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산 학원들 “교육부 만세!”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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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내신 대비반, 때아닌 특수…불안감 커지고 학교 시험 까다로워진 탓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올 초 문을 연 ㅈ학원 원장은 개원 기념 학부모 설명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학부모들을 웃겼다. “우리도 돈 좀 그만 벌고 싶다니까요. 그런데 자꾸 교육부가 돈 벌 일을 만들어 주네요.” 그의 말은 2008년부터 적용될 새 대입 제도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 현재까지 그의 호언은 비교적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2008년 새 대입 제도의 첫 번째 적용자가 될 고1 학생들 덕분에 학원가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울 강북권을 대표하는 대형 입시 학원 중 하나인 학림학원 관계자는 “종합반·단과반 합쳐 지난해에 비해 고1 수강생이 30% 가량 늘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서도 고1 내신 대비반은 새롭게 떠오르는 유망 시장이다. 새 입시 제도에 맞추어 내신 준비를 위한 개별 강좌 2백여 개를 올 초 오픈한 메가스터디 손은진 부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2,3에 비해 고1은 학습량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올 들어 상황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1을 대상으로 한 이 회사의 온라인 강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월 30.1%, 2월 20.4%, 3월 69.7% 성장했다.  

또 다른 온라인 교육 사이트인 이투스도 고1 회원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 회사 전체 회원 중 고1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에서 올해 14.5%로 급증했다(4월 말 기준).

내신이 강화되면서 사교육이 오히려 더 번창한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애초 교육부가 내신 비중을 강화한 이면에는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고1 학부모들은 오히려 교육비가 더 늘었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왜? 일단은 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학부모·학생 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간·기말 고사 등 학교 시험의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진 것 또한 사교육을 찾게 하는 요인이다.  

학교 시험이 어려워진 것은 이번 고1부터 내신 산정에 상대 평가가 적용되는 데다 과목별 평균 점수를 70~75점으로 맞추라는 교육 당국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자칫 쉽게 냈다가는 시말서를 쓸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교사들이 갖고 있다”라고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여고 교사는 말했다. 더욱이 동점자가 나오거나 할 경우 애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는 것이다(바뀐 제도에서는 동점자에게 중간 석차가 적용된다).

학원들, 학교별 시험 경향 철저 파악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학생 들은 사교육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수능·논술은 물론이고 내신 부문에서도 사교육 시장은 학교와 비교가 안되는 정보력과 기동력을 자랑한다. 중간 고사가 한창 진행되던 4월 말 찾아간 서울 중계동의 대형 학원 라운지에는 인근 20여 학교의 3~4년간 기출 시험지가 과목 별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번 중간 고사를 먼저 치른 학교들의 시험지도 이곳에 속속 취합되고 있었다.  

학교 별로 내신반이 편제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인근 20여 학교 별로 학생 수준에 맞춰 내신반을 따로 편성했다”라고 밝혔다. 곧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한 강의실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영○고 서울대반, 영○고 연고대반 식으로 반을 세분화한다는 것이었다.

이 학원에서 고1 국어 강좌를 맡고 있는 김진억씨는 “내신 강화를 앞두고 학교별 시험 경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 왔다. 현재는 인근 20개 학교 교사들의 실력·성향을 웬만큼 꿰뚫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학교 별로 모인 아이들은 지난 4월 한 달간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자는 강행군을 계속해 왔다. 이 학원의 귀가 시간은 모두 세 차례. 밤 11시, 오전 1시, 새벽 3시였는데 밤 11시에 학원을 뜨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학원측은 전했다.  

어려워진 시험 외에 입시 제도의 불확실성 또한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이번에 서울대가 본고사형 논술 시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학부모·학생은 불안에 떨었지만 학원들은 웃었다. 학교 차원에서는 논술 고사를 대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안팎의 중론이다(상자 기사 참조).    

지난해 교육부가 새 입시안을 발표했을 당시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현재의 대학 서열 구조가 완화되지 않는 한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더 팽창할 것이다”라고 주장했었다. 그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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