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갈등'이 충만한 교회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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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교회 원로목사, 담임목사 지지 세력 다툼 끝없어...예배 방해도 잦아

 
광성교회(담임 목사 이성곤·서울 송파구 풍납동)는 축복받은 교회로 명성이 자자했다. 1966년 신도 30명이던 광성교회는 현재 신도 4만명에 이르는 국내 5대 대형 교회로 성장했다. 광성교회는 또 20여 교회를 개척해 한국 교계에서 위상과 영향력이 대단했다. 신도 간의 친목은 돈독했고, 목사에 대한 존경심도 높았다.

38년 동안 담임 목사로 재직한 김창인 원로 목사(72)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교회를 이끌었다. 김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과 기독교방송국(CBS) 이사, 전주 예수병원 이사장, <기독공보>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기독교계의 거목이다. 

하지만 광성교회의 명성은 악명으로 바뀌었다. 광성교회 내 갈등은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형과 동생이 지지하는 목사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교회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도 편이 나뉘었다. 만나면 인사는커녕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2003년 김창인 목사가 은퇴 선언을 할 때만 해도 광성교회는 축복이 깃들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2003년 12월21일 김창인 목사는 광성교회 담임 목사로 이성곤 대양교회 목사(51)를 지명했다. 김창인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목사는 3년 기도한 결과로 하나님이 내린 인물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광성교회에서 김창인은 곧 법이었다.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목사는 교인 98.6%의 지지로 담임 목사가 되었다. 한국 교회가 세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광성교회는 ‘아름다운 은퇴’ 사례로 거론되곤 했다.   

 

이성곤 목사 임명이 교회의 총의를 모은 투명한 결정은 아니었다. 원로 목사와 담임 목사를 혈연 관계만 아닐 뿐 사실상 부자 관계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광성교회와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연을 맺은 이성곤 목사는 광성교회의 장학금으로 신학대에 다녔다. 광성교회에서 목사 안수 받고 부목사로 재직하다가, 대양교회 담임 목사로 간 것도 김목사의 뜻에 의해서였다. 교회 주변에서는 김창인 목사가 섭정을 하다가 아들에게 물려줄 심산이라며 수군대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목사는 취임 초기부터 흔들렸다. 재적 교인 4만3천명이라는 인원이 부풀려져 있다고 이목사가 지적하자, 원로 목사를 따르는 부목사들은 원로 목사의 업적에 시비를 건다며 반발했다. 이목사가 원로 목사가 심혈을 기울였던 성경공부를 없애자, 이목사가 ‘원로 목사 지우기’에 나섰다는 말이 돌았다. 이는 곧 김목사와 로열 패밀리를 박살 낸다는 말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분란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한 목사는 “설교권만 이목사가 가졌을 뿐 다른 모든 권리를 김목사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목사는 원로 목사가 사실상 담임 목사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게 방해했다”라고 말했다.

폭행 사건 이후 담임목사 동정 여론 일어


그러던 중 이성곤 목사의 음주 파동이 일어났다. 2004년 4월14일의 일이다. 이목사는 북한 선교 사업을 마치고 포도주 한 잔을 마신 것이라며 음주 문제에 대해서는 잘못이 있었다며 솔직하게 시인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뒤이어 20여 년 전 이목사가 광성교회 부목사 시절 한 여성 신도와 가깝게 지냈다는 스캔들이 터졌다. 이 문제는 8년 전에 입양한 딸이 이 여성이 낳은 아이었다는 소문으로 부풀려졌다.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한 장로는 “그 여성 신도와 이목사의 딸이 꼭 닮았다. 그 이상의 증거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목사가 입양 단체에서 발급받은 입양확인서를 제출하면서 이 소문은 수그러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목사 퇴진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이목사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들은 담임 목사에게 막말을 하고 폭행을 가했다. 유전자를 감식해야 한다며 이목사에게 달려들어 머리카락을 뽑는가 하면, 여덟 살 난 목사 딸의 머리채를 잡는 일이 벌어졌다. 과격한 신도 몇 명은 담임 목사 방을 부수고 들어가 이목사의 부인과 여성 장로를 폭행했다. 이때부터 이목사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담임 목사측은 교회 장부를 공개하며 투명한 교회 운영을 표방했다. 이 과정에서 원로 목사측의 일부 불투명한 교회 자금 운용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딸과 사위 등 친인척과 관련한 명확하지 않은 일 처리는 신도들로 하여금 원로 목사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이에 대해 김창인 목사는 “이성곤 목사가 도덕적인 문제가 드러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날 물고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한 장로는 “취임 직후부터 이목사는 녹취를 하는 등 원로 목사를 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라고 말했다.

김목사 친인척과 관련한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큰 딸에 관한 것이다. 광성교회는 김목사가 총장을 맡고 있는 부산 장신대에 수  십억원을 지원했다. 이 대가로 자신은 총장에, 큰 딸은 교수에 임용되었다는 의혹이다. 광성교회 돈 4억원이 장신대학에 지원된 지 두 달 만인 2000년 12월 김목사는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김목사의 큰 딸이 이 대학 교수로 임용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 2001년 3월 김목사의 큰 딸은 특수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 대학에 특수교육학과는 2002년 3월에야 개설되었다.

두 번째는 사위와 관련한 부분이다. 김목사가 자기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영신학원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영신여고 교장인 자기 사위 석아무개씨와 짜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 21억여원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석씨는 서른아홉 나이에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다. 석교장은 재단 전입금을 받을 때 학교법인 명의의 계좌와는 별도로 개인 계좌 4개를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한 장로는 “절차에는 문제가 있으나 한푼도 개인이 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법적으로 모두 증명되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신도들은 석교장이 맡고 있는 성가대 운영비 내역을 보고 흥분했다. 성가대 아홉 개 가운데 석씨가 운영하는 시온찬양대는 2004년 1억6천만원을 지원받았다. 나머지 성가대 가운데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은 벧엘찬양대는 겨우 연 7백70만원을 받았을 뿐이다. 지휘자 사례비 명목으로 석씨가 받은 돈은 1천5백40만원이었다. 더구나 시온찬양대에 지급되는 모든 돈은 석씨가 관리하는 계좌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창인 목사는 “특혜 지원이 아니라 유급으로 운영하는 오케스트라의 예산이 집행된 것이다. 석교장이 지휘하고 받는 사례금은 전액 영산학원에서 학생들 장학금으로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도들은 대부분 담임 목사 지지로 돌변했다. 현재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와 목사들은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의 비율이 99%라고 주장했다. 반면,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측은 원로 목사를 지지자가 20%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담임 목사가 설교하는 주일 예배에 나오는 성인 신도는 6천여 명. 이에 반해 교회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원로 목사 신도는 4백여 명이다. 대략 9 대 1 가량이라고 볼 수 있다. 

목회자 노조 결성 -직장 폐쇄 '진풍경'도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를 설교 마이크의 힘이라고 해석했다. 만약 김목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는 순간 전세는 그대로 역전될 것이라고 한다. 김창인 원로 목사는 “중간에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극단적인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성곤 담임 목사는 “내가 이끌어서 되는 일 아니다. 이는 교인의 뜻이요, 교회의 뜻으로 곧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광성교회 부목사 18명은 9명 대 9명으로 정확히 반이 갈렸다. 장로 44명은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18명과 반대하는 26명으로 갈려 있다. 거의 대부분의 목사와 장로가 김창인 목사가 임명한 사람임을 감안할 때, 이목사 지지 세력이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광성교회에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20~30년간 김창인 목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신자일수록 이성곤 목사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한 장로는 “학력이 낮아 이성적 판단이 흐린 가난한 사람들을 위주로 담임 목사가 설교로 세뇌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신자들에게 돈 문제와 가족 문제를 들먹여 김목사의 클린 이미지를 순식간에 허물어버렸다”라고 말했다.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한 장로는 “이성곤 목사가 취임하기 전에도 원로 목사의 전횡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세력이 분명히 있었다”라고 말했다.

올 들어 양측의 싸움은 더욱 거칠어졌다. 지난 1월에는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목회자들이 노조를 결성했고, 담임 목사측은 직장 폐쇄로 맞섰다. 교회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감정이 악화된 만큼 폭력 수위도 높아졌다. 교인들 간의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수십 여건의 소송이 난무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폭력 혐의로 입건된 교인만도 100명을 넘었다. 양측은 상대편에서 폭력배를 동원해 폭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폭력 혐의로 입건된 교인 100명 넘어

교회도 난장판이 되었다. 예배 중 마이크를 끄는가 하면, 아예 전기를 차단하기도 했다. 예배 중에 집단 퇴장하는 것은 그나마 점잖은 편에 속했다. 설교 중간에 “너나 잘해”라고 삿대질을 하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아멘”을 외치는 신도들도 있었다. 예배 중에 집단적으로 호루라기를 불기도 했다.

현재는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들이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들의 교회 입장을 막고 있다. 이들은 교회 배지를 가슴에 차고 교회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더 이상의 예배 방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반면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들은 담임 목사가 예배를 막고 있다며 경찰에 고소해놓은 상태다.  

혼돈 속에 있는 교인들에게 목사들은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성곤 담임 목사는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니고, 교회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난 교인과 하나님의 도구로 그저 섬길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창인 원로 목사는 “저쪽에서 법에 호소해 발목을 잡고 있다. 4월27일에도 검찰에 불려갔는데 하나하나 무혐의가 나오고 있다. 사법적인 판단이 끝나 계기가 되면 반드시 행동하겠다”라고 말했다.

한국 교회를 선도하던 광성교회는 자정 능력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교회의 가장 나쁜 구석만을 보여주고 있다. 시비를 가리는 단계를 넘어 감정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제도와 법이 구속력이 없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분쟁에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매일 밤 12시. 광성교회에서는 어김없이 철야 예배가 열린다. 교회 안에서는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들이 “김창인 목사는 진정한 은퇴를 하라”고 기도한다. 교회 밖에서는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신도들이 “이성곤 목사는 교회에서 물러나라”고 기도한다.

세간에서는 3천억원대의 광성교회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치졸한 싸움으로 보기도 한다. 담임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이건, 원로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이건 모두 승자는 되기 어려워 보이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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