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실 수만 있다면 ‘칠고초려’ 대수랴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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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봄 개편 앞두고 스타 MC 영입 전쟁

 
“삼고초려요? 칠고초려해도 될까말까 합니다. 스타 MC를 섭외하는 일은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MBC 김영희 국장의 하소연이다. 예능국장에 취임하고 50여일 동안 MC 섭외를 위해 대상 연예인과 소속사 사장과 함께 매일 술만 마셨다는 그는 MC 섭외의 어려움을 ‘칠고초려’라는 말로 토로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칭찬합시다’ ‘이경규가 간다’ 코너와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남북 어린이 알아맞히기 경연’ 코너를 통해 방송가에 ‘공익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장르를 안착시킨 김국장은 방송가의 대표적인 스타 PD로 꼽힌다. 파격적인 인사로 예능국장에 발탁되어 최문순 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있는 그도 MC 섭외의 어려움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코너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스타 MC의 1회 출연료는 1천만원 정도다. 이는 톱 탤런트의 드라마 1회 출연료와 맞먹는 금액으로 스타 MC의 위상을 보여준다. 스타 MC는 프로그램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KBS 예능국의 한 간부는 “스타 MC의 소속사 연예인으로 고정 패널이 구성되는 것은 보통이고, 게스트 선정에도 MC의 의중이 반영된다”라고 말했다. MBC 예능국의 한 간부는 “스타 MC와 담당 PD가 갈등이 생기면 책임자 처지에서는 PD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PD가 MC를 고르는 시대가 아니라 MC가 PD를 고르는 시대다”라고 높아진 MC의 위상을 설명했다. 

‘MC 4대 천왕’이 프로그램 개편의 축

오락 프로그램의 흥행 보증 수표인 스타 MC 중에서도 특급으로 분류되는 연예인은 4명이다.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김용만. 이들 ‘MC 4대 천왕’이 프로그램 개편의 축이 된다. 이들을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서 프로그램의 규모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출연할 프로그램을 결정할 때 감안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 담당 PD와의 인간관계, 출연료이다. 이 세 조건 중에 하나라도 마음에 맞지 않으면 출연을 고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MC 4대 천왕’이 모두 개그맨이거나 개그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외에, 이경규 박수홍 이휘재 이혁재 김제동 등 주요 MC들도 대부분 개그맨이거나 개그 프로그램 출신이다. 개그맨 출신들은 가수·탤런트·아나운서 출신 MC를 제치고 오락 프로그램의 지존으로 군림하고 있다.

개그맨 출신 MC가 많은 것에 대해 방송 관계자들은 한국인의 국민성을 그 이유로 꼽는다. 김국장은 “많이 알고 말도 잘하고 용모도 뛰어난 사람보다 시청자들은 스스로를 낮춰서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MC를 선호한다”라고 설명했다. 연예인을 막연하게 선망하는 것보다 친구처럼 느끼는 경향이 커지면서 개그맨 MC가 더욱 일반화했다. 

개그맨 출신 MC의 효시는 주병진이었다. 1988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를 맡은 주병진은 가수·탤런트·아나운서 출신이 독점하던 MC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이후 이홍렬 이경규 서세원이 뒤를 이었다. 이들 1세대 개그맨 MC들은 토크쇼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개그맨 MC 전성시대를 열었다.

<자니 윤 쇼> 이후 지속되었던 미국식 대화형 토크쇼가 퇴조하고 일본식 그룹 토크가 일반화하던 1990년대 후반에도 개그맨 MC들은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한 명의 카리스마보다 집단의 상승효과에 의존하는 그룹 토크에는 젊은 개그맨들의 활약이 컸는데, 이휘재 남희석 김국진 서경석이 동료 개그맨과 콤비를 이루어가며 사회를 보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들 2세대 개그맨 MC들은 뚜렷한 하강 곡선을 그리며 퇴조하는 대신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김용만이 떠올라 개그맨 MC 전성시대를 이어왔다. 특이한 것은 2세대 개그맨 MC보다 3세대 개그맨 MC의 스타성이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2세대 개그맨 MC는 외모가 출중하거나(이휘재) 말을 잘하거나(남희석) 개인기가 탁월하거나(김국진) 똑똑하다(서경석)는 특성이 있었다. 

2세대 개그맨 MC보다 외모·언변·개인기·지식 면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3세대 개그맨 MC가 떠오른 것은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안티 문화가 생겨나면서 비토 그룹이 없는 무색무취한 개그맨 MC를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김태호 PD는 “제작자는 자신을 낮추고 폭넓은 층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MC를 선호한다.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김용만은 이런 조건을 만족시킨다”라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 PD들이 MC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포용력이다. KBS <상상플러스>의 김성윤 PD는 “MC는 프로그램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이 너무 화려하면 안에 담긴 음식이 죽는다. MC가 모든 것을 보여주면 프로그램은 조로증에 걸리고 시청자들은 식상해 한다. MC는 스스로 보여주기보다는 게스트가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심현섭 같은 개그맨들이 탁월한 개인기에도 불구하고 MC 등극에 실패했다.

시청자가 원하는 MC상은 ‘무색무취+팔방미인’

MC는 무색무취한 포용력을 지니면서 또한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요즘 시청자들은 까탈스러워서 단순한 재미보다 복합적인 재미를 원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솔직해지고 출연자를 솔직하게 만들어야 하고, 안정감 있게 프로그램을 리드하면서 임기응변에도 강해야 한다. 웃길 줄도 알아야 하지만 울릴 줄도 알아야 하고, 가학적인 동시에 피학적이어야 하고, 무식한 듯 유식해야 한다.

 
대형 스타 MC 중에서 여성은 드문 편이다. 탤런트 김원희와 정은아 아나운서가 스타 MC로 꼽히는 정도다. 여성 스타 MC가 드문 이유는 시청자들이 여성 MC에 대해 더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SBS <야심만만>의 박광덕 PD는 “시청자는 품위를 지키면서도 망가질 줄 알고,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반듯하면서 털털하고, 원숙하면서도 풋풋한 여성 MC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방송 3사의 MC 경쟁에서 가장 처져 있는 곳은 KBS다. 출연료 상한선 때문이다. <해피투게더>를 신설하면서 신동엽을 데려오기 위해 상한선 규정을 어긴 것이 문제가 된 이후로 KBS PD들은 스타 MC를 불러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개편 때마다 SBS와 MBC에 스타 MC를 빼앗긴 KBS는 대안으로 MC 공채에 나서기도 했다.

여성 MC를 가장 적극적으로 발탁한 곳도 KBS였다. 탤런트 김원희를 발탁한 KBS는 강수정·김경란 아나운서 등을 오락 프로그램에 적극 투입해 스타 MC로 키워냈다. ‘여걸 파이브’ 코너에서는 여성 MC 5명에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해서 여성 MC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 보았다.

고정 패널로 보조 MC 역할을 하던 연예인들도 주로 KBS를 통해 MC로 등극했다. 남희석과 파트너를 이루며 전성기를 구가했다가 주춤했던 이휘재는 탁재훈과 호흡을 맞추면서 <상상플러스>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혁재는 <스폰지>를 KBS의 간판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으로 올려놓고 지난해 K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스타 MC들을 거의 섭외해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 다른 방송사의 기선을 제압한 김국장은 앞으로 50여 일 동안을 또 술로 보내야 한다. 스타 MC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는 “신선한 얼굴을 MC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프로그램을 가지고 모험을 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오락 프로그램이 혼전 양상을 보일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타 MC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방송가의 봄철 프로그램 개편과 맞물려 MC 스카우트 전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월요일 <전파견문록>, 목요일 <유쾌한 두뇌검색>, 토요일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 밤에>. 올해로 방송 경력 25년째인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창단 멤버로 20여년 동안 오락 프로그램 MC를 보고있는 그에게 사회자론을 들어보았다.  그가 발탁한 강호동이 사회를 보는 <야심만만>에 출연하여 초절정 유머 무공을 펼치는 그를 녹화현장에서 만나보았다.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지금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 4개의 시청률을 합쳐도 한참 활동하던 때 한 프로그램 시청률에도 못 미친다. 이제 오락프로그램의 시대는 갔다. 아니 세분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시청자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오락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진행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대중에게 맞춰가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젠 내 스타일을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시청자들도 나를 고르지만 나도 시청자를 고른다. 나를 대충 좋아하는 다수보다 진짜 좋아하는 소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더라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야 오래간다.

후배 MC들을 보며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식 토크쇼가 인기를 끌면서 스타들이 방송에서 사생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 놀면서 시청자를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방송에서 다소 공격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젊은 연예인들은 안티팬이 생길까 봐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안티 따위는 안중에 없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이제 그런 것 안 무섭다. 공격적인 것은 젊은 연예인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측면도 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 세대가 대리만족을 얻는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7080세대가 주인공 아닌가?  
그렇다. 10대 20대가 텔레비전에서 멀어지면서 확실히 시청자들이 고령화하고 있다. 30대 40대가 브라운관의 주인공이다. 이제 낙엽줄이 앞에 앉아야 한다.

기자의 변)
이경규씨 인터뷰는 SBS <야심만만> 녹화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자신이 발탁해 이제는 대형 MC의 반열에 오른 강호동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까마득한 후배 박수홍이 진행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씨는 관록의 입담으로 제작진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게 했습니다.

이씨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노정치인 김종필씨를 떠올렸습니다(이런 비유에 대해서 이경규씨가 기분 나쁠 것 같아 조심스럽군요). 그의 대한 평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2인자 생활을 하면서 정치생명을 연장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기자들이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김영삼-김대중 등 당대의 정치인과 결합해 2인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던 김종필씨처럼 이씨 역시 주병진-김국진-김용만으로 이어지는 대형 MC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MC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까탈스럽고 변덕 많은 시청자들의 응석을 받아내며 이제 어엿한 노장의 반열에 올라선 이씨의 분투에 박수를 보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씨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젊었을 때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길들였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의 스타일에 시청자를 길들인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안티팬들을 의식하면서 소극적인 자세로 방송에 임하는 젊은 스타와 다른, 꼬장꼬장한 자세가 좋았습니다. '화이부동'의 자세로 꿋꿋이 '낙엽줄'의 자존심을 지키는 이경규씨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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