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의 종말로 치닫는 ‘일본 네오콘’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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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편식’하며 미국 맹종…일본 ‘외교 고립’ 원인 제공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사실상 좌절되면서 일본은 지금 총체적 내우외환 상태에 빠져들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중국을 중심으로 한 이웃 국가들과의 마찰이 위험 수위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왕따 신세’가 되었다. 특히 중국의 반일 시위는 이미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인해 일본 재계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정부가 동중국해 가스전 시굴권을 민간에게 허용하는 조처로 맞불을 놓으면서 중.·일 감정 대립이 자칫 무력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예견되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일본을 편들어주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일본은 외교 사상 전무후무한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은 일찌감치 돌아섰고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 역시 일본의 왜곡된 역사 감각을 연일 꾸짖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유엔분담금 2위 납부국인 일본에 대해 한때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이 충분하다는 국제 사회의 여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상임이사국은커녕 전세계에 노출된 부도덕한 이미지를 수습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상임이사국 진출 물 건너가자 ‘고이즈미 때리기’

물론 일본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한국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 그것도 모자라 교과서를 통해 ‘전쟁 범죄’를 왜곡하면서까지 국제 사회의 지도국이 되겠다는 욕심을 품었던 것이다. 일본 도쿄 대학의 한 교수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그나마 양식이 있었다고 한다. 즉, 취임 초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본인 스스로 보수 우익 세력의 아이콘임을 자부한 그는,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같은 헛된 꿈은 진작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외무성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미국의 언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외무성이 고이즈미 총리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 1군단사령부의 일본 이전과 미·일 동맹 강화에 대해 협조한다는 거래가 바로 ‘미국의 언질’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임이사국 진출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일본 내에서는 ‘고이즈미 때리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지난해부터 광풍처럼 불기 시작한 일본 우익의 군사화와 독도 영유권 주장 및 교과서 등 ‘맹목 외교’의 주범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고이즈미 때리기는 정치인으로서 수명이 다한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의 빈자리를 그보다 더 위험한 세력이 차지하기 위한 공작일 수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군부처럼 일본 바깥의 정세를 오판 또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일본을 또 한번 실패의 길로 몰고 갈 진짜 위험한 세력인 것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 이후 일본 내 보수 잡지에 횡행하는 이들의 상황 인식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는 히다카 요시키라는 인물이 일본의 보수 월간지 <보이스> 2005년 3월호에 실은 글이다.(국내에서 발행되는 월간 <넥스트> 2005년 4월호에 번역 수록). 이 글에서 그는 ‘부시 2기 정권의 실질적인 국무장관은 (라이스가 아닌) 체니 부통령이 하고 있고’ ‘미 외교가 체니 부통령의 통제를 받게 되면 미국의 대일 외교는 펜타곤(국방부)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그는 라이스 인맥으로 개종한 해들리 보좌관을 여전히 체니 직계로 분류하고 있다)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펜타곤과 핵무기를 토대로 하는 미국의 외교 시대에 일본도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같은 잡지에 기고한 가타오카 데쓰야 스탠퍼드 대학 후버 연구소 전 상급연구원의 글은 왜 이들이 체니에게 열광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4월 체니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의 군사 전략이 이른바 맥아더헌법(평화헌법)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공수동맹체제로 급격하게 전환하기 시작했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체니의 방일을 계기로 유사법제 및 일본 군사화와 관련한 각종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해, 지난해 9월 마침내 ‘중국을 일본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최초로 규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정신이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신 방위계획대강’에 그대로 계승되었고, 올해 2월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외무·국방 장관 회담(2+2)으로 이어진 것이다.

“부시 2기의 실질적 국무장관은 체니”

미국 네오콘과 군수산업을 대표하는 체니 부통령이야말로 이들이 열망하는 보통국가화와 군사대국화의 염원을 달성케 해줄 은인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미국의 정책을 주도해 가야 할 ‘희망봉’인 것이다.
미국 네오콘과 군부 및 군수산업에 대응하는 이들 일본내 세력을 ‘일본판 네오콘’ 혹은 ‘방위족’이라고 부른다. 대외정책적인 경향으로는 ‘미·일 동맹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력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이다.

일본판 네오콘 세력은 주로 자민당 내 전후세대의 젊은 의원들이 중심이다. 이들의 성향은 한국의 386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일본의 386 세대이다. 이들은 자기네 선배 세대가 저지른 역사적 범죄 행위에 대해 책임의식이 없다. 오히려 주변 국가의 비판에 대해 심정적으로 반발하며, 전후 일본이 거둔 성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지난 10년간 장기 불황에서 겪은 좌절감과 중국의 대두 등으로 인해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다.
전전 세대가 아시아에 대한 역사적 책임 의식에서 나름으로 한국이나 중국과의 교류를 강조하는 아시아 중시 입장을 유지해온 데 비해, 이들은 자신을 구미 세력의 일환으로 자처하기를 좋아한다.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구미적 가치를 통해 북한이나 중국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한국에 대해서도 친근감이 별로 없다. 메이지 시대의 ‘탈아입구론(脫亞入口論)’의 현대판이다. 과거 그들의 선배처럼 이들 역시 자기들이 짝사랑해 마지않는 구미로부터 별로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 고민이라면 고민일 것이다.

 
방위청을 중심으로 한 ‘방위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들은 타이완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중국과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겨룰 만한 군사력의 확충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일본판 네오콘과 방위족의 공통된 특징은 바로 일본의 활로를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서 찾고자 한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 군부와 네오콘 그리고 군산복합체 등 미국판 미·일 동맹파가 이들의 뒤에 버티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들의 상관관계에 대해 일본의 한 안보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유골 파문은 반북 캠페인의 일환”

“타이완 해협이나 북핵 문제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미국 군부가 쥐고 있다. 미국 군부가 타이완이나 북한에 대해 과장된 정보를 제공해도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다. 일본은 그대로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일본의 한계이다. 즉 미국 군산복합체가 판촉 활동의 일환으로 군이나 네오콘을 통해 과장된 정보를 흘리고, 이들은 이를 빌미로 방위력을 확충해가는 공생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북한 유골 파문이나 최근 한·일 간에 발생한 독도 영유권 문제, 교과서 왜곡 등은 일본 내 미·일 동맹파가 나름으로 치밀하게 계산한 소산이다”라고 국내의 안보 전문가는 지적했다. 즉 방위 예산 확충을 위해서는 일본 대중을 설득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자기들이 만만하다고 여기는 한반도, 즉 남북한을 계속해서 시빗거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획책해 왔다는 것이다.

북한 유골 파문은 고이즈미 총리나 외무성이 추진해온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파탄 내고 일본 여론을 반북 캠페인으로 몰아가기 위한 하나의 기획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시마네 현을 앞세운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교과서 왜곡 역시 한국 내 반일 감정을 자극해, 이를 다시 일본 대중의 불안감 및 민족주의로 전이시키기 위한 책략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보통국가화와 군사대국화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2008년 개헌으로 향해하기 위한 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를 볼모로 감행해온 일본 일부 우익 세력의 치졸한 게임은 한국 정부의 예상 외의 강경 대응과 ‘반일 한류’에 열광한 중국 인민의 호응, 그리고 미국·유럽 등 전세계 여론의 질타 등으로 사상 유례 없는 역풍을 맞게 된 것이다.

고이즈미 등 아시아주의자들 설 자리 위협

일본 내 미·일 동맹파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앞의 보수 논객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부시 2기 정부에 대한 그들의 분석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부시 2기 정부의 대외정책을 라이스 국무장관이 중심이 된 현실주의 그룹이 장악했다는 것은 이미 국제 외교가의 공통된 견해이다. 일본에서도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아사히 신분 칼럼니스트) 같은 전문가가 일본의 중도 시사 월간지인 <포어사이트> 2005년 2월호에서 이미 이를 충분히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우익 잡지들의 경우 객관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 내 세력 관계나 정책 방향을 한쪽으로 몰고 갔다. 분명한 것은 자신들과 코드가 맞다고 여겨지는 부시 2기 정권 4년 내에 군사대국화와 관련한 모든 숙제를 해치워야 한다는 목적 의식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만 바라보고 군사력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변국과의 마찰도 불사하는 이들의 위험한 노선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그동안 위기감이 고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같은 우익 내에서도 고이즈미 총리나 외무성 그리고 내각조사실이나 공안조사청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보통국가화 또는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대국화 노선에서는 일치하지만, 한반도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외교를 통해 끌어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들은 또 이라크 전쟁 같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해서는 미국과 보조를 같이 하지만 아시아에 대해서는 일본 외교가 미·일 동맹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대미 자주파 또는 아시아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최근 한·일 관계 수습을 위해 막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모리 전 총리 같은 인물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아시아주의자들은 한때 한·일 관계 개선과 북·일 수교를 통해 대륙에 진출할 길을 도모하고,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 시베리아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나름의 아시아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930년대 일본 군부의 맹목성을 연상케 하는 미·일 동맹파의 폭주로 인해 이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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