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뮤지컬’이 몰려온다
  •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05.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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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흥행 성공…귀익은 대중 음악들 무대에 펼쳐
 
뮤지컬에서 들을 수 있는 여러 음악 가운데 가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밥 신세였다. 예술적 완성도에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를 쓰면 지나치게 흥행을 의식한다거나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창작 뮤지컬에서도 가요를 접하기는 어려웠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 대중 가요로 꾸민 뮤지컬이 흥행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은 물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8일 막을 내린 뮤지컬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이 작품은 영화에 나오지 않은 왕년의 히트 가요들을 대폭 확충해서 7080세대 관객을 많이 불러들였다. 

기성 세대는 이 작품을 통해 송골매의 <세상만사>와 <어쩌다 마주친 그대>, 김추자의 <무인도>, 윤수일의 <황홀한 고백>, 옥슨 80의 <불놀이야> 등 자기들이 젊은 시절에 즐겨 들었던 가요를 들으며 추억을 만끽했다. 이 작품이 성공한 데는 대중 가요가 제공하는 친숙함이 큰 몫을 했다. 친숙함은 대중 문화 흥행의 으뜸 조건이다. 이것은 또한 근래 뮤지컬이 작품성보다는 관객 동원에 민감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5월31일까지 대학로의 뮤지컬 전용 자유극장 무대에서 펼쳐지는 <달고나>도 접근법에 차이가 없다. 제목에서 이미 7080세대를 겨냥한 이 뮤지컬에도 송창식의 <담뱃가게 아가씨>,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김현식의 <골목길>, 트윈 폴리오의 <웨딩 케익> 등 추억의 대중 가요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무대 세트로 길거리에서 팔던 불량 과자, 딱지 치기, 변두리 극장 모습, 대학가의 엠티와 같은 것들이 설정되어 리얼한 느낌을 주지만, 무엇보다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바로 스토리에 곁들인 대중 가요들이다.

이런 작품들의 특성은 기성 세대를 겨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층이 생소하게 느끼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7080붐에 의해 옛 가요에 대한 신세대의 관심이 수직 상승하고 있는 데다, 더러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곡을 서비스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는 최신곡인 싸이의 <새>가 삽입되었다. 제작진은 장윤정의 <어머나>도 고려했다고 한다. 극본이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신세대 취향의 곡이 포함될 수 있다는 말이다.

뮤지컬에 인기 록그룹 자우림의 노래들이 연이어 들린다면 신세대들은 더 즐거울 것이다. 연말이면 자우림이 뮤지컬과 만난다. 오는 12월17일부터 무대에 오를 뮤지컬 <매직 카펫 라이드>는 자우림의 히트곡을 제목으로 했듯 전체를 자우림의 노래로 엮은 작품이다. 아바의 레퍼토리로 뮤지컬을 꾸려낸 <맘마미아>처럼 특정 가수의 노래로 엮는 뮤지컬을 우리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스토리만 탄탄하면 언제든 도전한다”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도 거의 스토리 토대가 완성되어 역시 연말에 프리뷰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근래 들어 워낙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간접 전성기를 맞이한 이문세, 그리고 산울림 김창완의 경우도 기획자들에 의해 뮤지컬이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기성 세대 가수만이 아니라 자우림이 예시하듯 젊은 인기 가수들도 뮤지컬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사항이다. 

조용필은 <맘마미아>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자기 곡으로 구성한 뮤지컬을 염두에 두었다. 히트곡 숫자로만 따지면 ‘한국판 맘마미아’에 가장 근접한 가수는 단연 조용필일 것이다. 2002년부터 예술의전당 연례 공연에서 부분적으로 뮤지컬을 실험해오고 있는 그는 “내 노래들을 효과적으로 전할 스토리 대본이 만들어진다면 제작에 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5년 목표로 도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조용필의 말마따나 가요 뮤지컬의 성패는 대본이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있다. 뮤지컬 진영은 잇단 가요 뮤지컬 등장에 대해 염려하는 눈길도 보내지만, 긍정적 시각이 우세다. 외국의 대형 뮤지컬에 눌리지 않으려면 우리 정서를 잘 녹여낸 작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대중 가요를 끌어들인 뮤지컬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뮤지컬의 중심이 서양의 클래식과 재즈 등 무거운 음악에서 대중 가요와 같은 쉬운 음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중 음악 관계자들 역시 최근 뮤지컬 장르가 인기를 누리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음반 시장 침체에 따라 다른 장르들과 연계해야 할 처지에 놓인 가요계는 드라마·영화·게임에 비해 ‘더 음악적인’ 성격을 지닌 뮤지컬이 더 효과를 가져올 채널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가수들이 뮤지컬로 동선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앞으로 신인 가수도 음반이 아닌 뮤지컬을 통해 데뷔 신고식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뮤지컬의 시대, 바야흐로 대중 가요의 뮤지컬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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