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식물 사장’ 되는가
  • 김은남 고재열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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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난리 법석이다. 노조 회의 불법 녹음 사건 등으로 직원들이 갈가리 찢겨 대립하고 있다. 취임 7백 일을 맞은 정연주 사장을 놓고 내부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누군가는 이번 사건을 ‘KBS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번 사건을 ‘KBS판 노무현 탄핵 사건’이라 했다. 불법 녹음 사건으로 촉발된 정연주 사장 퇴진 공방 사태를 바라보는 KBS 내부의 시각은 이렇게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일단 불법 녹음 사실 그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워터게이트 사건이 연상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불법 도청이다’ ‘아니다’ 여전히 이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 3월23일 KBS 사측은 노조의 동의나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노조 중앙위원들의 회의 내용을 녹음했다. 전국언론노조가 지적한 대로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자 ‘국민의 헌법적 권리 보호를 위해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사가 이를 부정한 사건’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제2의 탄핵 사태’를 운위하는 측은 지은 ‘죄’에 비해 ‘구형’이 너무 과했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태로 사측이 KBS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은 자명하지만 이를 계기로 노조가 사장 퇴진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KBS 노조 산하 17개 직능 단체 중 하나인 KBS PD협회의 이강현 회장은 “사장 퇴진은 사실상 노조가 꺼내들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이다. 그런데 노조는 이번 불법 녹음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너무 일찍 그 카드를 꺼내들었다”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노조가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공감대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KBS 노조는 사장 퇴진 투쟁을 결의한 이후 줄곧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상자 기사 참조). 이를 두고 한 간부는 “칼은 칼집에서 꺼낼 듯 말 듯 할 때가 가장 위협적인 법인데, (노조가) 칼 빼어들 시기를 오판하는 바람에 스스로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라고 평했다.

이처럼 노조오판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최근 들어 노조가 오판할 정황 또한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선거법을 연거푸 위반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극받아 한나라당·민주당이 탄핵을 밀어붙였듯 KBS 노조 또한 정연주 사장이 최근 잇달아 선보인 파울 플레이에 자극받아 퇴진 카드를 꺼냈으리라는 것이다.  

"정치 외압에 굴복하고 권력 눈치 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KBS <시사 투나잇> 패러디 소동이다. 지난 3월15일 <시사 투나잇>의 고정 코너물인 ‘헤딩라인 뉴스’는 한나라당 박세일·전재희 의원을 빗댄 패러디물을 방영했다. 이를 문제 삼고 나선 한나라당이 KBS를 항의 방문하자 정연주 사장은 즉각 사과 제스처를 보였다. 정사장은 이 자리에서 ‘헤딩라인 뉴스’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두고 제작진과 PD협회는 극력 반발했다. 노조 또한 방송 독립을 사수해야 할 공영 방송 사장이 정치권의 외압에 굴복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사장을 호되게 비판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고문을 지낸 서동구씨가 지난 3월 말 스카이라이프 사장으로 임명된 것 또한 문제가 되었다. 서씨와 정사장은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KBS 사장으로 먼저 선임된 이가 바로 서동구씨였다. 그러나 서씨는 ‘정실 인사’라는 이유로 노조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임명된 지 열흘 만에 스스로 사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정사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사장이 서씨를 스카이라이프 사장으로 선임하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이다(KBS는 KT에 이어 스카이라이프의 2대 주주로서, 스카이라이프 사장에 대한 추천권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노조측은 집권 기간 내내 ‘내 사람 챙기기’를 집요하게 실현하려는 권력도 권력이지만, 정사장의 권력 눈치 보기도 지극히 실망스럽다며 서씨 추천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사장에 대한 노조의 불신은 이미 노조 출범 단계에서부터 배태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 출범한 제10대 노조는 처음부터 ‘반(反) 정연주’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지역국 출신인 진종철 노조위원장과 행정직 출신인 허종환 부위원장은 “10대 노조는 칼날 같은 견제 기능을 회복하겠다”라며 은근히 전임 노조를 겨냥하기도 했다.

 
노조 집행부 또한 정사장 못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역풍을 맞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조 또한 성급하게 정사장 사퇴 카드를 들고 나왔다가 역풍을 맞았다. 노조가 정사장 퇴진을 주장한 이후 사내 게시판과 노조 자유게시판에는 노조를 성토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안티 정연주’를 표방한 현 KBS 노조는 ‘친정연주 노선’을 걸었던 전임 노조와의 차별화를 통해 조합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현 노조 집행부는 정연주 체제에서 소외되었던 그룹들을 묶어냄으로써 노조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KBS의 한 간부는 “정사장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만 집중한 노조의 강경 노선은 ‘안티노조’ 세력 또한 뭉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노·노 갈등 와중에 사건의 실체는 실종되어 버렸다. 불법 녹음 사태 초반만 해도 판세는 노조에 유리해 보였다. 불법 녹음 사실이 발각된 뒤 사측은 늑장 대응과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홍보팀은 노무팀의 노조 사찰이 관행이라고 설명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것이 허무맹랑한 변명인 것만은 아니다. 전임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때만 해도 노조 회의 자리에 노무팀 직원이 배석해 회의 내용을 적어가곤 했다. 어차피 노무팀이 노사간 메신저 역할을 했으므로 이 직원을 통해 사측에 전할 얘기를 통보하기도 했다. 단 민감한 논의가 있을 때는 노무팀 직원을 배제했다.”

그러나 현 노조 출범 이후 이같은 관행은 사라졌다. 따라서 사측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노조는 이처럼 유리한 입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사건 직후 사장 퇴진 카드를 꺼내든 노조의 섣부른 대응은 오히려 노조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PD협회·기자협회 등은 노조가 사장 퇴진 투쟁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집행부 불신임, 나아가 노조 탈퇴까지도 결행할 수 있다며 노조를 압박했다.

노조로서는 이런 반발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KBS 노조는 이미 조합원들로부터 탄핵을 당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2001년 제8대 노조는 창사기념품 리베이트 의혹과 성추문 등으로 물의를 빚은 결과 조합원들로부터 중도 하차를 당했다. 

결국 직능단체들이 반발한 이후 노조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노조의 활동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노조 간부는 “노조에 대한 내외부의 시선이 곱지 않다. 조직이 분열되는 바람에 KBS 2TV를 지역 채널로 전환하는 문제 등 노조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사안을 순조롭게 진행하기가 힘들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반 정연주 노선’을 표방한 새 노조의 탄생은 정연주 사장 체제에 대한 평가와도 맞물려 있다. 지난 3월 말로 취임 7백 일을 맞은 정사장에 대한 KBS 내부의 평가는 양 극단으로 나뉘어 있다. 신임 노조로 대표되는 반대파의 정사장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개혁 사장, 정말 맞아?’하는 것이다.

KBS의 한 간부는 “밖에서 보기에는 개혁 사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안에서 보기에 정사장의 개혁은 시늉에 불과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 반대파가 주장하는 정사장의 핵심적인 결함은 세 가지. 첫 번째는 ‘코드 인사’이다. 앞서의 간부는 무엇보다 ‘전주고 마피아’라고 불리던 전임 박권상 사장 체제의 실세 그룹을 정사장이 거의 그대로 인수한 데서부터 정사장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사내 기반이 전혀 없던 정사장이 빠른 시일 내에 파워 블록을 형성하기 위해 너무 안이한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전임 노조와의 유착 또한 이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KBS 사장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은, 노조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노조를 다루는 방식에는 크게 홍두표식 회유책과 박권상식 강압책 두 가지가 있다. 정사장은 이 중 홍두표식 회유책을 택했다고 그는 평했다.  

KBS 노조를 포용한 정사장은 당시 노조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PD협회·기자협회 등 제작 부서 또한 끌어안았다. 이 때문에 사내에서는 한동안 ‘PD 5인방’이라는 은어가 회자되기도 했다(PD 5인방이란 정사장 주변을 둘러싼 핵심 포스트에 있는 간부 및 평직원 5인을 말한다). 이같은 코드 인사로 인해 사내 위화감이 조성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간부 직이나 행정직·지역국 직원들이 구조조정의 1차 희생양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전임 노조에 대한 불신 또한 깊어지게 되었고, 이것이 현 노조가 탄생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사장에 대한 평가 10점 만점에 5.0점

반대파가 지적하는 정사장의 두 번째 문제점은 경영자로서의 자질 부족이다. 지난해 KBS가 6백38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 그 핵심적인 증거라고 노조측은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노조의 한 간부는 정사장을 ‘3불(不) 사장’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방송을 모르고, 경영을 모르고, 리더십을 모르는’ 사장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그는 정사장이 초창기 공영성을 강화한다며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등 이른바 ‘가학성 오락 프로그램’들을 폐지했다가 시청률이 떨어지자 유사 프로그램을 부활시킨 사건을 꼽았다. NHK가 <겨울연가>로 수백억원 매출을 올리는 동안 KBS는 수억원의 로열티 수입에 만족해야 했던 것 또한 경영 감각 부재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그는 주장했다.

또 다른 간부는 정사장의 경영 방식을 ‘꼼수 경영’이라고 비판했다. “정사장의 경영 방식은 한마디로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처음에는 명분과 합리를 내세우다가 막히면 곧바로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회귀한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KBS의 공영성 강화를 주장하다가 돈이 안되니까 문화 전문 채널인 KBS코리아를 슬그머니 분사시키려 든다거나, 노조와 대립 관계에 서게 되니까 전근대적인 노무팀을 곧바로 활용하려 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정사장의 위기 관리 능력 또한 최근 들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패러디 소동 등을 겪으며 잇달아 ‘스타일을 구긴’ 그에게 이번 불법 녹음 사건은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불법 녹음 사건을 보고받은 뒤 그는 한나절을 허비했다. 이어 내놓은 대책 또한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대해 평소 반 정연주계로 분류되던 보수 언론이나 한나라당은 물론 친 정연주계로 분류되던 집단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열린우리당 문화관광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정사장이 퇴진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솔직히 이번에 보여준 정사장의 태도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경영진 그 누구도 책임지려는 사람 없이 3개월 감봉으로 사태를 때우려 한 것은 누가 보아도 안이한 대응이었다”라고 꼬집었다.     

반대파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정사장의 포용력 부재이다. KBS 시청자 위원 중 한 사람은 “정당성에 대한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다 보니 정사장은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비판하면 무조건 화부터 낸다”라고 말했다. 이는 야당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국회 질의 때 정사장이 너무 ‘뻣뻣하게’ 나오니까 반감이 생겨 정사장을 더 몰아붙이게 된다는 의원이 있을 정도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되어서인지 정사장에 대한 KBS 내부의 평가는 그리 후한 편이 아니다. 지난 3월2~15일 KBS 노조가 전직원의 절반 가량인 2천6백여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정사장에 대한 총체적 평가 점수는 10점 만점에 5.09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에 따르면 이는 거의 낙제점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정사장 개인에 대한 평가와 정사장이 그간 실행해 온 개혁 정책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이강현 PD협회장은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내부 구성원이 상당수라는 것은 노조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곧 정사장 개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달리 정사장 체제 출범 이후 사내 ‘자율성과 민주성’이 신장되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0.2%에 이르렀다(‘나빠졌다’는 14.6%). 프로그램의 공영성이나 완성도 또한 나빠졌다(각각 17.0%와 15.4%)는 응답자보다 좋아졌다(각각 44.9%와 41.7%)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간부 자리 84% 없애고 발탁 인사 감행

더 흥미있는 것은 팀제에 대한 평가이다. 정사장은 팀제 시행과 지역국 구조 조정,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최대 개혁 업적으로 꼽아 왔다. 그러나 신임 노조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진종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팀제 개편 등을 골자로 하는 정사장의 제반 개혁 작업이 상당 부분 졸속’이었다고 폄하했다.

이런 상반된 평가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만큼 KBS가 지난해 7~8월 전격 도입한 팀제는 KBS 내부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팀제 도입 이후 1천1백21명에 달하던 국장·부장·차장 등 중간 간부 자리는 모두 폐지되고 부서장은 1백84명의 팀장으로 대체되었다. 간부 자리가 예전에 비해 84%나 사라진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차장급 이하 직원 35명이 연공 서열을 깨고 팀장 발령을 받는 발탁 인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잡음이 없을 리 없었다. 중간 간부를 중심으로 한 비판 세력들은 팀제 시행 이후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이 심해지고 △부·차장 직위가 사라지면서 게이트키핑 기능 약화가 우려된다는 지적 등을 계속해 왔다. 누드 패러디, 일본해 표기 지도 사용(이상 <시사 투나잇>), 거북선 침몰 논란(<불멸의 이순신>) 등 최근 일어난 방송 사고 또한 이런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중간 간부들이 주축이 된 KBS발전협의회(의장 윤명식) 소속 한 회원은 “KBS가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것은 공영성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KBS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광고주들까지 KBS를 외면하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선 PD나 기자 들은 이런 주장을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다. 한 예로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으로부터 툭하면 문제 제기를 받는 <시사 투나잇>의 경우 오히려 광고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김 현 PD는 “심야 시간대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광고가 거의 완판(완전 판매)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동시간대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5~6%대 시청률이 유지되는 것 또한 <시사 투나잇>의 특징이다.

조직 문화 측면에서도 일선 PD나 기자 상당수는 팀제에 긍정적이다. 이번 노조 설문 조사에서도 직원들은 정사장이 그간 가장 잘한 일로 팀제 시행(24.6%)을 꼽았다. 그 다음은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통한 제작 자율성 강화’(14.6%), ‘시청률 경쟁 포기 선언 등 공정 방송 의지 천명’(14.1%) 순이었다. KBS 교양정보팀의 한 PD는 팀제 시행 이후 의사 결정이 빨라지고, 팀원간 의사 소통도 훨씬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드라마국의 한 PD는 제작 현장에 몰라볼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CP나 국장의 개인 취향에 따라 기획이 결정되고 파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라며 팀제 시행 이후 기획위원제가 도입되고 나서 이런 관행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곧 팀장·PD·조연출은 물론 외부 영화 평론가·제작자까지 한 자리에 모인 상태에서 기획회의가 이루어지다 보니 ‘톡톡 튀는’ 기획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팀제 시행 이후 <오, 필승 봉순영><쾌걸 춘향> 같은 화제의 드라마들이 양산되고, KBS 드라마가 ‘시청률 톱 10’의 절반 이상을 휩쓰는 양상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팀제 시행이나 지역국 통폐합은 기실 감사원의 지적 때문에라도 반드시 이행했어야 할 사안이다. 지난해 KBS를 감사한 감사원은 △상위직 및 전문직 인력 과다 △지역국 운영의 부적정성을 KBS의 최대 문제점으로 꼽았다. 당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KBS 총인원 5천1백27명 중 3급 이상 상위직은 3천4백83명으로, 하위직(1,644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감사원은 또 1990년대 이후 매체 환경이 급변한 만큼 독자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없어진 16개 지역 방송국 또한 단기간 내에 통·폐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다. 감사원은 이미 1999년과 2002년에도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그러나 역대 사장들은 직원과 현지 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구조 조정을 미루어왔다. KBS 내부의 정연주 지지파가 정사장을 높이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BS 기자협회 윤석구 회장은 “KBS는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기업이다. 당연히 사장이라면 내부 눈치를 보기보다 방송의 공영성을 어떻게 구현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번 불법 녹음 사건을 계기로 정연주 사장이 최대 위기를 맞은 것만은 사실이다. KBS 노조 관계자는 “정사장은 이제 식물 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KBS 개혁을 위해서도 도덕성에 치명적 오점이 생긴 정사장은 용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사장이 남아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도 갈수록 심해지는 사내 갈등은 큰 부담이다. 이번에 PD협회·기자협회·아나운서협회 등 직능 단체들이 노조의 사장 퇴진 투쟁 방침에 맞서 ‘노조 불신임’까지 거론하면서 노(勞)·노(勞)간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패었다. 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친 정연주 대 반 정연주 갈등만이 아니다. 제작 파트와 행정 파트, 본사와 지역국, 시니어와 주니어가 갈갈이 찢겨 대립하는 형국이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취임 7백 일을 맞은 정연주 사장이 이같은 안팎의 시련을 극복하고 남은 3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기간방송법을 적극 추진해 온 박형준 의원은 이 날 “고의적인 적자 편성 때문에 KBS에 대규모 적자 사태가 발생했다”라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MBC 등이  2004년 광고 예상 수입을 2003년에 비해 줄여 잡은 것과 달리 KBS는 광고 예상 수입을 15.6%나 올려 잡고, 이에 맞추어 지출 규모를 늘리는 바람에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적자’를 발생시켰다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KBS가 이렇게 적자 회계 장부를 내민 이유를 박의원은 수신료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는 KBS가 수신료를 올려 받기 위해 이런 적자 편성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다”라며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KBS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KBS 조수철 예산팀장은, 올림픽 특수 등을 고려해 지난해 광고 예상 수입을 높게 잡았을 뿐이라며 “수신료 수입보다 광고 수입 비중이 높은 KBS의 수익 구조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회가 이를 고쳐 주려 하기보다 적자만 문제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조팀장은 나아가 현행 수입 구조로는 앞으로 5년간 2천억원대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2000~2004년 물가 인상률이 14%였던 데 반해 KBS의 광고 수입은 5.9%밖에 늘지 않았다. 다매체 시대가 도래하면서 앞으로도 광고 수입이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수신료 인상 외에는 왜곡된 수익 구조를 타개할 방법이 없다”라고 지적한 그는, 수입은 뻔한데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제작비를 막무가내로 깎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의 공영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기본 입장이다. 정사장이 건재한 KBS가 공영성을 확보하기는 요원하다는 한나라당의 시각 때문에라도  정사장의 시련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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