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같은 공연장, 음악으로 채운다
  • 유혁준 (음악 칼럼니스트) ()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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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로 승부하는’ 콘서트홀 점차 늘어

 
한때 파리와 함께 유럽의 중심지로 이름이 높았던 체코의 수도 프라하. 일찍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예술의 향기가 그윽한 프라하는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와 같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인구 1백20만 명인 프라하에는 도시 전역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연장이 산재해 있다. 19세기부터 음악이 생활의 일부가 된 프라하 시민들은 매일 저녁이면 정성스레 정장을 차려입고 음악회장으로 향한다.

체코인에게 어머니와 같은 몰다우 강 옆 팔라크 스퀘어 1번지에는 ‘루돌피눔’이라는 돌로 만든 공연장이 있다. 국민극장 이후에 프라하에서 두 번째로 생긴 이 르네상스풍 건축물은 1876년에서 1884년에 걸쳐 지어졌다. 체코가 자랑하는 교향악단인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이기도 한데, 환상적인 어쿠스틱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루돌피눔에는 실내악 전용 홀인 수크홀과 전시회 및 리셉션장으로 이용되는 갤러리, 그리고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위한 드보르자크홀이 있다.

매년 드보르자크홀에서는 체코의 대표적인 음악 축제 ‘프라하의 봄’ 폐막 연주회가 열린다. 폐막 연주회에서는 체코인의 영원한 레퍼토리인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가 어김없이 연주된다. 2005년 1월4일, 드보르자크 서거 100주년을 맞는 첫 시즌의 개막 연주회에서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해 수준 높은 현지 청중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시민극장의 스메타나홀은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둥지를 튼 또 다른 콘서트 전용 홀이다. 1912년 문을 연 이곳에서는 매년 ‘프라하의 봄’ 축제 개막 연주회가 열린다. 이런 콘서트 전용 홀과 함께 체코에는 수준 높은 오페라 극장도 여러 곳이 있다.

 
1881년에 ‘체코인에 의한 체코 음악 연주’를 위해 만들어진 국민극장은 개막 작품으로 체코의 건국 신화를 오페라로 만든 스메타나의 <리부셰>가 초연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개관 직후 화재를 당해 프라하 시민들의 모금으로 2년 뒤 다시 준공되었다. 이후 국민극장에서는 주로 체코 작곡가의 오페라가 막을 올리고 있다. 1888년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로 개관 공연을 한 프라하 국립 오페라에서는 전세계 모든 오페라 레퍼토리를 즐길 수 있다. 에스타테 극장은 전통대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주로 올린다.

다양한 콘서트 전용 홀과 오페라 극장을 갖춘 체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지난해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재개관 오프닝 연주를 가졌다. 1백50억원을 들여 새 단장한 대극장은 서울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한 로비의 장식부터 어리둥절하게 만들더니, 리모델링의 핵심이었던 음향 개선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빈필 특유의 고색 창연한 음색이 제 소리를 내지 못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구 천만 명이 넘는 서울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인구 1백20만 명인 프라하가 여럿 가지고 있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콘서트 전용 홀이 서울시에는 한 군데도 없다. 아니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서 경제 대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나라 전체를 통틀어도 그렇다. 어째서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하는 우리 음악계가 정작 음악을 전해줄 제대로 된 연주회장 하나 갖추지 못한 것일까?

지방 문예회관 평균 가동률 20~30%

현재 국내의 공연장 수는 1백10 곳이 넘는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민을 위한 ‘선심용’으로 너도나도 지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세종문화회관을 모델로 했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의 태생적 한계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 3천석이 넘는 ‘공룡’ 공연장인 대극장은 규모에서만 아시아 정상이었지, 애초에 다목적 홀로 계획되어 음향은 메마르기 그지없었다. ‘형님’이 이럴진대 ‘동생’ 또한 제대로 될 리 없다. 전국 대부분의 문예회관은 부채꼴 모양의, 오페라도 하고 교향악단도 연주하는 다목적 홀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외형은 모두 회색 콘크리트로 ‘도배’했다. 외향이나 음향 설비 면에서 국내의 공연장은 철저하게 하향평준화했다.

우리 공연장의 더 큰 문제점은 서울과 몇몇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 문예회관 대부분의 가동률이다. 채 15%도 되지 않는 곳도 있고, 평균 20~30%라고 하니 빈집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 만든 시민의 재산이 매일 공연은 고사하고,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열리는 공연마저도 대중에 영합하는 장르에 그쳐 고품격의 음악을 향유할 기회는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도시 음악 문화의 대표 주자 격인 교향악단조차도 해당 문예회관에 상주하기는커녕 매년 초 눈치 보며 대관 신청을 해야 하는 형국이다.

 
예술경영 전문가를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고 공무원들의 나눠먹기식 채용으로 인해 전문적인 극장 운영은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다. 짓기만 했지 후속 조처가 뒤따르지 않아 해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공연기획 예산이 10억원을 넘는 곳이 드물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최근 수도권에 몇몇 공연장이 새로 들어서서 관심을 모은다. 고양시의 덕양 어울림누리가 지난해 개관한 데 이어 3월 말에는 서울 중구의 충무아트홀이, 10월에는 성남문화예술의전당이 첫선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공연장 역시 다목적 홀로 지어져 아쉬움을 남긴다(지방 문예회관 중 전문 공연장은 대구오페라극장이 유일하다). 내년에 준공되는 일산 아름누리는 국내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가진 직사각형 콘서트 전용 홀이 될 전망이다.

착공 당시의 이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문화 재단을 토대로 전문 인력을 보강하고 있다. 전문 인력 영입을 통해 기획력을 높인 것은 효과가 있었다. 올해 공연기획예산을 25억원 확보한 덕양 어울림누리는 현재까지 80%의 객석 점유율을 보이며 순항하고 있다. 얼마 전 어울림누리는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단독 초청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성남문화예술의전당도 많은 전문 인력이 포진해 관심을 모은다. 성남문화예술의전당의 경우 대극장은 오페라, 중극장은 콘서트, 소극장은 실내악 위주로 사용될 예정이다. 대관 공연보다 기획 공연 위주로 공연장을 운영할 생각이라니, 오는 10월14일부터 한 달간 예정된 개관 축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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