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배설물이 있었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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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역사>/대소변에 대한 인식과 처리 방식 변천사

 

서재 한 귀퉁이 으슥한 곳에 엽기적 주제를 다룬 망칙한 책들을 따로 모아 놓고 있다. 거의 포르노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성애 소설들을 비롯해, 매춘 살인 사형 감옥 식인(食人) 사치 마녀 카니발 마약 침대 엉덩이 누드 키스 환관 등 아내나 아이가 보게 되면 민망해질 내용들이다. 뒷간을 학문적으로 고찰한 책도 몇 권 되는데, 개중에는 ‘호모 토일렛’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제목을 달고 있는 것도 있다.  

  독일 작가 야콥 불루메의 <화장실의 역사>는 지금까지 한국어로 출판된 화장실학(糞便學)의 압권으로 꼽을 만하다. 방대한 참고 문헌과 꼼꼼한 주석, 희귀 도판 자료 들을 종횡으로 구사하며 일종의 트리비얼리즘 정도로 폄하되기 십상인 주제를 시종 진지한 시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배설물에 대한 인식의 변천사와 그 처리 방식의 발달사를 구명한다.

베르사유 궁전도 화장실 제대로 안 갖춰

예컨대 선사시대의 인류는 어떻게 볼일을 보았을까? 배설에 따르는 위생 관념이나 수치심이 없었던 원시인들은 동굴 안에서 조용히 모닥불 주위에 한 무리가 웅크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곁에서는 또 다른 무리가 유쾌하게 음식을 먹어대거나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 태초에 배설물이 있었고, 그런 그들의 삶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원주민 부족 신화에 따르면 신이 자신의 배설물을 빚어 인간을 창조했고, 고대 아시리아 사람들은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은 신의 것이기도 하므로’ 제의를 올리면서 나체 상태로 대소변을 보고 제물로 바쳤다. 

  그리스 시대로 넘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원전 8세기경의 작가 헤시오도스가 동생에게 보낸 충고의 글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태양을 향해 선 채 소변을 보지 말라. 또 해가 졌다고 해서 길 위나 길에서 벗어나 소변 볼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밤은 신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심 있고 기품 있는 남자는 잘 막혀 있는 뜰의 담벼락 쪽으로 간다.’

  로마 시대에는 공공 화장실이 지어졌고, ‘공공 화장실 관리인’라는 직업까지 있었으며, 당연히 유료 화장실이었다. 대규모 원형경기장에서 몇 시간씩 계속되는 검투 경기를 즐기던 관중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오줌을 액상 세제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세탁부들이 집집의 오줌 항아리를 수거해 커다란 빨래통에 붓고는 소변에 담근 세탁물을 발로 치댔다. 베스파시안 황제는 이처럼 오줌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두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소변세를 징수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소변세를 확대하여 인간의 모든 배설물에 대해 분뇨세를 징수했다.

 

중세 이후 19세기까지의 화장실 수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불량했다. 신체 노출을 죄악시했던 기독교 탓에 잘 씻지 않아 기독교인들은 이교도들로부터 ‘냄새나는 기독교도들’이라는 놀림을 받았고, 도시의 길은 함부로 내버려진 오물들로 지면이 높아지기도 했다.

베르사유 궁전만 해도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신음의 길’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멋지게 치장한 남녀 귀족들이 밖에서 일을 보며 끙끙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세기 유럽의 대도시에는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 있었는데, 업자가 커다란 망토를 두르고 그 속에 양동이를 넣어 다니다가 고객이 원하면 망토 속에 숨은 채 양동이 위에 걸터앉아 일을 보도록 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화장실 쓰실 분”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이처럼 냄새 나는 주제가 ‘인간의 본질적인 역사’를 이룬다고 말하며, 장의 활동이 인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을 서술하는 것이 민족 대이동의 영향에 관한 고찰보다 훨씬 유익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청결벽이 지나친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작가의 이같은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그리고 그가 구사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혹 역겨움을 불러오지는 않을지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썩 괜찮다.
  책 뒤에 ‘화장실 소사전’을 따로 붙여 그것을 일별하는 것으로도 입담 좋은 잡학 박사가 될 수 있다. 화장실 유언비어, 기저귀, 방귀 예술가, 요강 등에 관해 궁금하다면 이 소사전을 들추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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