

어제 헌재 결정을 보면서 저는 혼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사회가 성문 헌법 사회라고 교육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원리에 따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헌재 판결을 보고, 저는 대한민국 국적법에 따른 저의 대한민국 국적까지 의심하게 됐습니다. 관습법에는 명백한 규정이 없는데...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정권도 갖고, 투표 행위도 해왔는데 대한민국은 일제 시대 이후 태어난 나라입니다. 헌법 어디에도 대한민국은 대조선국을 계승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기왕 국가 또는 국민의 정체성 이야기가 논란이 되고 있으니, 저는 조선 사람인가요 대한민국 국민인가요. 헌재는 일제 시대 때에도 서울이 수도였다고 주장하는데, 시공간을 초월한 이같은 판단에는 그저 아연할 뿐입니다. 관습법에 따르면, 고구려 강역이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럴 경우, 대통령의 영토 수호 의무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됩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번 헌재 결정을 통해 새로 추가된 관습헌법을 포함한)헌법을 수호하고, 영토를 보전을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차제에 이것도 미적거릴 것이 아니라 관습헌법의 정신에 기초해 헌법 전문에 관련 조항을 삽입하는 국민 투표를 실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헌재가 경국대전을 들먹거리려면, 적어도 헌재가 경국대전으로부터 물려받은, 곧 (관습 헌법으로 이해되는) 권능과 권위, 또는 헌법적인 정통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헌재도 헌법 기관이고, 대통령도 헌법 기관이고, 국회도 헌법기관입니다. 그런데 저의 법 상식으로는 헌재는 최고의 법률 판단 기구이고,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는 법의 집행 기관이고, 국회는 입법 기관입니다. 헌재에게 부여된 권한은 법 중에서도 최고법인 헌법(그것도 성문화된 헌법)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런데 성문 헌법의 나라에서 판단할 성문 헌법하의 근거가 없으니 관습 헌법도 인정하자? 논의 그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현재의 성문 헌법 근거 하에 탄생한 헌재가 단독으로 그걸 주장할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도 권력일진대 '거기까지만 판단하고, 판단할 근거가 없으면 근거를 만들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력도 국민에게 있습니다. 헌재가 판단할 것은 바로 그것까지 인 것이 성문법 체계 하의 헌재의 권한인 것으로 저는 생각됩니다.

'수도 이전'은 제가 보기에는 통치 행위에 관한 사항입니다. 그런데 현행 헌법 규정 아래에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특정 통치 행위에 관한 사안을 국민 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헌재 결정은, 수도 이전을 위한 법적 근거를 헌법상의 사항으로 간주하면서, 수도 이전에 관한 국민의 찬반 의사를 물을 수 있는, 대통령의 재량권에 속한 사항까지도 '의무 사항'으로 정해버렸습니다. 이것은 성문 헌법상에 규정된 헌법 기관에 대한 중대한 권리 침해 행위로 받아들여집니다.

헌재는 '판단'이라는 고유의 헌법상 행위를 넘어서서, 중대한 다른 헌법 기관의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까지 침해하는 월권 행위를 저지른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 경우, 누가 옳은가는 누가 판단합니까. 바로 국민이 판단합니다. 그럼 그런 판단을 하려할 때 헌법상에 보장된 제도화된 절차는 무엇인가. 바로 국민 투표이거나, 헌법을 수정 또는 개정하거나, 그런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월권 행위를 한 헌재에 대한 탄핵입니다.

권력의 배분과 행사에 관한 한, 현재의 헌법이 반영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원리 또는 정신은 무엇일까요. 바로 3권 분
립입니다. 헌재는 이번 판결에서 대통령의 재량권, 즉 행정부에 주어진 권한의 행사 방식과 목록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3권 분립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헌법상 최고 권력 기관은 대통령도 국회도 아닌 헌재로 보입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헌재를 구성하는 재판관을 어떻게 뽑아야 할까요. 댱연히 국민의 직접 투표로 뽑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국회, 법원이 임명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동의하는 행위의 실효성은 이미 부정되었으니, 이 또한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논란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문제 없습니다. 조선 시대 경국대전을 따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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