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뻔한 덕수궁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4.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는 때로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 순간의 실수, 한 순간의 판단에 의해 숱한 역사적인 일들이 명멸한다. 덕수궁,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많은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이 궁궐도 한때 먼지처럼 사라질 뻔했다. 이 궁궐이 전쟁의 참화를 피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국방군사연구소에서 1996년 5월 펴낸 <폭파 위기의 덕수궁>에 이와 관련한 비화가 실려 있다. 이 책은 국방군사연구소에서 한국전쟁 참전 수기 입선작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저자인 제임스 해밀턴 딜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시 포트휴스턴에서 태어났다.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오우번대학을 졸업하고 중위로 한국전쟁에 포병 관측장교로 참전했다. 미국 동성훈장, 미국 보국훈장 등을 수상했고, <문골리에서 16일> 등 많은 저서가 있다.

다음은 <폭파 위기의 덕수궁>에 나와 있는 주요 내용이다. 때는 1950년 9월25일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나는 미 육군포병학교(오클라호마주 로턴 소재) 제 18 야전포병대대에서 포병 소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덕수궁 안과 정원에 적군이 계속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 지점을 폭격하면 나는 틀림없이 수백 명에 달하는 적군의 병력과 장비를 순식간에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고궁도 사라질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 국가의 유물인데 나의 ‘포격개시’란 말 한마디로 불과 몇 분 안에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를 그대로 처리하여 포격을 하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나는 동료인 앤더슨 대위와 상의했다. 그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그와 나는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비슷한 경우의 몬테카시노성의 파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적군이 집중 지역인 고궁을 빠져 나가기 시작하면 곧 그 이동방향을 알려줄 것” 관측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만일 적군이 남쪽을 향해 이동하면서 공격을 가해 오면 아군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아군의 사상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적군이 동쪽이나 북쪽으로 이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고궁을 벗어난 대로상에 공격을 하므로 그 효과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적군을 격멸할 수 있고, 동시에 고궁은 살리게 되는 것이다. 여하간 이것은 내게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관측자의 보고가 들어왔다. 적군이 덕수궁을 빠져 나와 을지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1초를 기다릴 새도 없이 포격 개시를 지시했다. 오늘날 덕수궁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 그날 그 시점에 가졌던 판단과 행동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그 시간을 회고해보면 단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최선의 방안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이다.]

현재 사적 124호인 덕수궁에는 국보 229호 자격루와 국보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국보 2점과 함녕전`중화전 등 다수의 보물 문화재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