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정보, 그때 그때 다르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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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부, 북한 고농축 우라늄 개발 계획 알고도 모른 체하다가 뒤늦게 법석
 
북한과 미국이 핵 문제를 둘러싸고 파국적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아태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한 직후, 북한 당국이 플루토늄 재처리 외에 또 다른 핵 프로그램, 즉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이 존재함을 자신에게 시인했다고 밝히면서부터였다. 켈리의 이같은 발언이 있은 직후인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서명된 이른바 ‘기본 합의’는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은 북한 핵 문제를 원점으로 돌린 최대 화근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가. 미국의 부시 정부는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을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2002년 10월 방북 당시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우라늄을 농축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채택되는 원심분리법의 핵심 장비(원심분리기)와 기술을 북한이 수입했음을 밝혀주는 몇 가지 물증을 들이대며 북한을 윽박질렀다. 이후 켈리는 1998년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에 북한측의 미사일 기술과 파키스탄측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기술(장비 포함)을 주고받는 거래가 성립했다고 주장했다.

“전력난 때문에 우라늄 고농축 어려울 듯”
2002년 11월 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미국 의회에 북한 핵 현황 정보 메모를 제출했다. 최근 비밀 해제된 이 메모에는 ‘북한이 최근(2002년 11월 기준) 원심분리법 관련 물질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으며, 우라늄 공급 및 회수에 필요한 장비도 확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게다가 중앙정보국은 이 메모에서 ‘북한이 완전 가동할 경우 핵무기를 연간 1~2개 만들 분량의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정보 당국은 이같은 메모를 제출하면서 메모에 담긴 내용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들은 제시하지 않았다.

 
2003년 2월에는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1980년대부터 핵 기술을 국제적으로 밀거래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 노하우를 전수받았다는 의혹이 더욱 증폭되었다.
칸 박사와 북한의 거래에 대한 의혹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003년 10월 <뉴스 위크> 등 미국 언론은, 북한·파키스탄의 핵 교류는 1988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해, 1993년께 압둘 카디르 칸이 평양을 방문하고, 이후 미사일 기술과 우라늄 농축 기술을 상호 교환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위와 같은 주장이 과대 포장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코리안 엔드 게임>의 저자이자 북한을 일곱 차례 방문한 미국 내 대표적 북한 전문가인 샐리그 헤리슨은, 미국 내 또 다른 핵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계획이 과장되었다’고 밝혔다.
헤리슨은 북한이 채택한 것으로 보이는 고농축 우라늄 생산 방식, 즉 원리분리법 그 자체에 의문을 갖는다. 원심분리법은 최소 1천3백개 이상의 원심분리기(원심분리기 하나는 보통 높이 3m에 너비 80cm)를 한 장소에 연결해 3년간 완전 가동해야만 폭발력을 갖는 우라늄 60kg을 생산할 수 있다. 우라늄 농축 공장을 정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전압이 일정한 막대한 전력을 차질 없이 공급해야 한다. 게다가 원심분리기는 러시아제 미그21기 제트 엔진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전력 공급과 기술 보유 수준 등 어느 모로 보나 북한은 이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은 ‘현재의 기술 조건에서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을 고려할 경우 평양은 고농축을 포기하고 저농축으로 가든가, 고농축일 경우 단순한 실험용으로 가든가, 아니면 제대로 된 고농축 프로그램이 아예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남북 및 북·일 관계 개선 움직임 막는 데 이용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은, 그것이 제기된 시점이나 방식 면에서도 순수성과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은 2002년 남북이 비무장 지대 지뢰 제거 작업을 본격 논의하는 한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사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2002년 9월)해 북·일 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탈 때 터져 나왔다. 고농축 프로그램 의혹이 공개된 이후, 이들 사안은 올스톱되었다. 결과적으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은 남북 및 북·일 사이에 이루어지던 관계 개선 작업을 일시에 봉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이 국제 사회에 제기된 방식 또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2002년 10월 당시,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2002년 6월께부터 포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클린턴 시절의 고위 관리들에 의해 명백한 거짓말로 밝혀졌다. 이미 클린턴 정부 시절 북한의 우라늄 농축 기술 수입과 관련된 정보를 대통령 당선자인 부시측에 상세하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측 전·현직 고위 관리와 관련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북·미 관계를 취재했던 일본 니혼 게이자이 신분 스노바라 쓰요시(春原 剛) 기자도 지난해 9월 펴낸 저서 <미조 대립(米朝 對立)>에서, 이미 1999년께 미국 정부 당국자가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직 고위 관리의 증언을 통해 밝혔다.

부시 정부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시도를 오랫동안 알고도 모른 체했던 사실은, 미국이 이라크에 핵 프로그램이 없었는데도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최대 명분으로 내걸고 이라크를 침공했던 상황과는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정보’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교묘하게 이용한 의혹이라는 면에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의혹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의혹은 본질적으로 같은 성질이다.
이 때문에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부시 정부가 6자 회담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회담 의제의 후순위(의제에서 완전히 뺀다는 뜻이 아님)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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