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은 누구일까
  • 고종석(소설가-언론인) ()
  • 승인 2005.04.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관찰하는 즐거움 하나는 그 예측불가능성에 있다. 자유의 확산이라는 큰 물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물줄기의 국지적 흐름을 내다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한나라당이 지난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겪은 패배를 필연적이라고 보는 관점은 사후의 운산에 따른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 선거들에서 승리의 여신이 어느 쪽에 미소지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1997년 대선에서 국민회의는 DJP연합과 이인제 출마와 IMF 사태라는 세 ‘원군’의 도움을 받고서도 간신히 한나라당에 이겼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긴 데도 운이 많이 따랐다. 그 해 민주당 경선 직후 유권자 50 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았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한 때 20 퍼센트 안팎으로까지 떨어졌다. 정몽준씨가 월드컵으로 인기몰이를 해 그것을 노무현 후보에게 갖다 바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효순 미선 양의 죽음이 낳은 정치적 효과가 아니었다면, 선거는 한나라당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그런 운의 도움을 받고서도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가까스로 이겼다.

그것은 민주주의 시대의 유권자들이 대단히 변덕스럽다는 뜻이다. 이 변덕 때문에 정치는 말 그대로 생물이 된다. 지난해 17대 총선에서도 유권자의 변덕은 유감 없이 그 위력을 발휘했다. 열린우리당의 승리가 예정된 일이었다고 보는 것은 결과론일 뿐이고, 당시 유권자들의 마음은 썩 유동적이었다. 3.12 탄핵소추의 역풍이 큰 틀에서 4.15 총선의 풍경을 규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날짜 사이의 한 달 동안 이 바람은 계속 잦아들고 있었다. 서울의 밤을 밝히고 또 밝히던 촛불 시위의 풀무질도 이 바람의 세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총선이 3월15일에 치러졌다면, 열린우리당은 영남권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전국을 석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5월15일에 치러졌다면, 열린우리당의 국회 지배는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오늘 총선이 치러진다면, 한나라당의 저 지리멸렬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유권자 변덕 때문에 정치는 생물이 된다

한국 유권자들의 이런 정서적 휘발성을 생각하면, 내년 지방선거나 내후년의 총선 대선 결과를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일은 오직 신의 몫이다. 이해찬 총리는 다음 대선에서도 현 집권세력이 승리하리라고 공언한 바 있고 한나라당은 엄살인지 진심인지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는 분위기지만, 몇 년 이후의 한국 정치 지형은 목측의 한계 바깥에 있다. 특정 유권자 집단과 특정 정치세력 사이의 유대는 점점 엷어지고 있고, 그래서 유권자들의 변덕을 관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민주화의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효과다. 정치세력들의 운명이 이리 유동적이니, 개별 정치인의 운명은 말할 것도 없다. 최고권력자 자리를 두고 말하자면, 한국 정치사에서 예정된 차기 대통령은 민자당 대표 시절의 김영삼씨가 마지막이었다.

지금 여야의 차기 주자군으로 꼽히는 이는 정동영 통일부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다섯 사람이지만, 후년의 대선 승리자가 이들 가운데서 나오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유권자의 변덕을 관리하기에 두 해 반은 너무 긴 세월이기 때문이다. 여권 예비주자들의 경쟁력이 지금처럼 한나라당 예비주자들에게 계속 못 미친다면, 당원들은 당연히 새 인물을 내세울 것이다. 그 새 인물은 고건 전 총리처럼 실제로는 낡은 인물일 수도 있고, 유시민 의원이나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처럼 실제로 새로운 인물일 수도 있다.

사실 국제적 표준을 놓고 보면, 유 의원이나 김 전 장관이 2007년 대선 후보로서 너무 젊은 나이라고도 할 수 없다. 대선과 관련해 잘 거론되지 않는 이해찬 총리나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나 또 다른 누군가가 열린우리당의 기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이 당의 지지자들 일부에게 이회창씨는 여전히 ‘우리들의 대통령’이고, 강재섭 원내 대표는 박근혜 대표 못지않은 영남 대표성을 지녔으면서도 박 대표를 괴롭히는 성적 핸디캡이 없다. 더 나아가, 지금의 원내 5당 체제가 17대 국회 말까지 계속될지도 알 수 없다.

유권자들의 변덕은 모든 정치세력에게 덫이자 가능성이다. 그 변덕을 존중하면서도 그 변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모든 진지한 정치세력의 리얼리즘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난해 이맘때에 견주어 유권자의 눈길에서 꽤 벗어나 버린 민주노동당의 고민거리가 돼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