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시위, 타깃은 일본이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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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사대국화 저지에 초점…‘미·일 네오콘 고리 끊기’ 나서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면서 ‘94년판 한반도 위기’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재의 북핵 위기는 1994년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이미 달라졌고, 따라서 전개 양상도 같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특히 1994년의 핵 위기가 주로 북·미 대립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었다면, 최근의 위기는 내용상 미국보다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얽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정보 소식통들은 이와 관련해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은 6자 회담을 둘러싼 대미 협상용이라는 점 외에 일본을 겨냥한 북한 지도부의 실력 행사라는 각도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행태와 이를 후원하는 미국 내 특정 세력의 움직임이 계속될 경우 제2, 제3의 ‘경고 행동’이 나타날 수 있고, 북핵 문제 자체도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와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들이 최근 전하는 북핵 문제의  변화 양상은 독도와 교과서 왜곡으로 불이 붙은 한·중 양국의 반일 정서와도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전개 양상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의 패러다임 변화; 1994년 핵 위기는 어떤 면에서 단순 구도였다. 북한의 핵개발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국제 사회의 대립이라는 양자 대결 구도였다. 그러나 지난 2월10일 핵 보유 선언과 최근 영변 원자로 동결까지 감행한 북한 지도부와 군부는 미국과의 대립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내 특정 세력이 후원하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부활을 저지하는 데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같은 명분을 걸고 핵 시위를 전개할 경우 과거와 같이 미국과 국제 사회 대 북한이라는 단순 구도가 성립할 것인지가 의문이다. 즉 한·중 양국의 반일 분위기에 북한의 명분이 더해질 경우  묘한 이합집산도 가능하다.

왜 패러다임의 변화인가: 우선 북한 지도부와 군부의 대일 감정이 극도로 안 좋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2년 평양선언 이후 일본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는 북한으로서는 납득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특히 지난해 가짜 유골 파문은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항일유격대 전통을 이은 북한 군부는 태생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망동에 대해서는 실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강경하다. 특히 최근 한국과 중국에 반일 열풍이 불어닥치는데도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해 체면이 상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우경화나 군국주의화 저지는 북한 지도부나 군부에게도 최대 관심사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지난해 4월 체니 방일 이후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급진전하면서 이들이 북한에 대해 새로운 위협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미국을 대신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경찰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핵 포기를 전제로 했던 기존 협상 전략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책임이 있는 미국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양보 내지 해명을 듣기 전에는 핵 문제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북한의 복안은 뭔가: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2월10일 발표한 핵 보유 선언과 3월31일 발표한 외무성 성명, 그리고 미국의 북한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 씨의 방북 기간에 대화한 내용 등을 추적해보면 나름으로 입장이 일관된다고 지적한다. 2월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결국 체니를 비롯한 미국 군산복합체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기도를 멈추지 않는 한 북한도 핵무기를 계속 보유,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 다음 대안을 제시한 것이 바로 3월31일의 북한 외무성 성명이다. 즉 기존 6자 회담을 군축회의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 성명서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문제를 간접 적시했다. 즉 “6자 회담이 자기 사명을 다하려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무기와 핵전쟁 위협을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장소로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언급한 ‘조선 반도와 그 주변’이라는 것은 주로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미국의 군비와 일본의 군사화 문제를 적시한 것이다. 

국내 일부 언론은 작년에 불거졌던 남한 핵 문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했으나 이는 ‘남쪽에 핵이 없다는 것을 북한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다만 일본을 노골적으로 적시할 경우 협상 대상에 혼선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이같이 애매한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미국 역시 상응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6자회담 무용론; 더 구체적으로 북한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6자 회담보다는 북·미 양자 대화가 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6자 회담에 대해서는 이미 존립 명분이 없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에 의하면, 최근까지 북한은 대략 네 가지 이유를 들어 6자 회담 무용론을 설파해왔고,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 역시 수긍하고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일본의 자격 문제이다. 북한은 6자 회담 초기부터 일본의 참가 자격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미국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이를 허용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 후로도 납치 문제 제기나 가짜 유골 사건 조작 등 6자 회담 진전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만 해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동안 6자 회담에 임해온 미국 내 특정 세력의 의도 역시 불순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특히 부시 1기 정권 당시 6자 회담이 난항을 거듭했던 것은 바로 미국, 그중에서도 체니 부통령의 방해 공작 때문이었다는 것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유력 언론에서도 거듭 폭로되어 왔다. 체니를 비롯한 미국 군수업체는 6자 회담에서 문제가 해결될 경우 일본에 대한 무기 판매 및 군사화 명분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이 같은 책동을 거듭해온 것으로 북측은 인식하고 있다.

세 번째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중국 일본 간의 대립 갈등에서 보듯 이제 동북아에는 북핵 문제 외에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공통의 우려 사항이 존재한다. 왜 북핵만이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네 번째는, 현재 동북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북·미 관계나 미·중 관계 중·일 관계 등 양자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대부분인데도 양자 회담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6자 회담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주장이다.

 
양자 회담의 성격 변화; 일본의 군국주의 문제가 대두하면서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북·미 양자 대화의 내용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즉 그동안은 주로 북·미 관계 정상화 등 양국 현안이 주였다면 최근에는  일본 군사대국화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 현안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미국이 그동안과 같이 일본의 군사화와 군국주의를 부추길 경우 북한의 안보 위협은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핵 문제 해결 역시 요원하다, 따라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 역시 이 문제에서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중국 방문 등에서 마지막 절충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에 이은 단계적 실력 행사로 압박의 수위를 높여 가면서 미국과 양자 대화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다.

중국의 입장: 일본 군국주의 위협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북핵에 대한 중국의 입장 역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핵을 앞세운 북한의 강경 대일 자세가 자칫하면 기존 대일 전선을 북핵 전선으로 이동시킬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한편으로는 후진타오 주석 등 현 중국 지도부의 숨통을 열어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 국민의 광범위한 반일 감정뿐 아니라 항일전을 몸소 체험한 원로들로부터 일본에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과의 대립을 악화 일변도로 끌고갈 수도 없어 고심하고 있는데, 북한이 대신 일본을 두들겨 주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공식 입장이야 북한이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최근 대북 제재를 반대하는 당·정 합의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와 그런 일본을 부추기고 조장한 미국에 대해 과거와 같은 심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 1위로 일본이 거론(37%)될 정도로 한국 국민의 인식 역시 매우 달라졌다. 결국 미국이 북한의 핵 시위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동참을 구하려면 미국 역시 일본에 대한 정책에서 한·중 양국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국 원로들의 우려; 미국 내에서도 일본의 우익화와 군사대국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당연하다. 과거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진주만 기습과 가미카제 특공대, 그리고 본토 진입 시의 ‘1억 옥쇄론’ 등 광기를 기억하는 당시의 현역들이 지금 미국 사회의 원로로 버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부시 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 때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그는 일본군의 공격으로 비행기가 격추되면서 생사의 기로에 처했었다. 당시 미국 잠수함이 조금만 늦게 왔어도 일본군에게 살해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의 악몽을 평생 간직해 왔다고 한다. 1989년 히로히토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비로소 감정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고 술회할 정도로 일본 군부는 그가 용서할 수 없는 집단이었다. 따라서 최근의 광기가 결코 유쾌할 리가 없는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공화당이나 아들인 부시 대통령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일본 군국주의 부활 문제는 미국 지도부 내에도 논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미 간에 극적인 절충이나 협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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