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구원' 초심 어디로 가고...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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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지도자 비리 꼬리 물어...종단 내 감시 시스템도 '무력'

 

불교계 자정을 외치는 것뿐인데, 이마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4월12일 서울 만해교육관에서 최근 불거진 불교계 의혹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회장 백창기), 불교환경연대(상임대표 수경스님), 참여불교재가연대(상임대표 박광서)가 불교계 전체의 참회와 자정을 호소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한 40대 남성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며 기자회견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남성은 “스님이 골프를 치는 게 무엇이 문제냐”라며 카메라를 던지고 욕설을 퍼부었다. 기자회견은 서둘러 정리되었다. 지팡이를 짚고 온 수경 스님은 “종교인이 사회를 맑게 하는 데 걸림돌이 된 점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절에서 도난당한 골프회원권, 다이아몬드 시계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먼 승려들의 이야기가 최근 신문의 사회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불가가 투명하지 못한 곳이라고 인식될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사들은 최근 알려진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사찰에서 일어난 절도 사건이 한국 불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다.

이 사찰의 도난 목록에는 3억5천만원짜리 골프장 회원권, 5천만원 상당의 티파니 다이아몬드 시계, 1천만원이 넘는 사파이어 반지, 그리고 24억원 상당의 땅문서가 올라 있었다. 주범 황아무개씨는 전직 조계종 승려였다. 범행 동기는 이 사찰이 아무개 큰스님의 비자금을 관리한다는 소문이었다.

 

불국사·화엄사 등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찰의 지도자들이 최근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불교계 자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한 승려는 “요즘 승려들이 아내를 숨겨놓고, 도박과 골프에 빠져 해외를 들락거리고, 재산을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문제는 이를 문제 삼는 이가 없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불교계의 자정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불국사의 골프연습장 설치 사건과 주지의 외환관리법 위반 의혹이었다.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불국사 경내에 불법 골프연습장을 설치했다. 주지 종상 스님은 해외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검찰에서 내사를 받고 있다”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황위원장은 “수사기관은 불국사 승려 등 정확한 제보에 근거를 두고 수사에 들어가 있다”라고 말했다.

10년 전 불국사 경내에 테니스장이 만들어졌다. 불법 시설물이었다. 2003년에는 테니스 코트 2개 가운데 한 곳을 6타석짜리 골프연습장으로 만들었다. 외부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담장을 쳤다. 불국사의 한 승려는 “경주시청으로부터 철거 공문이 도착해 4월13일부터 골프연습장을 철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외환관리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은 “전혀 사실과 다르며 근거 없는 내용을 떠벌린 자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 검찰 조사를 받거나 출석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평우 위원장은 “해외 원정 도박을 벌인 데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는 것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4월2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확실한 제보가 있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검찰에 공개 수사를 촉구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간 상태다.

25개 교구 본사 가운데 수행자가 다섯 번째로 많은 전남 구례 화엄사의 횡령 사건도 충격을 던졌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화엄사 전 주지 김정호씨(법명 명섭)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검거에 나섰다. 거액의 국고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다. 2002년 7월 화엄사 주지로 부임한 김씨는 그 해 9월부터 문화재 복원 공사에 들어가 국비·도비·군비 등 22억7천4백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 가운데 14억여원이 김씨의 개인 금고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전남 곡성군 태안사 주지로 재직할 때 건설회사와 3억5천만원에 계약하고도 5억원에 계약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1억5천만원을 횡령했다고 한다. 화엄사를 담당하는 전남 구례군청 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문화재 시설 보수 공사는 군이 직접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다. 업자 리베이트를 잡아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라고 말했다.

문화재 보수용 국고 보조금은 비자금 창구?

화엄사 전 주지 김씨는 사건이 터지자 조계종 총무원에 사표를 던지고 잠적했다. 재무 스님 등 핵심 관계자들도 잠적했다. 화엄사 관계자는 “우리 주지 스님은 룸살롱에 안 다니는 등 품행이 다른 절 주지에 비해 존경할 만했다. 불교계 관행이 있는데 유독 화엄사의 경우만 문제 삼는 것 같아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사찰은 신도들이 시주한 돈과 문화재 관람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국립공원 입장료의 55~60%가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로 책정되어 통합 징수되고 있다. 그러나 화엄사의 사례처럼 문화재청과 행정자치부에서 지원된 문화재 보수 용도의 국고 보조금을 사찰이 공사비를 부풀려 돈을 챙기는 방식은 불교계 최대 비자금 창구원이라고 한다.

2001년에도 부산 범어사에서 문화재 보수 용도의 국고 보조금 23억원을 유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기도에 있는 한 사찰의 주지는 “이 문제는 화엄사 한 곳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불교계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의 특수성 때문에 사찰 보수 명목으로 빼돌릴 수 있는 여지도 크다고 한다. 한 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절에서 사용하는 목재는 보통에 비해 서너 배 비싸고, 인건비 또한 어마어마하게 든다.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지만 문화재를 다룬다고 하니 간섭할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국고 유용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승려들의 처신과 불교계 표를 잡으려는 정치인의 특혜성 지원이 상승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치인이 사찰에 행자부 교부세를 따주고 리베이트를 받는가 하면, 사찰이 정치 자금의 세탁처가 되기도 한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조계종 총무원의 감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화엄사의 한 관계자는 “1년에 한두 번 감사를 받는데 교부세 관련 항목은 점검표에 아예 없다”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은 “하루에 두 사찰을 감사하는 경우도 많다. 회계 장부를 분석해 내기에는 승려들의 전문적인 식견에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감사국 상주 직원이 한 명인 상황에서 실질적인 감사는 불가능해 보인다.

힘 있는 스님에게는 종단 법이 통하지 않는 등 사실상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과 법원 기능을 하는 조계종 호법부와 호계원의 역할도 미미하다. 문제가 있는 승려를 총무원이 불러 조사한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계파가 나뉘어 있어 자기 계파를 감싸는 바람에 엄정하게 심판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승려들은 모두 선후배, 사제지간으로 얽혀 있어 문제를 추궁하기 힘든 구조다. 주지들은 고려시대 왕권이 미치지 않는 지방의 호족들과 같다”라고 말했다. 또 총무원장·교계위원·본사 주지 등 교계 선거 때마다 근절되지 않는 여비(노자) 문화도 불교계의 자정 노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적된다.

사찰 재정의 투명성 확보는 불교 개혁을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수경 스님은 “사찰 재정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한 종단의 비리를 뿌리 뽑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종단 운영의 투명성을 정착시키기 위해 불교계 전체에 자성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총무원은 최근 회계사 2명을 종단 회계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은 “재정·회계 부분이 투명하게 집행되는 틀을 만드는 계기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14일 조계종 총무원은 종단 자정을 선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과 전국 교구 본사 주지 스님들도 ‘투명 종단 구현과 자정에 대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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