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사기꾼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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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탔다가 ‘과학적으로 당첨 확률이 높은 로또 번호을 계산해준다’라는 080전화서비스 광고를 봤다. 주변에서 로또 번호 고르기를 안내하는 광고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점가에서는 게일 하워드이란 여자가 썼다는 <로또마스터 >라는 책이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책 설명에는 “스마트럭 로또 시스템을 통해 당첨 확률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로또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규칙과 경향 분석, 균형조합 등 다각적이고도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로또 당첨의 꿈을 이루어준다”라고 쓰여 있다. 두께도 2백쪽이 넘어 뭔가 심오한 법칙이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정희용이라는 사람이 쓴 <엑셀로 끝내는 로또 당첨 공식>이라는 책을 보자. 책 소개란에는 “기존의 꿈해몽, 사주, 풍수, 별자리 등의 개인의 운에 의존한 증명되지 않은 분석법을 비판하면서 로또의 당첨번호를 수학적인 확률과 통계를 가지고 분석하면 일정한 패턴을 만들 수 있고 이 패턴을 이용하여 예상 당첨번호를 뽑아낼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참 답답한 일이다. 이들의 선전은 모두 거짓이기 때문이다. 이 로또 사기꾼들의 사기 행각에 대해서 이미 시사저널 629호에 기사를 쓴 적 있지만 여전히 이들 거짓말장이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로또 시스템에서 당첨확률이 높은 번호를 고르는 기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엑셀이든 뭐든 어떤 프로그램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들이나 경마 예상지를 사례로 들며, 로또 예상지가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토정비결이나 사주팔자는 어차피 모호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수학과 과학적 이론을 들먹이지 않는다. 경마 예상지의 경우 과거 기록의 데이타를 분석한 것으로 유용한 가치가 있다. 로또 복권은 경마와 달리 과거의 데이타는 미래의 추첨에 단 0.0000000000001%의 영향도 주지 못한다.

문제는 일반 대중 뿐 만이 아니라 전문가라는 사람까지 착각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로또 사업을 하는 회사 관계자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1,2,3,4,5,6 같은 번호가 당첨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라며 당첨 확률이 높은 번호를 조합하는 시스템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1,2,3,4,5,6 이 뽑히는 경우는 전세계를 통틀어도 휘귀한 경우다. 왜냐하면 당첨 확률이 8백만분의 일(45개 시스템에서)보다 작기 때문이다. 전 세계 로또 회사가 8백만 번의 추첨을 해야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그 어떤 다른 번호 조합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게일 하워드가 추천하는 그 번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단지 1,2,3,4,5,6은 ‘특별한’ 번호로, 4, 17, 23, 36, 39, 41 과 같은 번호는 ‘특별하지 않은’ 번호로 인식하는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로또 기계는 두 번호 조합에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1,2,3,4,5,6 같은 수가 당첨되면 분배하는 과정에서 내 몫이 줄어들 수는 있다. 1,2,3,4,5,6을 고르는 응모자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또 가이드 서적이 논하는 것은 분명 분배문제가 아니라 ‘당첨확률을 높이는 숫자’가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로또 마스터 >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거짓말을 유포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랬더니 출판사 관계자는 ‘통계학자들은 주로 그렇게 말하죠“라고 얼버무렸다. 파렴치한 변명이다. 로또 번호 가이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학계의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인 것처럼 수학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 후안무치한 회사는 이 후 <로또마스터 2>라는 책을 또 펴냈다. 뻔뻔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법이다.

이들 사기꾼들을 제어할 법적 장치가 없는 지 궁금하다. 광고를 보고 책을 산 사람이나 080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이 모여서 허위광고 명목으로 소송을 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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