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 중국의 반일 시위
  • 정주영 통신원 (베이징) ()
  • 승인 2005.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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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처·현실적 이해타산 반영…반일 감정 뒷전에서 실속 찾기 ‘주판알’

 
중국의 반일 시위는 4월 들어서면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지난 4월9일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 대학과 칭화 대학 학생들이 주동이 된 반일 시위를 기점으로, 반일 분위기가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반일 시위는 일본 공관 및 일본 음식점에 대한 공격, 일본 기업의 중국인 종업원 집단 파업 등으로 점점 폭력적 양상이 짙어지고 과격해졌다. 대로 한복판에서 일본차를 탔다는 이유로 봉변하는 일도 발생했다.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는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중국어의 ‘스’ 발음을 시켜본 후, 발음이 시원치 않으면 일본인으로 간주해 승차를 거부한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네티즌들이 최근 선정한 10대 매국노의 순위를 차지한 사람들은 이번 중국인의 반일 시위에 대해 ‘냉정과 이성’을 논했던 인사들이다. 10대 매국노 명단에 오른 베이징 대학의 한 교수는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고 토로했을 정도이다. 중국인의 반일 감정이 어디까지 끓어올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시위는 5·4 항일운동 기념일인 오는 5월4일 대규모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중국 공안도 긴장하고 있다. 이번 기념일은 특히 5월1일부터 1주일간 이어지는 ‘노동절’ 연휴의 중간에 끼어 있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기념식이 곧바로 반일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토 분쟁 후유증도 기폭제 구실

 
반일 감정 폭발의 기폭제는 일본의 왜곡 교과서였다. 중국 내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중국사회조사소(SSIC)는 일본의 교과서 검정 발표 직후인 4월6일부터 닷새간 베이징과 상하이 등 전국 9개 대도시 시민 1천명을 상대로, 중국인의 대일 감정에 대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서명 활동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9%에 달했다. 또 ‘일본 정부가 역사를 크게 왜곡했다’가 93%, ‘일본 정부가 중국인의 마음을 매우 상하게 했다’가 96%가 되었다. ‘역사 왜곡 결과,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도 중국을 침략했다’는 대답도 전체 응답의 72%에 이르렀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중국 공관을 공격하거나 협박 편지를 보내고, 공관 앞에서 분신을 기도하는 등 극도의 반중국 감정이 폭발했다.

한·일 관계와 마찬가지로, 중·일 관계의 반목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인의 심리 밑바닥에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역사적 상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 악화에는 좀더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먼저, 현재 중국과 일본은 양보할 수 없는 해양 영토 분쟁에 직면해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아시아 지역은 해양 영토 분쟁과는 상관이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1968년 아시아 근해 지역 광물자원 공동 탐사 조정위원회(CCOP)의 서해 및 동중국해 해양 탐사를 계기로 동아시아 지역 해양 영토 분쟁의 막이 올라, 현재 중·일간 핵심 다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중 가장 오래고도 뜨거운 문제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이다.  제3차 유엔 해양법 발효를 계기로 일본은 1996년 7월, 중국은 1996년 12월 각각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했다. 그런데 영해 기선 거리가 400해리 미만인 동중국해에서 양국 모두 200해리를 설정함으로써, 그 복판에 댜오위다오가 자리 잡게 됐다. 

일본은 거리 기준에 따라 양측 중간선을 EEZ로 하자고 하고, 중국은 중국 대륙과 일본 도서를 동일하게 취급하여 중간선을 긋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므로 양측이 합의해 경계선을 확정하자는 견해이다. 양국의 상반된 입장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9일 일본 정부는 암초로 이루어진 충지조도(?之鳥島)를 대상으로 또 한번 ‘도발’을 감행했다. 2006년도 예산에 1천만 엔을 편성해 도쿄로부터 1740㎞ 떨어진 이 섬에 등대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등대가 설치되면, ‘도서’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국제 사회에서 이 섬을 일본 영토로 인정받고, 이 섬 주위 200해리를 배타적경제수역으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한덩어리 암초에 불과한 이 섬을 기준으로 EEZ를 설정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대응하고 있다. 물론 중국측도 이 지역에서 지난해 21 차례나 탐사 활동을 진행했고, 이 행위가 국제 해역에서의 합법적인 과학 탐사였다고 주장했다. 충지조도 문제는 2차세계대전 이후 국경선 재획정 과정에서 누락하거나 잘못 처리한 부분이 많았던 데 따른 후유증의 성격이 짙다.

최근 가장 민감한 중·일간 영해권 분쟁의 핵심은 동중국해 유전 탐사 문제이다. 중국은 최근 동해(동중국해) 대륙붕에서 유전 일곱 곳을 발견했다. 이 중 중·일 양국 분쟁의 핵심은 타이완 북부 해역에 중국이 시추 시설을 건설 중인 춘샤오(春曉) 유전이다. 일본 정부는 이 유전의 천연 가스 유전 광맥이 일본 광맥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 2월 중국측에 탐사 활동 중지를 공식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유전을 공동 개발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번에는 일본이 이를 거절했다. 최근 중국의 반일 감정 폭발 양상의 이면에는 이같은 ‘가랑비’가 있었다.

정치·외교 요인도 반일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중 핵심은 미·일 동맹 강화이다. 중국인들은 이를, 미국이 일본의 위상을 강화시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2월, 미·일 양국은 동맹 범위를 ‘일본과 그 주변 지역’에서, 중동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전역으로 확대하는 ‘공동 전략 목표’를 발표해 중국을 긴장시켰다. 두 나라 동맹 수준이 한 단계 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우익이 중국 분열을 노골적으로 희망하는 발언을 쏟아낸 일 또한 이번 반일 감정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 일본 인사들이 ‘중국은 여섯 덩어리로 쪼개질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나 타이완 독립 세력인 리덩후이 등 중국 당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인사들을 지원하는 것도 중국인에게는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달라이 라마가 일본에 열이틀 일정으로 방문한다는 소식이 중국에 전해졌다. 베이징에서 최초의 반일 시위가 있기 직전이었다.

중국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중국인의 반일 감정 확산의 이면에는 중국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이번 시위를 ‘외교적으로’ 이용하려는 중국측 의도는 중국의 반일 시위에 대한 태도에서 포착된다. 

중국은 겉으로는 ‘시위 반대’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시위를 묵인하고 방조해 왔다. 중국 정부의 시위 대처 능력은 결코 허약하지 않다. 수도 베이징에서의 시위는 4월9일 하루로 끝났다. 4월16일로 예정되었던 톈안먼 광장 시위는 무산되었다. ‘사전 허가받지 않은 시위는 불법’이라는 당국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시위 주동 학생들에게는 학교의 당 조직이 개입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시위를 아예 원천 봉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당국은 또 언론 보도를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시위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 당국은 첫 반일 시위 이후 약 3주간, 시위 관련 국내 보도를 하지 않았다. 반면 시위 참가자 숫자를 부풀려, 중국인들의 반일 정서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했다. 신화통신 영문판은 4월16일 상하이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참가자를 10만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외 통신사와 일본 언론들은 ‘최고 2만 명’으로 추산했다. 

중국 정부는 반일 시위의 ‘적절한 증폭’을 통해 얻을 것을 얻었다. ‘일본이 아시아 지역 국민들로부터 인심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효과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제 중국은 ‘이쯤에서 실속을 챙기자’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벌써 당국의 움직임은 반일 시위를 ‘방관·방조’하던 이전의 태도에서, ‘억제·관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은 공식 석상에서 “중·일 관계를 발전시켜야 국가 발전의 기회를 계속 확보할 수 있다”라고 수습에 나섰다.

베이징 대학은 지난 4월18일 ‘일본의 정치 대국화’를 주제로 한 특강을 취소했고, 상하이 시도 최근 시위로 피해를 본 일본 식당에 대한 배상에 착수했다. 반일 물결의 뒷전에서 주판알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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