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와 타지마할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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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을 보지 않고 인도를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타지마할을 본 뒤에야 나는 그 말 뜻을 이해했다. 델리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반 가량 걸린다. 델리서 새벽 6시부터 서둘렀더니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기 전에 아그라에 닿았다.

아그라는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짙은 고도(古都)여서 그런지 델리와는 색 다른 풍경이었다. 고층 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고, 혼잡하지 않은 도로에서는 소떼와 릭샤 그리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울렸다. 아그라에서 만난 인도(印度)에는 인도(人道)가 따로 없었다.

타지마할 반경 1킬로미터 안에는 매연을 뿜는 자동차나 릭샤가 갈 수 없다. 배기가스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이 손상될까 우려한 인도 정부의 각별한 애정 표현이다. 그래서 1킬로 밖에 따로 만들어 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도 정부가 제공하는 전기 버스를 타고 타지마할을 만나러 갔다.

인도인이 이 버스를 타면 차비로 4루피를 내야 하지만, 외국인은 공짜란다. 인도가 외국인을 배려할 때도 있나 싶어 감동하기도 전에 타지마할 입장료에 내 입이 쩍 벌어졌다. 내국인 입장료는 20루피 밖에 안 받으면서 외국인에게는 7백50루피를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바가지나 다름없는 입장료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그러나 뽀얀 대리석으로 도배한 타지마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순간 상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대리석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만을 샤자 한 왕이 직접 골라 건물에 썼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타지마할의 대리석은 아름다웠다.

입구에서 묘궁에 이르는 길 내내 길게 뻗은 인공 연못과 그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정원은 하얀 대리석의 타지마할과 아주 잘 어울렸다. 묘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건축물이 가장 아름답고 정확하게 보인다는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영국 다이애너비,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앉아서 기념 촬영을 했던 의자란다. 그래서 그 한 컷을 찍기 위해 20분 넘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묘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10루피를 내고 신발에 덧대어 신을 수 있는 빨간 헝겊 신발을 빌릴 수도 있다. 그런데 가뜩이나 미끄러운 대리석 위에서 헝겊 신발을 신고 걸으려니 자꾸만 미끄러졌다. 아이들은 아예 얼음판을 지치듯 미끄럼을 타고 다녔다.

묘궁 내부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다시 한번 나를 감동시켰다. 대리석마다 세밀하게 조각하고, 그 위에 분홍빛 홍옥과 푸른 벽옥, 아름다운 빛깔의 자개로 꽃과 꽃잎을 새겨 넣은 내부 벽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장인들이 22년에 걸쳐 지었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솜씨였다. 어느 곳에서도 허술함을 발견할 수가 없을 만큼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수를 놓았다. 1653년에 완성된 건축물이 마치 갓 지은 것처럼 산뜻하고, 그러면서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새 것에서 풍기는 경박함은 전혀 없었다.

묘궁 뒤 편에서 바라보는 야무나 강 풍경도 일품이었다. 델리에서부터 200킬로미터나 흘러 내려온 야무나 강변 풍경은 타지마할의 파트너로 손색이 없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가짜 관밖에 볼 수 없었다는 사실. 진짜 관은 지하에 모셔놓고, 1층에는 가짜 관만 놓았다. 왕비를 위해 지었기 때문인지, 중앙에는 뭄타즈 왕비의 관이 있고, 샤자한 왕의 관은 그 옆에 비켜서 있었다.

아그라에서는 타지마할 외에도 악바르 대제에 의해 1965년에 건축된 아그라 성을 볼 수 있다. 무굴 제국 권력의 상징으로 불리는 성이다. 타지마할이 수백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갓 지은 것처럼 산뜻했다면, 황토 빛깔의 아그라 성은 황폐한 옛 성의 모습이었다. 90여 년에 걸쳐 축조된 성이어서 아직도 웅장한 멋을 간직하고 있기는 하나, 버려진 성의 쓸쓸함이 풍기는 곳이다. 내 눈에는 아그라 성 그 자체보다는 여기서 보는 타지마할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 성에서는 타지마할이 마치 유유히 흘러가는 야무나 강의 수면에 오롯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그라 여행자들은 반드시 인도의 수도 델리를 거치곤 하는데, 델리에서 볼 만한 유적들도 적지 않다. 델리서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내 남쪽에 위치한 로터스 사원(바하이 사원). 사방이 탁 트인 넓은 잔디밭 한 가운데에 연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데, 그것이 사원 건물이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사원 내부는 단순하다. 속이 텅 빈 연꽃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는 커다란 홀이 전부였다. ‘모든 다양성의 포용과 조화’를 이념으로 하는 바하이교 사원답게 홀 내부에는 어떤 신상(神像)이나 벽화도 없었다. 오직 텅 빈 공간에 사람들이 고요히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의자만이 줄지어 있었다. 로터스 템플에서는 잘 다듬어진 넓은 잔디밭에 앉아 은빛 연꽃을 바라본 채 넋을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로터스 템플에서 현대 건축의 미를 감상한 뒤에는 올드 델리의 레드 포트를 찾아갔다. 무굴제국의 샤 자한 왕 때 축조된 이 성은 붉은 빛깔의 사암으로 만들어져서 ‘붉은 성’으로 불린다. 성 안에 넓은 뜰과 정원이 있지만 손질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디완에암, 대형 연꽃잎 조각, 왕좌, 욕실 등 성 내부에서는 과거 화려했던 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티벳 캠프 역시 델리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다. 티벳이 점령당할 때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곳에서는 값싸고 맛있는 티벳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 델리 한국 유학생들은 ‘꿩 대신 닭’이라고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면 찾아가는 곳이란다.

허름하긴 해도 우리 남대문시장처럼 정감이 가는 뒷골목에 레스토랑과 게스트하우스,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인도 음식에 물린 나는 이 곳에서 탕수육과 비슷한 ‘스윗앤핫포크’, 티벳인들이 좋아하는 야채 누들 ‘하꾸’, 그리고 ‘모모’로 불리는 만두를 먹어봤는데 하나같이 환상적인 맛이었다. 이 골목에서는 티벳인들이 손으로 만든 반지나 귀걸이, 털모자 등 싸면서도 이쁜 소품들을 천 원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이밖에도 델리 시내에는 락시미 사원과 후마윤 왕의 묘, 인디아게이트, 대통령 관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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