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분쟁 대비한 ‘안전 처방전’ 만들자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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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만은 만들겠다] 중재 기관 설립하고 합리적 과실 기준 마련

이기우 의원의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법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실에는 의료 사고에 대한 민원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이의원이 보건복지위 간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실에서 민원에 대응하느라 의료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관련 제도가 너무 미비했다. 한 해 의료 사고가 얼마나 일어나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었다. 법원행정처에 자료를 의뢰한 결과 의료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이 1989년 69건에서 2003년 7백55건으로 증가했다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의료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이 찾아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분쟁 조정을 하는 의료심사조정위원회(비상설 기구)로 들어온 의료 분쟁 신청 건수는 2001년 이후 한 해 평균 10건을 넘지 않았다. 그나마 의사나 의료기관이 조정을 거부할 경우에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강제 조항이 없다.


이기우 의원이 추진하는 ‘의료 사고 예방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은 공정하고 전문적인 의료사고피해구제위원회(상설 기구)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동안 환자나 가족 들에게는 소송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소송을 할 경우에도 1심에만 평균 2, 3년이 걸릴 정도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컸다.
또한 소송보다는 조정을 우선하도록 (임의적) 조정 전치주의를 도입하고 있다. 의료 사고에 대해 신속하게 보상할 수 있는 제도도 포함하고 있는데, 의료 배상 책임보험이나 공제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방안 등이 그 사례다. 의사가 경미한 과실을 했을 경우에는 형사 처벌 특례를 인정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기우 의원은 의료 사고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환자들은 의료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의료기관을 불신하고, 의사들은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의료 사고에 대해 불안해 한다.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 기관을 만들고, 과실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면 이런 제도가 의료계와 환자 모두에게 안전 장치 구실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관련 부처와 의료계 등 이해 당사자와 충분히 협의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먼저 의료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행정자치부와 조직 신설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제한적으로 무과실 의료에 대해 국가가 보상하는 방안을 실현하려면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 등과 협의해야 한다. 경미한 과실에 한해 형사 처벌 특례를 인정하는 문제만 해도 위헌 소지가 우려되기 때문에 법무부와도 긴밀히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

5월에 의료계 등 참여한 공청회 개최 계획

무엇보다도 의료계와 법안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현재 의료계는 의료 사고 분쟁에 대해 필요적 조정 전치주의를 요구하고 있고(이의원은 임의적 조정 전치주의 도입), 배상과 관련해 공제조합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과실 배상 기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도 쟁점 사항이다. 1996년부터 의료 사고와 관련해 정부 입법안이 제출되고, 16대 국회에서는 이원형 의원이 입법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것도 관계 부처, 의료계와 이견을 좁히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기우 의원은 오는 5월에 의료계·시민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공청회를 계획하고 있다. 법안 자체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사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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