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경을 발견하는 디자인
  • 백지숙(미술 평론가) ()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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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쌈지길 ‘룸 스케이프전’/미술의 장르 허무는 신선한 충격

 
이른바 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비미술인’과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미술을 지루해 하고 어려워할 뿐 아니라 심지어 미워하기조차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미술이 일상에서 소외당하고 배척받는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겠고, 또 나아가 미술이 과연 꼭 쉽고 재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무엇보다 미술이 이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데는 미술이라는 용어의 모호한 표상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미술 하면 구체적인 개념이나 활동상이 우리 머리 속에 잡히기보다는, 미술관이나 명화, 또는 고흐나 이중섭 같은 광기 어린 천재 화가가 우선 떠오르게 된다. 미술 제도를 움직여온 오래된 관행과 거기에 따라붙은 아우라 효과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방향을 조금 틀어, 미술을 시각 예술 혹은 시각 문화라는 용어로 확장해서 접근해보면, 생각보다 미술이 우리 삶과 만나는 방식은 꽤나 다양하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미술 개념은, 다름아닌 디자인이라는 용어로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고 있다.

요즈음 현대미술가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내로라 하는 작가들은 모두 그래픽·타이포 디자인은 물론이고 건축·인테리어·가구·패션 등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가·건축가·그래픽 디자이너 들이 같이 참여하는 전시회나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드물지 않다. 물론 이들이 활동하는 방식은 작가적 관점과 태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미술관 안에 건축물인지 인테리어인지 가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설치물을 들여놓아 관객들로부터 더욱 큰 원성을 듣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작가 처지에서는 장르로 칸막이되어 있는 ‘영토’를 헷갈리게 만들자는 작전인데, 막상 명화(名畵)에 대한 기대로 미술관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이 들어차 있는 것을 보고 속았다! 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또 어떤 작가들은 장르 간에 꿈쩍도 하지 않는 그 튼튼한 경계일랑 그대로 두고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활동하자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미술판에서는 작가로서, 그리고 시장판에서는 디자이너로서, 이른바 투잡족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이 때 두 영역 모두에서 성공한 작가를 보면 어쩐지 얄밉다! 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소파에 몸을 묻고 천장을 바라보니…

내가 알기로, 최정화는 그 ‘얄미운’ 작가 중 성공한 반열에 오른 매우 드문 예이다. 영화아트디렉터이자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각종 비엔날레 초대 작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이 작가는, 미술이 상품이라는 것, 그리고 뒤집으면 상품이 곧 미술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런 최씨가 때마침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미경, 일본의 가구디자이너 나미 마키시와 함께 룸스케이프라는 가구 디자인 브랜드를 론칭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 최정화는 단순한 육면체 형태에 다양한 ‘껍질’을 씌운 소파 시리즈를, 그리고 최미경은 기성 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선반 등에 전통적인 이미지를 프린트한 작업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나미 마키시는 간단한 소재를 활용해 소략하면서도 개성적인 책장을 벽에 기대어 놓는다. 또 최정화와 최미경은 메탈 소재의 사각형 티테이블과 전통적인 원형 소반을 원용한 공동 작업을 내놓기도 한다. 이 세 사람의 구성과 작업 방식도 이채롭지만 전시장소도 이색적이다.

전시회 장소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인사동의 공예백화점 쌈지길인데, 쌈지길 안에서도 갤러리와 숍 그리고 지하 주차장 세 군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휴일 오후, 관광객과 나들이 가족으로 들끓는 인사동 거리를 뚫고 들어가, 육중한 쌈지길 빌딩 지하 주차장에 놓여 있는 최정화의 태극기 소파 위에 앉아본다. 소파에 몸을 묻고 어두운 주차장의 높은 천장을 쳐다보노라니, 웬일인지 기분이 꽤 그럴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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