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가 없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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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이라크 취재 불허, 언론 통제 비난 거세자 제한 취재 허용

 
“갑자기 미군이 나타났다. 순간 총알 세례가 비바람처럼 몰아쳤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니콜라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난 그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고, 그는 내 몸 위에서 죽어갔다.”

지난 3월6일 이탈리아 일간지 일 마니페스토는 이라크에 종군했던 쥴리아나 스그레나 기자(56)가 참담함 심정으로 쓴 수기 <나의 진실>을 실었다. 이 글에서 스그레나 기자는 이틀 전인 3월4일 밤 발생한 비극을 상세히 묘사했다. 이라크 무장 세력에게 한 달 동안 억류되어 있던 그녀는 이탈리아 정보요원 니콜라 칼리파리(51)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직후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바그다드 공항을 1km쯤 앞둔 곳에서 스그레나 기자 일행은 3백~4백 발의 총격을 받았다. 칼리파리 요원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기자와 다른 요원은 부상했다. 미군은 그들이 탄 차량이 정지 신호를 지키지 않아 사격했다고 밝혔지만, 스그레나는 “정지 신호를 받지도 않았고 과속을 하지도 않았다”라고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곤경에 빠졌다. 구출 작전이 동맹국 군대에 의해 망쳐져 반미 감정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칼리파리 요원 장례식 날 이탈리아 시민 수천 명이 ‘무명용사들의 묘지’에 누운 칼리파리의 관을 에워싸고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이런 외교적 위기에서도 비극의 원인을 종군기자 탓으로 돌리는 여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미 2004년 8월20일 이탈리아 언론인 엔조 발도니가 무장 세력에 납치되어 피살되는 비극을 겪었는데도 이탈리아 기자들의 이라크행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정보의 자유 없으면 그 어떤 자유도 없다”

이탈리아와 달리 같은 이라크 파병국인 한국에서는 종군 취재를 둘러싸고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단 한 명의 언론인도 납치를 당한 적이 없지만, 정부는 한국 기자들의 이라크 취재를 완강하게 금지하고 있다. 분쟁 지역 취재 전문인 김영미 기자는 지난 1월 이라크 총선 취재를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가 한국 정부의 방해로 발길을 돌렸다.

김기자는 “나를 돕던 이라크 지방 정부 관료들이 한국 정부의 입국 금지 요구에 난처해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국내 언론인들의 이라크 취재는 자유롭게 허용되었으나 몇 달 전부터 정부는 이라크 임시정부측에 한국인에게 비자를 내주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외교부 정책기획실 관계자는 “아직 이라크에서 납치·테러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교민 보호 차원에서 입국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이라크 총선을 전후해 이라크에서 자유롭게 취재 활동을 벌인 세계 각국 기자는 3천명이 넘었다. 일본의 공영 방송 NHK도 바그다드에 사무실을 두고 기자 2명이 상주하고 있다. NHK 서울특파원 오카모토 겐코 씨는 “비록 이라크가 위험하다 하더라도 현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라크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라크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5일 일간지 리베라시옹 기자가 이라크에서 납치되었을 때 시라크 대통령은 자국 언론사에 대해 이라크에 기자를 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1월24일 프랑스 30여 언론사는 ‘언론의 취재 자유는 기본권이며, 세계의 모든 정부가 보호해야 할 가치다. 정보의 자유가 없으면 그 어떤 자유도 없다’라는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김영미 기자에 대한 취재 거부 사건을 계기로 ‘언론 통제’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라크 취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3월10일 정부 관계자는 “3월중 1주일 동안 아르빌 지역에 한해서 허용할 방침이다”라고 한계를 분명히 했다. 기자단을 구성해서 자이툰 부대장의 지휘 아래 정해진 코스로 취재한 후 같이 돌아와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취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영미 프리랜서 PD(34)는 중동 지역에서 3년 넘게 현장 취재를 해온 베테랑 종군기자다(<시사저널> 제788호 참조). 그녀는 지난 2월 하순 이라크 총선 취재를 위해 출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시 귀국했다. 서울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왜 중동 취재를 포기하고 돌아왔나?
예정대로였다면 1월28일 쿠웨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그다드에 도착해 총선을 취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이라크 입국을 허용했던 쿠웨이트·이라크 정부와 미군이 이번에는 허용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국 정부가 비자를 주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 뒤 10여 차례 이라크 입국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심지어 터키 국경을 통해 입국하려다 3박4일 동안 국경 출입국관리소에 억류되기도 했다. 터키 앙카라의 한국 서기관과 이라크 아르빌 외교관이 국경 초소로 달려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했다. 결국 2월25일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의 허가가 없이는 이라크 입국이 불가능한가?
나는 마음만 먹으면 편법으로 이라크 입국을 강행할 수 있다. 이라크 현지 관료들과 친분이 있고, 국경의 허술한 틈새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편법 입국이 선례가 되면 이후 이라크를 취재하려는 한국 기자들도 불법 입국을 할 수밖에 없다. 특정 종교의 이해를 위해 이라크 입국을 노리는 선교사들이 악용할 수도 있다. 나는 최대한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싶다.
외신 기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외국 동료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 실망이 크다. 왜 한국인만 이라크에 들어갈 수가 없는지 의아해 한다. 외국 언론사 중에는 내 취재를 후원하는 곳도 있었는데, 그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 지난 3년간 국제 분쟁 전문 기자로서 언론사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이라크에 가려고 하나?
우리는 4천명에 가까운 병력을 이라크에 보낸 3대 파병 국가 중 하나다. 이라크 내부의 역학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우리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쿠르드족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의 동향은 자이툰부대의 안전이나 존재 의미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앞으로 어떤 취재를 하고 싶나?
이라크 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 그리고 4년 동안 취재한 것을 편집해 심층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그동안 목숨 걸고 촬영한 이라크 영상 필름이 5백 시간 분량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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