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인간의 건강도 태운다
  • 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 ()
  • 승인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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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건강] 연기에 미세 분진 등 유독 물질 다량 포함…심할 경우 심폐 질환 유발

온 나라 사람들이 힘을 모아 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자고 정한 날이, 실은 산불이 가장 많이 나는 날이라는 슬픈 모순을 어찌해야 할까. 문화재도, 휴양지도, 애써 일군 산골 마을도 이글거리는 불길 앞에 맥없이 형체를 잃고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모든 산불이 인재(人災)이고 재앙인 것은 아니지만, 산불은 분명히 자연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하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산불 피해국으로 꼽힌다. 1994년에 미국 연구진이 산불 연기의 성분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것을 그냥 장작 탈 때 나는 연기쯤으로 얕보았다가는 큰일 난다. 놀랍게도 연기 속에는 미세분진·일산화탄소·탄화수소·벤조피렌·이산화질소·휘발성 유기화합물· 케톤·알데히드 등 온갖 유독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벤조피렌을 비롯한 몇몇 물질은 인간에게 악성 종양을 일으키는 발암 물질이다.

다시 말하자면, 산불은 대규모 대기 오염 사건이다. 산불은 산화질소·탄화수소·오존을 생성한다. 산에 사는 동식물과 같은 생물 자원(biomass)이 불에 타면 다량의 기체와 함께 그을음, 용해성 유기물질, 황산염, 질산염 등의 연무 입자가 생겨, 대기의 화학성분을 변화시키고 공기의 질도 떨어뜨린다. 

산불 피해 지역에서는 외출 삼가거나 마스크 써야

 대기 오염이 심해지니 호흡기 질환이나 심폐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산불 연기에 노출되면 눈물이 나고 목이 따끔거리고, 두통과 판단력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만성적으로는 알레르기·천식·기관지염·폐기종(폐포 파괴로 폐 전체가 팽창하며 탄력성을 잃는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비롯해서 호흡기나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치명적 피해를 볼 수 있다. 바람을 타고 확산되는 연기와 미세 분진은 발화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1997년 인도네시아 칼리만탄과 수마트라에서 일어난 산불은 근래 최악의 사례로 기억된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산불은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타일랜드·브루나이· 필리핀에까지 대기 오염을 일으켰다. 산불이 지속된 두 달 동안 2천만 명이 대기 중의 미세 분진에 노출되었다.  미국 환경청(EPA)이 정한 1일 대기중 미세 분진 기준은 150㎍/㎥이다. 그런데 1997년 9월22일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주의 중심 도시 쿠칭에서는 미세 분진 농도가 무려 852㎍/㎥으로 측정되었다. 

 남아시아 산불이 진화된 뒤 연기에 노출된 쿠칭 사람을 대상으로 화재 기간과 진화 후에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조사했다. 그 결과 만성폐쇄폐질환(COPD)과 천식, 심폐 질환 환자들의 입원 기간이 길어졌음이 드러났다. 심장과 폐, 호흡기 또는 그밖의 이유로 전에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65세 이상의 사람들도 산불 발생 전에 비해 재입원하는 비율이 증가했다.

 산불이 꺼진 뒤에는 홍수와 산사태를 걱정해야 한다. 빗물 일부분을 땅속에 가두어 두는 역할을 하던 산림이 사라졌기 때문에, 조금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날 위험이 큰 것이다. 특히 산불 발생 뒤에 오는 첫 강우가 가장 위험하다.

 산불이 발생한 지역에서 유독 가스와 미세 분진 피해를 덜 보려면 실내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또  마스크·공기정화기 등을 사용하면 더 안전하다. 야외 운동도 삼가야 한다. 무엇보다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계절에 예방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다. 감시·예보 시스템과 진화 기술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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