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전반, 지루한 후반
  • 김봉석 (영화 평론가) ()
  • 승인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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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과 고든은 낯선 지하실에서 깨어난다. 지하실 양쪽 끝에 묶인 두 사람의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 가운데에는 낯선 남자의 시체가 있다. 그리고 톱이 2개 있다. 톱의 용도는 족쇄가 아니라, 발목을 자르라는 것. 지령이 시작된다. 지금 시각은 10시, 여덟 시간 후인 저녁 6시까지 고든은 처음 본 애덤을 죽여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부인과 아내가 죽는다. 고든과 애덤은 대체 어떤 관계이고, 왜 지하실에 갇힌 것일까. 두 남자는 어떻게 난국을 돌파할 것인가.

여기까지 읽고 나면, 다음을 알고 싶을 것이다. 호주 출신 신인 감독 제임스 완의 데뷔작 <쏘우>는 관객의 호기심을 확실하게 자극한다. 그 호기심이 바로, 제작비 1백20만 달러를 들인 <쏘우>가 6천만 달러 가까운 흥행 수익을 올리게 한 원천이다. <쏘우>는 기발한 상황에서 시작해,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와 경찰의 두뇌 싸움으로 시선을 끌고, 다시 극적인 반전으로 관객과 승부한다. 보고 나면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몇 가지 아이디어와 장치만으로도 <쏘우>는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것이 바로 저예산 영화의 생존 방식이다.

아이디어·캐릭터·반전은 ‘훌륭’

 
돈이 없으면 머리다. 저예산 영화의 승부처는, 관객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새로움 혹은 놀람이다. <블레어 위치>는 마녀의 전설을 따라 가는 촬영팀만 찍는 가짜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내용이나 형식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현대 괴담으로 격상된 <블레어 위치>는 단 3만5천 달러를 들여 1억4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특히 스릴러와 공포물은 아이디어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메멘토> 역시 시간을 순환 사슬 식으로 엮지 않았다면, 평범한 스릴러물로 볼 수도 있다. 저예산 장르 영화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관건이다. <쏘우>의 아이디어도 훌륭하다. 시나리오를 쓴 리 웨널과 감독인 제임스 완은 시나리오의 일부 장면을 미리 단편으로 찍어 프로듀서인 그렉 호프만에게 보여주었고, 장편으로 만들 제작비를 구했다. 발목을 자를 톱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두 남자. 서로를 죽이지 않고는 자기가 죽든가, 혹은 모두 죽어야 하는 상황. 그들은 서로를 속이고, 때로는 협조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하지만 <쏘우>의 아이디어는 장편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지만, 40분이 넘어가면 지루해진다. <큐브>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일종의 수학 게임이었다. 계속 단서를 던져주면서, 하나씩 퍼즐을 풀어 간다. <쏘우>는 바깥의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
연쇄 살인마는 자신의 고통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절대 생존할 수 없는 트랩을 만들어둔다. 늘 죽고 싶다고 말해온, 혹은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며 마약이나 술에 빠진 사람만을 골라 ‘살아 있음’의 행복함을 깨닫게 해주는 철학적인 살인마다. 그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고든의 가족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쏘우>는 지루함을 이겨보려 한다. 하지만 지하실을 벗어난 <쏘우>는, 살인마의 캐릭터 외에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발한 단편과 킬링타임용 중편을 무리하게 맞붙여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쏘우>는 절반의 성공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캐릭터, 반전은 좋았지만 지루하다. 그럼에도 <쏘우>는 평범한 스릴러물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가슴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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