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보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7.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족 문화의 정수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국보 가운데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라진 것들이 있다. 때로는 우리의 무관심으로, 때로는 전쟁의 참화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는 사라졌다.
정부는 1955년 6월 문화재보존위원회를 새로 개편하고 20명의 권위자들을 위원에 위촉해 문화재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고 무려 10년이 지난 시기였고, 한국전쟁이 끝난 2년 뒤였다.
그 결과 국보는 멸실(滅失) 3건, 소실(燒失) 6건, 분실(紛失) 7건, 전파(全破) 2건 등 모두 13건이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되었다. 멸실된 국보는 청화백자명(靑華白磁皿` 413호) 진사입도문명(辰砂入桃文皿` 412호) 관음사 금동관세음상(214호), 소실된 것은 개성 남대문(10호) 관음사 원통전(273호) 보림사 대웅전(240호) 안동문묘(302호) 진주 촉석루(276호) 송광사 백운당 및 청운당(404호), 파손된 것은 청자문함(靑磁文1371호) 상감합자(象嵌合子` 377호)였다.
국보 413호였던 청화백자명은 창랑 장택상씨 소유였는데 탐스러운 복숭아 셋을 배열하고 그 사이에 잎사귀를 그려넣은 조선 백자의 대표작이었다. 1950년 5월 국보특별전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는데 한달 뒤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불타없어졌다.
혼란기여서 희한한 일들도 많았다. 광주 증심사에 보관되어 있던 금동석가여래상(211호)와 금동보살상(212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주지 스님이 인근 경찰서에 보관시켰는데 그 뒤 자세한 경위로 모른 체 사라졌다.
반면 한국전쟁 와중에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 있었던 문화재도 있다. 현재 일본 천리대에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그것이다. 1952년 피난 시절 박물관 학예관으로 있던 최순우는 한 상인으로부터 80만엔만 있으면 몽유도원도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백낙준에게 연락했으나 "전쟁 중인데 어떻게 구입할 수 있겠느냐"는 답을 들었을 뿐이다. 그 뒤 최순우는 몽유도원도 이야기만 나오면 당시 구입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 했다고 한다. 몽유도원도는 1949년-1050년 후반에도 골동상 장석구 등이 판로를 찾아 한국을 오갔던 적이 있어 돌아올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