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교육 현장에 ‘선생님’이 없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3.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용·연극 수업 둘러싸고 ‘잡음’…‘현장 불만’ 못 챙겨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김 아무개씨는 지난해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쳤다. 김씨의 교안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학생들은 대가의 작품이라고 주눅 드는 법 없이 작품을 ‘확’ 바꾸어 놓았다. 학기 말이 되자 아이들은 직접 각색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제법 발성법까지 갖추어 연기하는 아이들을 보고 김씨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김씨는 연극 강사다. 김씨처럼 학교 현장에서 문화 예술을 가르치는 강사는 현재 줄잡아 1천5백 명에 이른다. 2000년 국악 분야에 처음 도입된 강사 풀(pool)제는 곧 연극(2002년)과 영화(2004년)로 확대되었고, 올해 무용과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에까지 적용되었다. 올해 여기에 할당된 예산은 총 100억원. 파견 강사 인건비 전액과 기자재가 지원된다.

  문화관광부(문화부)는 지난해 문화예술교육과를 신설하고 지원법을 준비하는 등 유례 없는 속도로 큰 틀을 짜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이다. 일단 문화계는 공교육 체계 안에 마당이 마련되는 것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 처음 강사풀제 적용을 받는 무용계는 올해를 ‘전환점’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김화숙 교수(무용교육발전추진위원회 공동대표)는 “40여년 동안 무용학과가 별도로 존재해 왔지만, 교직을 이수하고도 손에 쥐는 것은 체육교사 자격증이었다. 무용이 하나의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무용교육발전추진위원회에는 11개 학회와 11개 협회가 참여하고 있다. 무용계 전체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신설, 논란 분분 

 
우선은 마당을 넓혀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 때문에 쉬쉬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새로 창출될 ‘고용 시장’을 놓고 신경전이 한창이다. 지난해 벌어진 문화교육이냐, 예술교육이냐, 문화예술교육이냐 하는 논쟁이 그 예이다. 좋게 보면 교육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모색이지만, 달리 보면 공교육 마당 안에 펼쳐진 고용 시장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주도권 싸움인 셈이다.  
  물론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깊은 고민을 무색케 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 무용 강사 박 아무개씨는 수업 중에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한 학생이 ‘이런 것말고 진짜 춤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진짜 춤이 뭔데?” “왜, 스포츠 댄스 같은 거 있잖아요.” 

   예술 교육을 전공한 교직 이수자들과, 현장 예술가의 갈등도 잠복해 있다. 올해 초 연극 분야 강사 연수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이 예다. 연수 내용이 대학에서 배운 것과 많이 겹치자 교직 이수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교사 자격증을 갖춘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있는 마당에 왜 여전히 현장 연극인 위주로 짜이느냐는 것이었다.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추어 1999년 연극 영화·사진 분야에는 교직 과목이 신설되어 교직 이수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연극계 내부에서 강사풀제는, 막말로 수입이 변변치 못한 연극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일종의 ‘복지 정책’으로 이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요 경비도 교육부가 아닌 문화부 예산이다. 강사당 수업 시수가 크게 제한되어 있는 것도 혜택을 받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다. 현장 연극인들에게는 짬짬이 일을 할 수 있어 좋지만, 교직을 이수한 강사들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1년치 강사료가 수백만원에 불과해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문화부는 문화예술교육사라는 자격증을 도입해 직업적인 안정성을 꾀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제도야말로 논쟁이 분분하다. 교직 이수자들은 교사자격증을 갖고도 별도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또 교육사 제도가 자칫 교육부가 정식 교원을 채용할 기회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현장 문화예술인에게도 썩 내키는 제도는 아니다. 이들은 ‘예술을 가르치기 위해 필기 시험이라도 치르라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문화예술교육 업무가 민에서 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각 분야 교육위를 흡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사단이 났다. 영화계 강사풀제 주관 단체인 (사)한국영화학회에서 학회 내 교육위원장을 제명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일을 주도해온 교육위원장 ㄱ 교수가, 교육위원회를 학회에서 독립시키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한국영화학회는 그를 제명했고, 제명된 교수는 교수대로 ‘학회장이 영화교육에 쓰여야 할 문화부 지원금을 유용했고, 이에 반발하자 나를 제명했다’고 유용설을 제기해 파문이 커졌다. 이 일은 관 주도 사업에 대한 문화계의 불안을 엿보게 한다.  

  4년째 강사풀제를 운영해온 연극계도 문화부의 일처리가 좀더 섬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연극교육위 오세곤 교수는 “국악과 연극, 영화, 무용 등은 모두 사정이 다르다. 한꺼번에 통일된 룰을 적용하기보다는 답답해 보이더라도 수공업적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현장에서는 강사 수천 명이 활동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국회에서 지원법안 통과가 지체되면서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을 손질하고 있는 국회 관계자는 “현장에서 들려오는 불만의 목소리가 너무 미시적이다. 모두들 자기 처지에서만 볼 뿐, 문화예술교육을 제대로 해보자는 탄력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