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 낙산사 삼킨 화마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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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5일 밤부터 강원도 양양군 일대를 날뛰던 화마(火魔)는 6일 아침에서야 잦아들었다. 5일 아침 소강상태에 있던 산불은 초속 40미터가 넘는 광풍을 타고 도깨비불로 되살아나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녔다.

5일 오후 정부는 양양군 전체에 재난경보를 발령했다. 30여 대의 헬기와 1백84대의 소방차, 연인원 6천여 명을 동원해 산불과 맞섰다. 하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했다. 소방방재청은 양양군에서만 2백50ha의 산림과 주택 1백60 채, 상가 27 채 등 건물 2백46 채가 소실됐고, 이재민은 3백76명이라고 밝혔다.

특히 2002년 태풍 피해를 보았던 마을들이 다시 피해를 봐 주민들은 상실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3년 전 태풍 ‘루사’로 온 마을의 논과 밭이 물에 잠겼던 용호리는 이번 화재로 64채 중 35채가 전소됐다. 용호리 김아무개씨는 “지난번엔 태풍이 내 논을 뺏어 갔는데 이번 산불은 집을 뺏어 갔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대낮부터 소주를 들이키며 울분을 달랬다.

낙산해수욕장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살아남았지만 송이밭을 잃어버려 먹고 살 것이 걱정이다”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양양은 국내 최대의 송이버섯 산지다.
이번 화재로 관동팔경의 하나이자 한국 최고의 관음기도 도량인 낙산사가 소실되었다. 찰나의 방심으로 1천3백년 역사를 불살라버린 것이다. 화마는 낙산사 건물 20여 채 가운데 주전인 원통보전과 홍예문, 요사채 등 목조건물 14동을 삼키고 말았다.  ‘낙산사 동종’도 녹여 버렸다.

주지로 부임한 지 보름만에 변고를 당한 정념 스님은 “기도와 수행이 부족해 변을 막지 못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념 스님은 “부처와 탱화를 옮긴 의상교육원에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 바로 앞 요사채까지 탔는데도 홍련암은 타지 않은 걸 보면 부처님이 돌봐주신 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6일 낙산사를 찾은 백담사 회주 오현 스님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물은 병들어 죽고 다시 살아나 아름다워진다”라는 말을 남겼다.

소방 헬기에서 내려다본 강원도 양양의 산자락 이곳저곳은 검은 생채기를 안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상을 입어 힘겹게 서있는 낙산사 해수관음상은 자비를 머금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상세한 기사는 다음주 월요일(4월11일) 발행하는 <시사저널> 808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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