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실세 끈 떨어지면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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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사무총장 내정 오정희씨와 ‘양심선언’ 현준희씨의 엇갈린 운명

 
노무현 대통령이 오정희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감사원 사무총장에 전격 기용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지나친 정실 인사라는 비판이 주류다. 그가 노대통령이 아끼는 부산상고 후배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윤철 감사원장은 지난 2월23일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내가 40년간 공직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척 보면 안다”라는 말로 코드 인사 시비를 일축했다. 그가 노대통령의 후배라는 점보다는 능력이 있어서 자연스레 발탁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오씨가 이기준 전 교육 부총리 임명 논란 당시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을 책임진 비서관이었다는 점을 보면 감사원장이 오씨의 능력을 두둔하는 것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최근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불러온 유효일 국방부 차관의 5·18 진압부대장 경력 문제도 오씨가 검증 실무 책임자로 있을 때 발생한 일이다.

이처럼 오정희 감사원 사무총장 내정자를 둘러싼 끊임없는 인사 파열음은 참여정부의 인재 기용 원칙에 대해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의문점을 던져주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에 대한 자질 시비는 이번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된 뒤에도 오씨가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인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해 11월 전윤철 감사원장 앞으로 ‘오정희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감사원 5국 2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김현철씨 등 당시 권력 실세들과 연관된 부정 비리 의혹이 제기된 효산콘도 비리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장문의 질의서를 보냈다. 기자는 당시 이 내용을 제보받고 두 달여 동안 감사원의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사건 관계자들을 두루 접촉해 의혹의 진상을 추적했다.

효산콘도 비리 사건에 얽힌 두 사람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 사건은 전 감사원 6급 직원 현준희씨가 1996년 4월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양심선언한 감사원 내부 고발 사건이다. 당시 감사원 4국 1과 감사주사로 있던 현준희씨는,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스키장을 운영하던 효산그룹이 수도권정비법상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콘도를 짓기 위해 권력 실세들과 손잡고 건교부 등 관련 공무원들에게 로비해 불법 건축인가를 따냈다는 제보를 받고 그 배후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그러나 상부 지시에 의해 감사가 중단된 채 현씨의 감사 정보 서류는 감사원 5국 2과로 넘어갔다. 당시 5국 2과장이 오정희씨였다. 현준희씨는 8개월 동안 줄기차게 배후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그의 상급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 정보가 오정희 과장이 책임자로 있는 5국 2과로 넘어가 유야무야되자 현씨는 급기야 민변을 찾아가 효산 비리의 배후와 감사 중단 내막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파문이 일자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해 그해 5월1일 이철수 제일은행장과 장장손 효산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효산이 제일은행으로부터 1천1백50억원을 불법 대출한 점을 적발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도 은행·건교부 등 행정관청과 감사원까지 떡주무르듯 한 ‘효산의 힘’ 몸통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효산이 장학로 청와대 부속실장에게 떡값 6천만원을 주었고, 김영삼 대통령의 중학교 동창 김경배씨를 고문으로 받아들여 문어발식 사업을 벌였으며, 김현철씨의 대리인이던 박태중씨가 효산콘도 24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당시 검찰은 불법 대출 혐의로 제일은행장과 효산 회장을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대신 이 사건에 대한 감사 중단 사실을 폭로 고발한 현준희씨에게는 파면·고발·구속 등 가혹한 보복이 뒤따랐다.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 사건에서 오정희씨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현준희씨가 양심선언을 하기까지 그가 작성해 넘긴 ‘감사 정보 보고’ 자료를 오정희씨가 책임자로 있던 5국 2과가 ‘참고 자료’로 분류해 묵혀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감사원 5국 2과는 감사 비위 정보를 분류하고 배당하는 부서이다. ‘참고 자료’라는 분류는 정보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거의 묵살하는 수준의 판단이다. 그 결과 현준희씨의 효산콘도 비리 감사 정보 보고서는 5국 2과에서 먼지가 쌓여갔다.

현준희씨의 고발로 파문이 일자 이시윤 감사원장은 처음부터 효산 비리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국회에 출석해 “효산 비리는 마땅히 원장에게 보고해야 할 사안이다. 처음에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감사팀을 대거 투입해 대대적인 감사를 펼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감사원 5국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5국 2과에서 현준희씨의 정보 보고를 참고 자료로 분류한 것은 정보 판단 잘못이다. 분류자가 최선을 다해 정황을 잘 살피지 않았다는 뜻인데,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오정희 과장으로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사원 공보관실에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5국 2과에는 한 달에 6백건 이상 감사 정보가 들어오는데, 과장이 일일이 분류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 직원이 분류한 것을 과장은 참고로 한번 읽어보는 정도로 사인한다. 4국에서 이미 감사가 끝난 것을 받았기 때문에 오정희 과장에게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현준희씨는 당시 오정희 과장이 효산콘도 비리 감사 정보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현씨가 1995년 6월 5국 2과에 찾아가 직원들에게 직접 중요성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서서 설명을 듣던 오과장은 문답까지 받은 사안인데 왜 5국 2과로 떠넘기려 하느냐며 다시 내가 소속한 4국 1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다. 곤란해진 4국 1과장은 나에게 경기도 담당과인 7국 2과로 넘기라고 지시했다. 나는 핑퐁 게임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나중에야 감사원 수뇌부가 5국과 4국을 조정해서 오정희 과장에게 배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다른 문제점은 현준희씨의 양심선언으로 파문이 확산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5국 2과에서 핵심 서류를 없애거나 위·변조했다는 의혹이다. 1996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야당 법사위 소속이던 천정배·조찬형 의원 등은 감사원에 장문의 의혹 질의서를 보내고 현준희씨가 작성한 효산 비리 감사 정보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제출을 요구한 자료 중 현씨가 정보 보고 말미에 첨부한 열두 장짜리 별지는 효산콘도 비리를 둘러싼 당시 정권 심장부 연루 정보 등 핵심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감사원은 국회에 그 서류 열두 장이 사라졌다고 답변했다. 대신 감사원은 1997년 3월께 현씨가 작성했다는 한 장짜리 감사 정보 보고서만 천정배 의원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5국 2과가 보관하던 것인데, 문제는 이 서류마저 변조되었다는 점이다. 당초 현씨가 작성한 자료에는 효산측 직원들이 로비를 벌이기 위해 정부 청사를 여덟 차례 방문해 건교부 공무원들과 접촉한 전산 출입 기록이 증거로 들어있었다. 그러나 감사원은 그 대목을 지운 채 현씨가 작성한 원래 보고서인 양 국회에 제출했던 것이다.

오정희씨, 서류 변조와 무관한가

기간으로 따지면 핵심 감사 정보를 다룬 별지 열두 장이 증발한 것과 서류를 변조한 것에 관련이 있는 5국 2과 책임자는 3명 중 1명으로 압축된다. 그 기간에 5국 2과장을 지낸 사람은 각각 손방길 현 예금보험공사 감사(1997년)와 황숙주 현 감사교육원 국장(1996년), 그리고 오정희 사무총장 내정자(1995년)이다.
손방길 감사는 기자에게 “국회에 제출한 서류가 원래 서류와 다르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현준희씨 사건은 이미 내가 5국 2과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무슨 내용이든 그 전에 이루어졌기에 나는 전혀 모른다”라고 말했다. 황숙주 국장은 “내가 부임하니까 전임 과장이 현준희씨 정보 보고를 참고 자료로 분류해 두었더라. 내 재임 중에 서류를 변조한 일은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특히 국회 자료를 요구했을 때는 내가 2국 4과장으로 가 있었기 때문에 무슨 자료를 요구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 문제를 둘러싼 의혹도 오정희 과장에게 집중된다. 이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감사원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현씨가 폭로한 효산콘도비리사건과 관련해 지난 2002년 8월 대법원이 현씨에게 상관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했고, 파면 처분 취소 행정소송도 기각됐다”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내왔다.

 
당시 감사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오정희 과장은 일선 실무자급이기 때문에, 핵심은 그 윗선인 이명해 5국장이라고 봐야 한다. 이국장은 이 사건 뒤 이례적으로 두 계급이나 특별 승진해 김영삼 정부 말기 감사원 사무총장을 맡았다”라고 전했다.
취재에 응한 전·현직 감사원 관계자들은 대체로 오정희 2과장이 당시 효산콘도 비리를 가볍게 판단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보 판단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당시 직책으로 보아 이 문제가 오정희씨의 책임 아래 이루어진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그를 두둔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감사 공무원이던 현준희씨는 감사 중단 외압을 주장하며 양심선언을 했다. 만일 오정희 과장이 이 사건을 적극 ‘감사 실시’ 등급으로 분류해서 배정했더라면 현씨가 민변으로 달려가 양심선언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을 둘러싼 현준희씨의 양심선언 사건은 현재의 감사원에게도 ‘원죄’이자 뜨거운 감자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고집하려다 보니 현 감사원도 주름진 모습을 계속 보여야만 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지난해 10월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에게 질책을 당했다. 효산콘도 비리 문제와 관련해 자료 두 가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감사원이 허위 답변서를 보냈다가 들통 난 것이다. 전원장은 이 자리에서 감사원 실무자의 잘못을 시인했다.

 
또 지난해 11월 공무원노조가 감사원장 앞으로 효산콘도 비리와 오정희씨의 은폐 의혹 등을 둘러싼 질의서를 보냈지만 감사원은 민원 처리 기한을 넘기며 질질 끌다가 최근에야 재판 중인 사안이므로 답변할 수 없다는 요지로 짤막한 답신을 보냈다.
이런 가운데 전윤철 감사원장은 오정희씨가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 문제와 관련해 시비가 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노대통령에게 사무총장 후보로 ‘단수 추천’했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참여정부의 처사에도 절망을 느낄 뿐이다.” 오정희씨가 감사원 사무총장에 내정되던 날 현준희씨는 이렇게 장탄식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씨는 이 사건으로 파면되고 구속된 후 9년째 감사원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는 파면된 후 살던 집을 날리고 연금조차 절반만 나오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동안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현준희씨의 양심선언을 의로운 공무원의 행위로 간주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 인권·시민 단체들은 현씨에 대한 감사원의 보복을 규탄하며 지금까지 무료 법률 지원을 해오고 있다.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인 이해찬 총리는 사건 초기 국회에서 ‘효산 비리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다. 천정배 의원 역시 현준희씨와 함께 감사원의 부당한 감사 중단 배후를 밝히는 공세의 선봉에 섰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부패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부패방지법 입법 제안 골자에는 현준희씨의 양심선언이 법 제정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대목도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강조하던 ‘내부 고발자 보호’는 말만 무성했지 현준희씨 사례가 보여주듯 아직은 공염불이다.  

 
양심선언자들이 뭉쳐 ‘공익제보자 모임’이라는 단체를 꾸렸다. 지난 2월22일 저녁 이들은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두 번째 정기 모임을 가졌다. 감사원 내부 문제를 고발한 이문옥 전 감사관과 현준희 감사주사, 군부재자투표 양심선언을 한 이지문 중위, 한준수 전 연기군수, 혈액 부실관리 실태를 고발한 김용환 대한적십자사 직원 등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공직 부정 비리 제보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 모임에는 양심선언자 22명 중 13명이 참석했다. 공무원 출신 외에도 사학 비리를 고발한 대학교 직원, 산자부의 기술료와 연구개발비 비리를 폭로한 연구원 등 각계의 다양한 내부 고발자들이 회원이다.

회의를 주재한 모임 대표 이문옥 전 감사관은 “파면이나 해고, 민·형사 소송 등으로 가혹한 보복을 당하는 것이 공익 제보자들이 걸어가는 공통된 수난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고통받는 공익 제보자들이 스스로를 돕고 지원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복직 투쟁 끝에 승리한 이문옥 전 감사관은 그 험난한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양심선언을 한 뒤 나를 파면한 감사원장이 김대중 정부 들어 사법개혁위원장이 되고, 나를 구속한 검사가 차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마저 느꼈다. 그러니 의로운 일을 하고 수난받는 우리 공익제보자들로서는 복직만 해도 크나큰 싸움이라 생각하고 서로 격려해가며 고비를 넘겨야 한다.” 모임은 앞으로도 공직 부패를 감시하는 것은 물론 후배 양심선언자들이 생길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서 그들을 돕겠다고 밝혔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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