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주인은 ‘실버 세대’
  • 나건(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대학원장) ()
  • 승인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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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 노인 경제력 크게 향상, 소비 주체로 떠올라…어르신 맞춤형 디자인 ‘대박’

 

지난 20세기가 베이비 붐 세대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실버 세대가 주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실버’라는 표현은 1970년 말 일본의 한 기업이 머리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하는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확히 몇 살부터 머리가 센다는 명확한 의학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대충 50세 이상의 장년층과 노년층을 실버 세대라고 한다 (UN이 정한 기준에 의하면,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2010년에는 고령 사회로 그리고 2018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의학이 발달해 평균 수명은 느는 반면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초아와 같은 미래학자들은 건강하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노인 계층의 등장을 예측하고 있다. TONK(Two Only No Kids)족이 그 대표적인 예. 과거에 손자나 손녀들을 봐주는 헌신적인 노인으로부터 건강한 두 사람만의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노인으로의 변화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미 젊은 사람들 중에도 자식을 낳고 키우느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기려는 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 있다. DINK족의 미래 모습이 TONK족이라 할 수 있다. 또 노인이기를 부정하는 노노(No 老)족이라는 새로운 종족도 나타났다.

영국, 55세 이상이 소비의 40% 차지

미국의 경우, 55세 이상 계층이 전체 금융기관에 예치된 예금의 약 80%를 소유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55세 이상의 계층이 전체 소비의 40%를 차지한다. 한국도 노인의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어 노인의 가구당 구매력이 증가하면서 소비의 주체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55세 이상 인구의 1인당 연간 소득이 1990년에 비해 2001년도에 3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거에는 노인에게 필요한 용품을 자녀가 구매해 주었으나, 이제는 노인 스스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주체적인 소비 세력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또 노인의 80% 이상이 주택·통장·연금 등의 재산을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미만의 비노인층을 대상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겠다’고 한 사람이 약 70%에 달한다. 중국의 경우, 2000년 기준으로 노인들의 시장 소비 규모가 3천3백 위안에 달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최근에는 돈 있는 실버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노인’을 호의적으로 해석하는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안락 의자에 앉아 그냥 소일하는 소극적 노인상을 일 또는 취미 활동에 적극적인 노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백발의 신사가 광고에 등장하기도 한다. 독일의 한 제약회사에서는 52세의 여성을 화장품 광고에 출현시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국의 옥소 사는 사용자의 사용성과 감성을 최대한 고려한 손잡이를 개발해 각종 주방용품 및 생활용품에 적용함으로써 노약자뿐 아니라 장애자들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통제인 애드빌(Advil)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약통의 뚜껑을 여는 데 불편하다는 점에 착안해 병뚜껑의 손잡이를 아주 크게 만들어서 쉽게 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런 마케팅을 펼치기 위해서는 실버 계층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품이나 디자인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거동이 옛날 같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집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것과 달라야 한다. 힘을 적게 쓰고도 문을 쉽게 열고 닫을 수 있어야 하며, 미끄럼 방지가 된 화장실, 요리에 용이한 주방, 침실, 조명 등이 모두 노인의 특성을 고려해 디자인되어야 한다. 입고 벗기에 쉬우면서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옷도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도 타고 내리기에 편리한 문, 짐을 싣고 내리기 쉬운 구조, 알아보기 쉬운 계기판, 정확하고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브레이크(Brake)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휴대폰도 더 큰 글씨, 더 큰 버튼, 아주 간단한 기능을 가진 것이 나와야 함은 물론이다.

21세기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세대, 실버 세대. 그들을 잡기 위한 치밀한 기업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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