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와 국보-4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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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의 최대 구매자 이건희 회장]

2004년 12월6일 현재 개인적으로 국보를 갖고 있는 사람은 모두 20명이다. 이건희 회장이 23점으로 가장 많고, 일제 때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보존한 고 전형필 선생의 아들 전성우씨가 12점(간송미술관 소장)으로 뒤를 잇고 있다. 나머지 1~3점을 갖고 있는 인사들은 대부분 고미술 수집가들로 일반인에게는 이름이 낯설다.

단, 가천의료재단 이길녀 이사장이 국보 276호 초조본 유가사지론(初雕本 瑜伽師地論)을,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이 국보 284호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初雕本 大般若波羅密多經)을 갖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길녀 이사장은 보물 13점, 유상옥 회장은 보물 2점을 갖고 있다.

국보와 보물은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물론 사고 파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얼마에 사고 파느냐는 것도 순전히 당사자들이 어떻게 흥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매매가 이루어진 뒤 15일 안에 문화재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 세금도 없다. 그러나 외국에 국보를 파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또 전에는 국보를 대여·전시하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지금은 규제 완화 차원에서 없어졌다. 다만 국보의 이동 사유가 발생했다면 사후에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1년에 한 번씩 직접 국보가 있는 현장에 나가 보존 상태를 점검한다.

최근 4년 동안에도 여러 건의 국보 사고 팔기가 있었다. 역시 최대 구매자는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회장은 국보 241호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49(初雕本 大般若波羅密多經 卷二百四十九), 국보 243호 현양성교론 권11(顯揚聖敎論 卷十一), 국보 255호 전(傳) 충남 출토 청동방울 일괄, 국보 261호 백자호(白磁壺), 국보 286호 백자발(白磁鉢) 등 국보 5점을 사들였다. 이회장말고 이 시기에 국보를 사들인 개인은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이 유일했다.

이회장이 이들 국보를 사들이면서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고미술업계 관행상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들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와 견주어 보면 대략적인 추측은 가능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년에 두세 차례씩 유물 구입 공고를 내고 국보·보물 등 지정 문화재나 가치가 있는 비지정 문화재를 사들인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의 매매가는 최소 5억원이 넘는다. 금동불 같은 경우는 10억~20억 원을 훌쩍 넘기는 것이 보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건희 회장이 최근 4년간 국보 5점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은 적게 잡아도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지방 국립박물관에 이관된 국보를 제외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갖고 있는 국보는 40점이다. 이회장 혼자 소장한 국보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의 58%나 되는 것이다. 가히 ‘국보왕’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보물은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은 1백7점이다. 반면 이회장은 80점의 보물을 갖고 있다. 이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보물의 75%에 해당하는 양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회장이 소유한 국보와 보물은 모두 삼성미술관이 관리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처럼 ‘위탁 관리’를 하는 국보가 여럿 있다. 소장자는 분실이나 파손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관리하는 쪽에서는 문화재를 연구·전시하며 성가를 높일 수 있어 서로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위탁증서 한 장만 오갈 뿐 서로 돈을 주고받는 경우는 없다.

문화재 가운데서도 특히 분청사기에 관한 이회장의 안목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알기도 많이 알 뿐더러 자긍심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미술 평론가 이규일씨는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월간 10월호에 기고한 글에 1993년 1월 호암미술관에서 [분청사기 명품전]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분청사기를 위험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이회장이 “세계 어디 내놓아도 손색 없는 명품을 이렇게 애정 없이 함부로 다루는 것에 화가 치민다”라고 일갈했다고 적었다. 이회장은 도자기의 질이 좋고 나쁜 것은 물론, 대략 언제 만들어졌다는 것까지 알 정도로 안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회장은 또 삼성미술관에 있는 중요 문화재들의 사진 자료를 모두 갖고 있다. 이회장은 때때로 문화재의 특징과 규격 등이 세밀하게 적혀 있는 이 사진을 보며 안목을 키우는 것은 물론 실물을 자주 볼 수 없는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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