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찾을 수 없는 갈등이 한류 인기 요인
  • 이와모토 미치야(도쿄 대학 교수) ()
  • 승인 2005.04.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에 대한 한·일 양국 인식 차이 커

 
전형적인 일본 남성인 나는 ‘욘플루엔자’(욘사마와 인플루엔자의 합성어) 환자다. 한번 보면 다음 회를 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그동안   <겨울연가>를 세 번이나 보았다. 단 한편의 드라마가 일본인의 한국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을 보고 문화인류학자의 처지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일본에서 왜 <겨울연가>가 인기가 있는가’ ‘<겨울연가> 신드롬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 ‘<겨울연가> 현상은 한·일 양국의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가’.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인기를 끈 이유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일본인들 가운데 일부가 아시아 영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 팬도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아시아 영화 붐이 일었을 때 한국 영화는 인기가 없었다. 홍콩 영화(주로 액션물)에 이어 타이완 영화, 중국 영화, 나아가 인도 영화까지 붐을 일으켰는데 한국 영화는 도무지 인기가 없었다.

반북 감정이 한류 부추겨


한국 영화 마니아인 동료 연구자들과 왜 한국 영화는 인기가 없는지 여러 차례 토론했다. 결론은 한마디로 ‘과격하다’는 것이었다. 주제나 영상 표현, 배우들의 감정 표현이 격해서, 한국 영화는 재미는 있지만 보고 난 후에는 지친다는 것이 우리의 분석이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특히 여성들의 편견이 심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민주화하고 격한 갈등이 줄어들면서 문화 콘텐츠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격한 표현이 중화되고 부드러워지면서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일본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일본 여성들에게 <겨울연가>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과격하다는 편견을 깨주었다.

<겨울연가>가 인기를 얻는 데 북한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일본의 가상 적국은 북한이며 국민 대다수가 북한과 김정일에 대해 혐오스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이웃 나라 특유의 반한 감정이 그대로 북한으로 옮겨진 반면, 일본인의 의식 속에 남한은 (월드컵 이래 일시적으로) 우호적으로 비치고 있다.

<겨울연가>의 인기 요인으로 살펴볼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감정과 이성의 대립이다. <겨울연가>의 핵심적인 갈등은 남녀 간의 연정과 사회적 규범 사이의 알력이다. 이는 현대 일본의 드라마에는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규범이 느슨해져 그러한 갈등이 발생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모님의 반대 같은 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부모의 권위나 절대적인 규범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오직 남녀의 감정만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겨울연가>는 그런 갈등으로 인해 고민하는 인간의 내면 풍경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흔히 <겨울연가>가 일본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는 갈등이 있던 시절이 더욱 인간적이었다고 생각하는 현대 일본인들의 향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과 이성의 대립이 선명한 한국드라마와 달리 요즘 일본 드라마는 감정만 과잉되게 나타나 있다.

<겨울연가>는 인간다움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진정성에 대한 추구는 현대 일본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이다. 진정성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근 일본인들의 온천 관광 행태다. 진정성을 찾아 오지로 찾아들어가는 것이 최근 일본인들의 경향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 휴양지이던 벳부 온천은 요즘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없다. 너무나 많이 개발되어 온천다움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벳부보다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유후인 온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그보다도 더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있는 구로카와 온천을 찾는다. 진정성을 찾아 오지로 떠나는 일본인들의 이런 성향은 <겨울연가> 팬들이 인간다움과 첫사랑의 아련한 향수를 찾아 춘천과 남이섬으로 떠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겨울연가>는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휘어잡고 대한해협 건너 강원도에까지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로 정작 돈을 번 쪽은 일본인이다. <겨울연가>를 통해 적자를 면한 NHK를 비롯해 많은 일본인들이 <겨울연가> 덕을 톡톡히 보았다. 반면 KBS와 한국의 관광업자들은 장사를 너무 못했다. 단지 수동적으로 부수입을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나는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문화산업에 대한 한·일 양국의 근본적인 인식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문화산업, 특히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은 ‘문화란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무당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국립민속박물관을 굳이 경복궁에 넣은 것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것만을 문화로 인정하려고 하는 경향은 유교적인 가치관의 영향일 것이다.

문화 중에서도 한국인들은 문학을 특히 숭상한다. 이는 문화연구자의 성향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일본의 한국연구자에 비해 한국의 일본연구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연구자들이 전반적인 한국 문화를 다루는 것에 반해 한국의 일본연구자들은 일본 문화를 문학 위주로 편식하고 있다.

일본 문화를 일본 문학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경향은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 고려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연수하는 동안 필자가 놀란 것은 두 대학에 일본 문학 연구자가 6명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놀라운 수치다. 도쿄 대학 문학부에도 일본 문학 연구자는 4명밖에 되지 않는다.

문화를 고급스러운 것, 문학적인 것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 문화를 삶의 양태로 보는 것이다. 어느 일본어 사전을 들춰 보더라도 문화에 대한 정의는 문화인류학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문화를 관찰에서 출발한다고 보는 일본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다른 서구 열강과 마찬가지로 문화인류학을 발달시켰다.

일방적 한류 마케팅, 부작용 부를 수도


 
현대에 이르러 문화인류학은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파생 학문을 낳고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는 지금 문화경제학·문화정책학·문화자원학·문화매지니먼트학 학과가 활발히 개설, 증설되고 있다. <겨울연가>를 위성 방송에서 두 번 방영하고, 본방송에서 처음에는 50분짜리 단축 더빙판을 내보낸 뒤에, 70분짜리 오리지널판을 내보내 적은 투자 자본으로 여러 번 이익을 내고, 그 안정된 기반 위에서 한국어 교재 사업 등을 펼친 NHK의 성공은 문화경제학이 발달한 덕분일 것이다.
상대방의 문화를 알아야 그들에게 문화를 팔 수 있다. 한국의 한류 마케팅을 들여다보면 상대방의 문화에 맞추어 장사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를 그대로 밀어붙이려는 성향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접근법은 부작용을 나을 뿐이다. 문화에는 분명한 법칙들이 있다. 이 법칙을 거스르면 문화에 대한 어떤 투자도 헛되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 기사는 이와모토 미치야 교수가 지난 2월22일 중앙대학교 한류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한·중·일 한류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발제와 토론 그리고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