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입법안 마지막 고비만 남았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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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협상 결렬에도 비공식 채널 통해 ‘조율’ 계속 노동계, 판 깨지는 않을 듯…가장 큰 변수는 여론
 
‘거의 다 왔다.’ 비정규직보호법안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한 노사정 실무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타결이 임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임시국회 회기 안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노사정 대표들이 11차에 걸쳐 실무 회담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6월 국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실무 회담에 참여한 노사정 대표들은 협상 과정에서 논의되었던 세부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말자고 약속했다. 실무 대표들이 속한 집단의 반발을 의식해 ‘이번에 합의된 사항은 하나도 없다’고 외부에 공표하자는 것까지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또 미타결 쟁점에 대해서는 비공식 채널까지 동원해 협상을 계속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어 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사정 실무회의를 주재한 이목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은 “기간제 노동자 사용 시간과 기간제 계약 종료시 고용 보장만 빼고는 모두 합의점을 찾았다. 앞으로 노사정이 비공식 접촉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또 “노사 합의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6월 국회 회기 내에는 (비정규직 입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7일부터 5월2일까지 25일 동안 11차례에 걸쳐 비정규직 입법안 처리를 위해 노사정 실무 협의를 열었다. 마지막 실무 회담이 끝난 다음날인 5월3일 노동계와 재계는 겉으로는 아쉬운 뜻을 나타냈지만 속으로는 안도하고 있다. 노동계는 4월 임시국회에서 국회가 비정규직 입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것을 막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5백40만명(노동계 8백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강행 처리를 막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여론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수동 민주노총 대변인은 “4월 강행 처리를 막는 투쟁은 성공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입법 투쟁에 들어가고자 한다. 5월 중순까지 비정규직보호법안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방향과 전략을 세우겠다”라고 말했다. 이대변인은 또 6월 임금 단체협상과 비정규직보호법안을 연동시켜 대규모 투쟁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목희 위원장은 “노동계가 임단협 투쟁과 비정규직입법안을 연동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으므로 (비정규직 입법안을 둘러싸고) 총파업 같은 대규모 투쟁을 벌일 가능성은 적다. 지금 협상이 진행 중인데 물리력을 동원해 판을 깰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기간제 노동자 고용 보장이 가장 큰 난제

노동계는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 14일 ‘동일가치 노동·동일임금 원칙 명문화’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사유 제한’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유리한 협상 국면을 맞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제공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해서 낮은 임금과 처우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업종이나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또 지난 11차 교섭까지 합의된 사항을 보더라도 현행 비정규직 관련법보다 훨씬 나아졌다.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 행위를 바로잡을 절차에 대해 합의한 것이다. 차별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입증하는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파견업종 범위에 대해서도 노동계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재계는 6월 임단협과 비정규직 사안이 연동되면서 노동계가 총파업 같은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 요구에 굴복해 양보를 거듭하면서 도출된 합의안에 불만을 갖고 있어 이번에 결렬된 것이 더 나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는 노사정 협의가 완전히 결렬되면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사용자가 입맛에 맞게 요리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하지만 재계 속내를 살펴보면, 노사정 협상이 완전히 결렬될 것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지금까지 실무 회담을 걸치면서 노사정 대표가 이끌어낸 합의안이 실재하고 있고 비공식 채널을 통해 추가 협상을 하기로 약속한 만큼 노사정 회의가 결렬되었다고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6월 국회 회기까지 노사정 실무대표자들은 미타결 쟁점인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과 사용기간 이후 고용 보장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노동계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1년으로 못박고 있으나 경영계는 3년을 주장하고 있다. 추가 논의 과정에서 2년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이 끝난 후 고용 보장은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이 끝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무기간직)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용자측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사용자 대표들은 이것마저 양보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판을 끝냈다는 내부 비판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사 대표들은 비정규직 관련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변수가 국민 여론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 여론 흐름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협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고 또 내부 설득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수동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동계 힘으로만 밀어붙여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앞으로 시민단체와 연계해 국민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형편을 알리는 데 치중하고 국민 여론을 보아가며 투쟁 전략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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