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와 국보-1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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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인물 이병각]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국보 23점(전체의 7%)과 보물 80점(전체의 6%)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국보와 보물 소장가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게 된 것일까요. 삼성가와 문화재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이회장도 많은 국보를 사들였지만 사실 삼성가와 문화재의 인연은 40년이 넘었습니다. 이회장의 선친인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초석을 닦았습니다. 삼성문화재단이 1995년 4월1일 펴낸 <문화의 향기 30년>은 고 이병철 회장과 문화재와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암은 30대 초반 대구에서 양조업을 경영할 때부터 이미 고서화나 신라토기,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등에 매료되어 수집을 시작해 점차 철물, 조각, 금동상 등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나이가 들면서는 민족의 문화 유산을 해외에 유출시켜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고미술품 수집에 더욱 정열을 기울였다. 호암이 수집한 골동, 서화는 1천점에 달하는 방대한 것이었고 그 중에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도 10여 점이나 되었다. 호암은 이들 문화재 전부를 호암미술관에 기증했다.’

호암은1968년 니혼게이자이신분에 기고한 글에서는 ‘내가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게 된 데는 선친의 영향이 컸다. 선친은 찾아오는 묵객들과 시 문답을 하곤 했다. 이런 환경이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서화나 도자기를 수집하는 길로 들어서게 한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수집품 자체보다는 그 물건으로부터 마음의 기쁨과 기의 조화를 구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삼성가와 국보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호암의 형인 고 이병각씨입니다. 이씨는 1960년대부터 골동품 수집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1966년 조선일보에는 이씨에 대해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혜화동에 본가를 두고 정릉도 별장에 이따금 거주하면서 정원과 응접실은 온통 골동품으로 장식했다. 몇 백년전의 토기로부터 동판, 불상, 금목걸이 등 그 수가 수백가지여서 박물관 못지 않다. 삼강유지 사장 자리를 그만두고 경주를 자주 오르내리며 골동품을 샀고 더러는 주문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골동계에서 이씨는 수집벽이 강한 이로 알려져 있고 값비싼 골동품을 산다는 소문은 호리꾼이면 누구나 안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 7월(66년 7월) 도굴꾼 윤아무개씨로부터 동불상 네 개를 20만원에, 김아무개씨에게서는 활석을 10만원에 샀다. 그는 또 수사망을 겁내어 도망온 도굴꾼을 이틀 동안이나 정릉집에 숨겨주었다.'

당시 이씨는 도굴꾼들이 훔쳐온 문화재를 대량으로 사들인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습니다.

또 삼성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순금으로 만들어진 가야금관으로 유일한 국보인 138호는 도굴꾼들이 도굴한 것을 이씨가 사들인 것입니다. 1973년 경북 달성군 현풍읍 유가면 유가동 속칭 '8장군묘'에서 3인조 도굴꾼이 도굴한 것을 대구의 윤명선이라는 사람을 거쳐 이병각씨에게 넘어갔고 이것이 다시 호암미술관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삼성가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가운데 이씨가 수집한 문화재도 많습니다.

삼성가와 국보의 관계를 거론할 때 이씨가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삼성가 입장에서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문화재 사랑은 널리 알리고 싶은 반면 이씨와 관련한 부분은 되도록이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이씨가 이처럼 '도굴' 등과 관련되어 있던 '불미스런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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