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 -정치’ 10대 달인
  • 차형석 기자 (csisapress.com.kr)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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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국회의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과 쌍방향 소통을 얼마나 잘 하는지’ 평가했다.

<시사저널>은 ‘국회의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과 쌍방향 소통을 얼마나 잘 하는지’ 평가했다. 그 결과 고진화·유시민 의원이 1·2위를 차지했다.

국회의원 홈페이지는 ‘e-정치’의 꽃이다. 1999년 4월만 해도 홈페이지를 갖고 있는 의원은 전체 2백95명 가운데 53명(18%)에 불과했지만 2005년 3월 현재 국회의원 2백93명 가운데 2백69명(92%)이 e-정치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과 얼마나 쌍방향 소통을 할까?

전여옥·노웅래 등 기자 출신들 ‘강세’

<시사저널>은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와 공동으로 국회의원들의 사이버 쌍방향 지수를 평가했다(평가위원 임정근·서유경·민경배 교수). 국회의원 2백93명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전자 우편을 통해 사형제와 국가보안법에 대한 견해를 묻고 어떻게 응신하는지를 확인했다. 국회의원 본인이 홈페이지에 얼마나 글을 올리는지, 네티즌들이 그 글에 얼마나 활발하게 반응하는지, 뉴스레터·인터넷 폴·정책토론방·블로그 등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평가 항목으로 넣었다.

 
이번 조사에서 고진화 의원이 전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유시민 의원, 3위는 강기정 의원이었다. 전여옥·노웅래·정청래·송영선·송영길·이혜훈·민병두 의원이 상위권에 들었다. 기자 출신인 전여옥·노웅래·민병두 의원이 상위권에 든 것이 눈에 띈다. 강기정·송영길 의원은 의정일기를 지속적으로 올린 것이 높게 평가받았다.

1위를 차지한 고의원은 ‘웹진형 홈페이지’를 중시한다. 홈페이지 운영은 3·3·3 전략에 따른다. 홈페이지의 3분의 1은 의정 활동과 개인을 홍보하는 내용을 담는다. 3분의 1은 한민족평화네트워크와 초선연대 등 고의원이 참가한 의원 모임에 관한 콘텐츠다. 나머지 3분의 1은 평화·문화·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시인·한의사·영화감독·교수 등 외부 필진 10여명에게 글을 의뢰해 싣는다. 올해는 외부 필진을 30명 선으로 늘릴 계획이다. 고의원은 고미모(‘고진화를 미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과 웹진에 올라온 글에 대해 토론하는 번개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자칫 무거운 홈페이지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어 인터넷 폴은 가벼운 주제를 선정하기도 했다. 젊은 보좌관들은 ‘미혼인 고진화 의원과 어울리는 여성 스타일은?’이라는 인터넷 폴을 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영화배우 문소리를 가장 많이 꼽았다.

 
‘참여형 홈페이지’로는 유시민 의원의 홈페이지가 단연 발군이다. 하루 평균 3천~4천 명이, 대통령 탄핵 때는 하루 5만명이 홈페이지를 찾았다. 유시민 의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지지자 1만5천여명, 자원봉사자 8백여명, 지역구의 핵심 지지자 4백여명의 데이터를 구축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후보로 출마한 유의원은 참여형 홈페이지 덕을 톡톡히 보았다. 당의장 출마자들에 한해 후원금을 1억5천만원까지 따로 받을 수 있는데, 지난 3월4일 유의원이 홈페이지에 도움을 요청하자 반나절 만에 1천만원에 육박하는 정치 후원금이 쇄도한 것이다. 유의원은 지난해에도 후원금 한도액이 차버려 도중에 후원 계좌를 막았다. 정치인과 네티즌이 행복하게 만나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논객 정청래 의원 글, 40만명이 읽어

 
정청래 의원은 전형적인 ‘논객형’ 국회의원이다. 정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노사모에서 ‘싸리비’라는 ID로 활동해왔다. ‘네티즌 국회의원’이라고 자부하는 정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인터넷에 올린 글은 총 1백25편(3월9일 현재). 거의 2~3일에 한 번꼴로 글을 써서 올렸다. 정의원은 인터넷 글을 많이 쓰는 이유에 대해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네티즌들과 부지런히 소통하겠다는 것이 공약사항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의원은 자기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서프라이즈 등 10여개 정치 토론 사이트에 글을 올린다. 서프라이즈는 네티즌이 많이 본 글을 ‘울트라뷰’라는 코너에 모으는데, 정의원이 쓴 글 가운데 66편이 여기에 게재되었다. 서프 논객 가운데 울트라뷰에 가장 많이 올라갔다. 정의원은 “조회 수를 헤아려 보니 대략 40만명이 내 글을 읽었다”라고 말했다.

정의원은 네티즌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해 수시로 전화 토론을 한다. 정의원이 인터넷에서 종횡무진 글을 쓰고 댓글을 많이 달다 보니 ‘진짜로 정의원이 쓴 글이 맞느냐’고 의심하는 네티즌이 많아지자, 정의원이 ‘내가 쓴 글이 맞으니 의심스러우면 전화하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댓글로 올렸기 때문이다.

 
전여옥 의원의 홈페이지는 상대적으로 게시판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전의원은 네티즌들로부터 게시판 공격을 자주 받는 의원 중 한 사람이다. 전의원실은 게시판을 정치 이슈에 대한 글, 생활 문화에 대한 글, 의원실로 문의하는 글 등으로 분류해 놓고, 각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을 특성 별로 모아준다.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으면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시킨다. 안티성 게시물도 욕설이 있지 않는 한 안티 의견을 모아놓은 게시판으로 옮겨 놓는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서 인터넷 보좌관을 맡고 있는 김성철씨는 “안티성 게시물을 포함해 이슈 별로 게시물을 이동시켜 주면 삭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게시판이 정화된다”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미니홈피 등 블로그를 운영하는 의원은 90여명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은 전통 매체가 잘 다루지 않는 정치인의 퍼스낼리티와 관련한 내용을 훨씬 더 자유롭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퍼스낼리티와 관련한 정보와 이미지는 감정 반응을 유발해 유권자들의 선택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권영길·이성권, 정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

 
권영길 의원과 이성권 의원은 다음플래닛과 미니홈피를 운영하며 이를 차별화한 정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권의원의 다음플래닛은 박근혜 대표의 미니홈피 다음으로 방문자 수가 많다. 컨셉트는 ‘발랄 모드’로 잡았다. 홍기표 보좌관은 “민주노동당이 딱딱한 이미지를 준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올렸다”라고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권의원이 뻥튀기를 먹는 사진과 젊은 시절 파리 특파원 때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히트를 쳤다. ‘권상우 닮았다’ ‘윤 상 닮았다’는 네티즌들의 리플이 줄을 이었다. 60대 의원에게 친구맺기를 신청한 20대 네티즌이 1천명에 이르렀다.

의원실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을 꾸준히 올린 보좌관 일기도 화제가 되었다. 다른 당 의원이 추석 선물로 놓고 간 김 한 상자를 보좌진이 돌려줄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일화를 담은 글과, 홍기표 보좌관이 급히 공항에 의원을 마중나갔다가 주차비가 없어서 “의원님 천원만 꿔주세요”라고 했던 얘기 등이 인기를 끌었다. 홍보좌관은 “미니홈피를 찾는 이는 당원이 절반이고, 절반은 중고생이다. 권위 의식이 없고 참신해 보인다는 반응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성권 의원도 미니홈피를 차별화하며 운영한다. 홈페이지 관리는 보좌진이 하지만, 미니홈피 관리는 이의원이 직접 한다. 이의원은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 항상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간다. 지난 설에 일본을 1주일 방문했을 때도 디카와 노트북을 이용해 그날 그날 미니홈피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이의원은 이번 평가에서 미니홈피에서 네티즌들의 글에 댓글을 가장 열심히 다는 의원으로 분류되었다. 그는 “내 소신과 의견을 묻는 네티즌들에게 댓글을 다는 것은 정치 행위라고 본다. 손님이 말을 건네는데 주인이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e메일 회신한 의원은 겨우 9%

이번 평가 과정에서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게시판에서 댓글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의원은 43명(15%), e메일 회신을 한 의원은 26명(9%)에 불과했다. 의원들의 온라인 쌍방향 지수를 평가한 임정근 교수는 “홈페이지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여전히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전반적으로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마인드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마인드 부족도 문제이지만, 네티즌들의 잘못된 인터넷 문화도 소통을 막는 현실적 요인이다. 이슈가 생기면 자유게시판에 몰려와 도배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이경숙 의원의 홈페이지. 올해 가장 많은 ‘훌리건 네티즌’이 몰려들었다. 올해 들어 자유게시판에 6천여 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는데, 대부분 이종격투기 팬들이었다. 이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KBS 스카이 채널이 이종격투기 프로그램을 중계 방송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는데, 이종격투기 팬들이 이에 항의하며 항의성 글로 도배를 한 것이다.

이의원뿐만 아니라 다른 국회의원들도 도배성 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위·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자유게시판에는 미발추 법안(과거 미발령된 국립 사범대생을 정원 외로 채용하려는 특별법안)을 반대하는 사범대생들이 집중적으로 반대 글을 올리고 있다. 건교위 의원들의 홈페이지는 공인중개사 시험과 관련한 민원 글로 가득했다. 한 보좌관은 “도배성 글이 계속 올라오면 난감하다. 댓글을 달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특정 집단이 집중적으로 글을 올리면 차라리 그쪽 관계자를 불러 면담하고 입장을 설명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면 홈페이지가 조용해진다”라고 말했다.

이번 홈페이지 심사에 참가한 민경배 교수는 “디자인이라든가 기술 면은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홈페이지가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이용하기보다는 일방향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자기 주장을 알리는 데만 신경 쓰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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