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일 ‘연대’를 기대하며
  •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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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도 문제로,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국은 답답하다. 지금 문제는, 한국 문제는 한국 의 것이고, 일본 문제는 일본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가나 국민이 아닌 ‘소소한’ 집단은 모두 ‘쓰나미’가 삼키듯 이 와중에 사라져 버렸다. 지난 몇 년간 쌓아왔던 다양한 한·일 연대 커뮤니티들도 해체를 선언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거나 자신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편이 갈리면서, 한국의 이해에 복무하지 않는 것은 모두 ‘친일’이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양국에는 이러한 이슈를 매개할 사회 정치 번역가들이 부재한 채,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국민’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해야 한다는 언설만이 부상하고 있다. 

 양국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 사회에 자신의 대변자들을 찾으려고 하고, 새로운 관계를 지향하던 다양한 연대망은 모두 각자의 국가·민족의 이해 속으로 편입하여 상대를 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민족적·국민적 입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있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많은 한국인들은 원하지 않아도 과거가 만들어 놓은 관계 속에 자신이 위치되는 역사적·정치적 현실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과거의 유령을 계속 우리 내부에 가두어 두면서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인정되고 존경받는 한·일관계 전문가가 없는가 질문해 보았다. 한·일 문제 해결의 어려움은 이러한 자원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양국의 사회 정치적 환경이 이러한 인물들의 출현을 원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항상 문제적인 국가였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일본에 대한 지식과 이미지는 거의 우리 몸 감각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과 관련된 것들은 합리적인, 혹은 성찰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감정과 행동을 유발한다. 나는 지난 가을 일본에서 안식 학기를 보내면서 <겨울연가>와 배용준을 좋아하는 일본 여성들을 연구했다. 배용준과 <겨울연가>를 좋아하는 일본 여성들을 만나면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유학생이나 재일 한국인 그리고 나의 반응은, 일본에서가 아니라면 가지기 어려운 감정이다.

일본 현지에서 체험한 두 나라 국민의 인식 차

동시에, 어느 프랑스 여성이 히노마루 배지를 가방 장식으로 매단 것을 보고 심장이 덜컹했던 나의 반응 역시 그것이 히노마루가 아니라면 갖기 어려운 몸적 반응이다. 어떻게 히노마루가 일본과 분리되어 가방 끝에 매달린 ‘귀여운’ 장식이 될 수 있겠는가? 한국인인 나에게 그것은 아주 기이한 광경이었다. 한국인에게 히노마루는 식민지와 일본 군대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과 독립되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기호가 아니다. 그러나 히노마루는 마치 서울 인사동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태극기 배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여성에게는 장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프랑스 사람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것이었고, 또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기대하는 나의 세계관이었다. 마치 우리가 일제 시대 피해자의 증표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몸에 부착되어 있는 우리의 정서에 대해 이제 좀더 냉정한 사고가 필요한 지점에 왔다고 느꼈다. 이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와 민족적 저항이 내재화한 감성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족과 국가 담론이 매개되어졌을 때 쉽게 대중 동원과 조작에 접속되는 위험한 정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학기 동안 일본에 머무르면서 나는 한·일 관계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이것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두 사회가 같은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각각의 사회에 대한 대중 조작이나 감정적 동원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느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물론 일본에 있는 ‘양심 세력’들이 일본 사회를 향한 발언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다양한 차원의 한·일 연대들이 만들어내는 각자에 대한 이해와 대화 그리고 좌절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목소리들이며, 국가 경계를 넘어 서로를 넘나드는 새로운 공동체들의 연대의 경험에서 나온 목소리들이다. 하지만, 독도와 역사 교과서 문제는 양국을 민족과 국가라는 틀로 나누면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연대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이러한 연대들이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서야 하고, 시민 사회가 양국을 매개할 새로운 문화적·사회적·정치적 매개자로 그들을 불러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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