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은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 필자 조정래 (소설가) ()
  • 승인 2005.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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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양양 산불로 사라진 낙산사 폐허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

 
낙산사가 불타 버렸다. 천년 고찰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화마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센 불길 속에서 대웅전이 몸부림치고 종각이 무너지는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면서 가슴도 함께 불타고 있었다.

불길에 휩싸인 가슴에는 두 가지 의식이 대치하고 있었다. 하나는 ‘아, 큰일났구나’ 하는 절망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쩌다 저런 일이’ 하는 책임론이었다. 낙산사는 단순히 오래된 절이 아니다. 낙산사는 단순히 관동팔경 중의 하나가 아니다. 낙산사는 우리 민족의 천년 세월을 담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였다.

문화재란 한 겨레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살아오면서 가꾸고 일구어내고 쌓아온 유형·무형의 창조적 조형물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피붙이의 정이 서리고, 겨레의 얼이 스미고, 동포의 넋이 얽히고, 민족의 혼이 살아 숨쉰다. 그래서 우리는 무형의 노래 <아리랑>에서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한에 사무치는 동시에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민족적 결의와 힘을 얻었던 것이다. 또 유형의 조각 석굴암 불상에서 특정 종교를 넘어선 인간미의 극치에 사로잡히고, 예술의 황홀경이 무엇인지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야만의 나라에서나 일어날 ‘인재’

 
왜 모든 나라가 자기네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고, 각 민족마다 자기네 문화 유산들을 자랑하고 있는가. 문화란 인간만이 가지는 것이며, 질 높고 예술성 높은 문화재는 그대로 인간의 존엄을 높여주는 동시에 그 민족의 자존심과 위상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영토를 보존하는 것과 다를 것 없이 문화재를 보호하고 지키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천년의 숨결을 간직해온 문화재를 단 하루 만에 불태우고 말았다. 이런 어이없고 허망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여러 문화재가 등재되어 있는 당당한 문화국에서 어찌하여 비문화적 야만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번에 벌어진 문화재 화형식에는 분명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그 원인이 있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는 천재가 아니며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자칫 이번 일을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이었다고 오해하거나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산불은 폭우가 쏟아지거나 태풍이 몰아치거나 폭설이 기습한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군가의 실화로 산에 불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재이며, 그 불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끄지 못했기 때문에 인재이다.

그런데 산불을 배경으로 하고 선 산림청장은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소나무들이 불이 잘 붙는 송진을 품고 있어서’ 하는 말들로 이번 사태를 천재지변인 양 착각을 일으킬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불길을 조기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힘으로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 기만극이며, 소중한 문화재를 태워버린 죄에 또 하나의 죄를 더하는 행위다.

우리는 이 사태 앞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우리에게 국가는 왜 필요하며, 우리는 왜 아까운 것 무릅쓰며 세금을 내는 것이며, 우리는 왜 대통령을 뽑아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정부 조직은 왜 장관들을 줄줄이 두게 되는가. 우리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어서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국가를 만들고, 그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잘 지키라고 대통령에게 헌법적 권한과 의무를 지우며, 대통령은 그 책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각 부처 장관들을 거느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재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서 ‘재산’ 항목에 속하는 것임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뭐라고 하실까…

 
그런데 천년 민족의 유산이며, 국민의 재산인 문화재가 불타고 말았다. 군대 편제로 말하면 일선 사단장 격인 해당 부처 장관들은 그 귀한 문화재가 불더미로 변하고 있을 때 어디에 있었는가. 행정자치부장관에서부터 시작해서 건설교통부장관, 국방부장관, 농림부장관, 그 누구 하나 현장에 있지 않았다. 국방부장관이 왜 거기에 속하느냐고 묻지 않기를 바란다. 군대는 전쟁 때 영토를 지키는 것만이 그 임무가 아니다. 경찰과 더불어 ‘유사시’ 언제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것이 그 헌법적 의무이고 책임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군대를 기르는 것 아닌가. 온갖 자연 재해 때마다 군인들이 동원되는 것은 군인들의 자애로운 희생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군대의 책무 실행이다.

“관에서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습니다. 저희들이 죄인입니다. ……”

폐허 앞에서 낙산사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것이 진실이다. 해당 장관들이 한 명도 현장에 가지 않은 ‘안이’ 속에서 천년 문화재는 재로 사라져 갔다.

독일군이 침략해 올 때 프랑스 정부는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품들을 진공 포장해 센 강 물속에 숨겼다. 그런데 파리에 쳐들어온 독일군들은 개선문 위에 나치 깃발을 꽂은 것이 아니라 루브르 박물관부터 먼저 열어젖혔다. 이 감명 깊은 일화는 전쟁이 꼭 영토만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문화재라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도 동시에 입증해 준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내일 또한 오늘 없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어제는 오늘의 아버지이고, 내일은 오늘의 아들이다. 이 세월의 영속성, 이 삶의 기나긴 인연의 고리 속에서 문화재란 움트고, 자라나고, 열매 맺으며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해주고, 더불어 사는 의미를 확인시켜 주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우리 개개인이 살다 가는 한 생애에 비해서 천년 세월은 얼마나 까마득하고 전설적이고 황홀한가. 그 긴긴 세월을 품고 있는 문화재를 허망하고 또 허망하게 잃었으니,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그나마 의상대와 홍련암이 피해를 보지 않아 큰 다행이다. 식민지 하에서 의상대를 세웠던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오늘의 우리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하실까. 친일파들이 새로 세운 나라에서 다시 득세하는 것을 보고 혀를 차셨을 텐데, 그 혀 차는 소리가 또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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