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오셨어요?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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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신화란 대자연과 맹수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고대인이 만들어낸 정신적 방어막이다. 그들은 태양과 달과 바다와 폭풍을 모두 의인화해 인간 세상으로 끌어내렸다. 태양의 신과 바다의 신을 사랑과 질투에 눈이 먼 나약한 존재로 그림으로써 불가항력의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했다. 인도에서는 뱀을, 한반도에서는 호랑이를 주로 희화화한 것은 두 나라에서 각각 뱀과 호랑이에 의한 인명 피해가 컸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인간은 두렵거나 꺼림칙한 대상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붙여주거나,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 강제거주지에서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대한 블랙 유머가 크게 유행했던 것이 좋은 예다.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사진)는 지난 4월1일 만우절에 이회창 전 총재를 거짓말거리로 삼았다. 그는 오전 주요 당직자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회창 전 총재가 당에 봉사하는 의미에서 당중앙위 의장을 맡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거짓말이 너무나 천연덕스러워 나경원 의원 같은 사람은 받아 적기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임을 자처하는 강대표가 정말로 이회창 전 총재의 존재가 두렵거나 꺼림칙해서 그런 농담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이 자꾸만 흔들리면서 이회창 전 총재의 카리스마 넘치던 리더십을 얘기하는 사람이 한나라당 내에서 점점 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힘을 못쓸 것이라는 대안부재론이 힘을 받으면 당에서 이 전총재의 존재감은 점점 또렷해질 수 있다.

때마침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송광수 검찰총장은 대선자금과 관련한 이회창씨 사법 처리 문제는 일단락되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의심은 가지만 모금에 관여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다 알아서 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그를 기소할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전총재는 서울 남대문 뒷편 건물의, 2015호라는 팻말 외에는 아무 것도 붙어 있지 않은 사무실에 칩거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의 이회창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 분이 오셨어요”라는 속삭임이 퍼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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