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에 불을 지를 거요”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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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꽃게 전쟁’ 르포/어민들, ‘NLL 침범→북한 자극→정부 개입’ 초강수 준비

 
꽃게철이다. 산란기를 앞둔 5~6월이면 살과 알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들이 행락객들을 서해 항·포구로 불러 모은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 최대 꽃게 산지인 연평도에서도 꽃게철이 사라졌다. 꽃게를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관광객도 발이 뚝 끊겼다.

연평도 현미식당 차림표에서 꽃게탕은 아예 청테이프로 가려 있었다. 식당 주인 김현미씨는 “꽃게 물량이 워낙 달리는 데다 가격이 비싸 꽃게탕을 포기했다. 꽃게 구경한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다른 식당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식당 주인은 “지난 가을에 냉동한 꽃게로 꽃게탕을 끓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동희 소연평도 어민회장은 “꽃게가 워낙 안 잡혀 조업을 나가봤자 기름값도 건지기 어렵다. 조업을 나갈수록 손해여서 출어를 포기한 어선이 절반은 된다”라고 말했다.

 
연평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에게 바다를 빼앗겨 꽃게철을 빼앗겼다고 했다. 2년 전부터 중국 꽃게잡이 어선 100~2백여 척이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불법 조업을 일삼아 꽃게 씨를 말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 해역을 마음껏 드나든다는 어민들의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보이는 북녘 땅에서 시커멓게 포진한 중국 어선들을 보는 어민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선장 이진수씨는 “중국 배가 산란기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저인망으로 싹쓸이 조업을 일삼는 바람에 꽃게고 잡어고 씨가 말라 그물에 올라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선장 정명수씨는 “내 나라 내 땅에서 탈법을 일삼는 진짜 도둑은 안 잡고 사소한 위반을 단속하려고 한다. 차라리 어민들이 단속할 수 있도록 ‘연평공화국’으로 남게 해 달라”고 말했다. 연평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보다는 우리 해군의 느려터진 단속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로 어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5월1일 새벽 6시 연평도 꽃게잡이 배 60여 척은 조업을 포기하고 ‘해상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벌이다 안개를 틈타 NLL(북방한계선)까지 내려와 꽃게를 잡고 있던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했다. 일부 어선들은 조업구역을 벗어나 NLL 부근까지 추격해 중국 어선을 끌고 왔다.

이곳은 해군과 해경 경비함도 접근이 제한된 곳으로 군사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지역이다. 해군이 어선들의 집단 행동을 저지하려 했지만 30여 척이 동시에 돌진하는 바람에 조업구역 이탈을 막지 못했다. 선장 정흥섭씨는 “연평도 어민 가운데 신용불량자 아닌 사람이 없다. 오죽 절박했으면 라인을 넘어가서 중국 배를 잡아오겠나”라고 말했다.

다음날도 어민들의 집단 행동은 이어졌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어민들은 어선 50여 척에 나누어 타고 전날 중국 어선들을 나포했던 NLL 인근으로 향했다. 연평도 어민들이 출현하자, 중국 어선 100여 척은 전열을 정비했다. 양측은 NLL 경계선상에서 3시간 동안 대치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다행히 북한 해군 함정이 움직이지 않아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남측 어선과 중국 어선이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북한 함정이 이를 빌미로 개입한다면 남북 간의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었다. 1999년 6월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서해대전’에 이은 꽃게대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해군과 해경 관계자는 “만약 우리 어선들이 NLL 북쪽으로 넘어가 중국 어선과 충돌한다면 국제 문제로 비화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충돌 위험까지 있다.

어민들이 해군과 해경이 중국 어선을 강경 진압하지 못하는 특수성을 감안해 정부측에 도발한 측면이 강했다”라고 말했다.
북한 해군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지 않으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해군 관계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어선을 적극 단속하지 않으려는 의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급해진 정부는 해양수산부 국장을 대표로 하는 협상 테이블을 만들었다. 지난 5월3일 오후 연평면사무소에서 ‘중국어선 불법조업 대책 간담회’가 열렸다. 어민들은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어민들은 “정부가 중국 어선을 퇴치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나서겠다”라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결국 회의는 2시간여 만에 중단되었다.

어민 100여 명은 극도로 흥분했다. 마시다 만 소주병을 회의장에 던지는가 하면, 방송 카메라에 주먹을 휘둘렀다. 한 어민은 기름 탱크를 실은 트럭을 몰고 면사무소를 폭발시키겠다며 돌진하다가 제지되었다. 해수부 국장 등 정부 관계자들은 1시간20분 동안 면사무소에 갇혀 있다가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격해진 어민들은 항구 진입로를 봉쇄하고 공무원들을 막아섰다. 한 어민은 “국장을 납치·감금해 각서를 받지 않으면 섬에서 못 나가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은 어장 확대·조업기간 연장 등을 고려하고, 무궁화호(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의 꽃게잡이 배에 대한 단속을 완화한다는 약속으로 어민들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부가 매번 내놓은 해결책은 선주 좋은 일만 시킨다며 선장과 선원은 반발하고 있다. 선주·선장·선원 간의 입장 차가 큰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책이 단기 처방에 불과해서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우선 북한 해역에서 조업하고 있는 중국 어선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해양수산부 심호진 어업자원국장은 “5월 말 중국과 고위급 회담을 열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중국 어선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이 국경 부근 해역에 대한 어업권을 이미 중국 어선들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 한 해경 관계자는 “북한에서 조업하기 위해 중국 어선들이 어업허가권과 같은 비표를 산 것으로 알고 있다. 나포된 어선에서 비표가 발견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이 미묘하게 개입해 있어, 사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서해에서 꽃게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평도 어민들이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하는 돌출 행동을 벌인 이유도 극심한 꽃게 흉작 때문이었다. 백령도와 연평도 지역 어민들의 대표적인 소득원인 꽃게는 1980~1990년대만 해도 연평균 1만5천여t의 어획량을 올렸지만 2004년에는 2천3백t으로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 어획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서해안에서는 동해안 대표 어종인 오징어와 남해에서 주로 잡히던 멸치가 많이 잡힌다. 최근 어획량만 놓고 볼 때 멸치가 서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수산연구소는 그 원인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때문으로 보고 있다. 기후 변화 때문에 바다 생태계에 변화가 생기고, 어종이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5월4일 새벽 5시30분, 연평도 꽃게잡이 배 56척은 힘차게 출항했다. 그러나 어민들의 한숨 소리는 줄지 않았다. 며칠 동안 조업하지 못해 그물은 상해 있었다. 몇 마리밖에 잡히지 않은 꽃게마저 썩어 있었다. 5월6일은 기상 악화로 조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평도 어민회장 최율씨는 “오십 평생에 이렇게 꽃게가 안 잡힌 적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는 얼마 못 간다.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중국 배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를 생각까지 하고 있다. 휘발유 20통이면 20척을 가라앉힐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꽃게가 없는 꽃게철, 꽃게잡이 어민들이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는 초강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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