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따라하면 백전백패”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5.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케이블TV 10년 역사 온몸으로 쓴 일등공신 10인

케이블TV 10년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개국과 함께 잠깐 볕이 드는 듯했지만, 외환위기로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걸음마도 체 떼기 전에 혹독한 한파에 내몰렸다. 그런 힘든 나날을 뒤로 하고 이제 케이블TV는 지상파 방송에 필적할 만큼 부쩍 자랐다. 

<시사저널>은 케이블TV 10년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 10명을 케이블TV방송협회와 케이블TV 종사자들에게 자문해 선정했다. 이들을 통해서 케이블TV 1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카메라 앞에서, 혹은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이들은 케이블TV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케이블TV 출범 때부터 함께한 이들로부터 케이블TV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들어보았다 . 


 
Mnet 신형관 팀장

Mnet 신형관 음악채널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히트 프로그램 제조기다. <타임 투 록><가요 발전소><쇼킹 M><홧츠 업 요><와이드 연예 뉴스><M 카운트다운> 등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Mnet의 주력 프로그램이 되었다.

지금은 지상파를 능가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채널이 되었지만 외환위기 고개를 넘으며 어려운 시기도 여러 번 겪었다. 심지어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직접 진행을 맡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그가 얻은 교훈은 ‘공중파와 똑같이 만들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VJ와 뮤직 비디오를 적극 활용하는 등 음악 프로그램의 새로운 문법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타임 투 록><힙합 더 바이브> 등을 제작해 댄스 음악 위주인 지상파 채널에서 소외되던 장르의 음악도 적극 소개했다.

그의 노력으로 Mnet은 가수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M 카운트다운>은 이제 가수들이 컴백 무대로 지상파 프로그램보다 더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MNet VJ 이기상씨   

Mnet VJ 공채 1기 이기상씨는 VJ 1세대다. 케이블TV 출범 당시 VJ는 신세대 유망 직업으로 인기가 좋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방송 생활을 시작했지만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케이블TV 가입자가 더디게 늘면서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괴감에 휩싸였다. 많은 VJ들이 케이블TV를 떠났다. 무력감에 휩싸인 그는 급기야 마이크를 놓고 외국으로 나갔다.

다시 방송에 복귀한 그는 지상파 채널에 적극 진출했다. ‘MC 사관학교’라는 VJ 생활을 거친 덕에 그는 금방 방송에서 돋보였다. 지상파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뒤에 그는 다시 케이블TV로 복귀했다. <와이드 연예 뉴스> 진행을 맡은 그는 안정된 진행으로 프로그램을 빠른 시간에 정착시켰다.

전천후 방송인으로 다양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VJ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VJ 1세대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VJ라는 음악 전문 MC를 안착시킨 데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엑스포츠 채널 이희진 사장

지난 5월11일, 이희진씨(41)는 일희일비했다. 박찬호가 아쉽게 4승을 놓쳤지만, 같은 시각 벌어진 다른 경기에서 최희섭이 3점 역전 홈런을 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 이씨는 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의 국내 방송 중계권을 갖고 있는 (주)썬티브이의 대표다.

말이 일희일비이지, 사실 이희진 사장의 요즘 기상도는 ‘일희일희’에 가깝다. 이사장은 올해 초 메이저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4년간 4천8백만 달러(약4백80억원)에 국내 중계권을 샀다. 방송 채널이 없던 이사장의 원래 구상은 지상파와 케이블·위성·DMB 등에 중계권을 되파는 것.

하지만 주도권을 빼앗긴 공중파 방송사들이 반발하자 그는 스포츠 전문 채널 엑스포츠(Xports)를 설립하고 직접 방송에 뛰어들었다. 엑스포츠는 이미 전국 케이블방송 사업자 90% 이상과 계약, 시청자 1천1백만 가구를 확보했다. 더구나 박찬호까지 살아났으니 금상첨화. 덕분에 엑스포츠는 올해 케이블 텔레비전 업계의 히어로로 떠올랐다.

 
Q채널 이은희 팀장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Q채널은 케이블TV 초창기 채널 중에 살아 남은 몇 안되는 교양 채널 중의 하나다. 그동안 제일기획에서 삼성영상사업단으로, 다시 중앙일보로 주인을 바꾸면서도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제작 역량은 약해졌다. <민족 과학 대발견>으로 2003년 방송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제작비가 줄어 대형 기획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개국 때부터 Q채널을 지킨 이은희 팀장은 Q채널이 살 길을 시청률이 아닌 국내 판매와 수출에서 찾았다. 시청률이 아닌 판매에 초점을 맞추면서 프로그램 완성도가 높아졌다. 이팀장은 “해외 판매를 위해서 보편적인 주제에 눈을 돌렸는데 성과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리포트>를 통해 전문 지역 다큐에 눈을 뜬 Q채널은 뒤이어 <아시아 음식 기행><아시아 건강 기행><아시아 명인전> 등 특화한 다큐를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무난한 기획 위주로 제작하게 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MBN 정성관 국장

경제 뉴스 전문 보도 채널인 MBN은 세계적으로 드문 뉴스 미디어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개국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는데, 이런 사례가 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나, 지난해 경기 저점을 지날 때나 MBN은 계속 성장을 계속했다.

MBN의 정성관 국장은 이런 성공이 시장 상황에 맞게 빠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증권·부동산 등 이재에 방점을 두었던 MBN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 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늘어나자 뉴스로 무게 중심을 이동했다. 정국장은 “경제 뉴스는 사실 재미가 없다. 재미를 주고 시청률을 높이는 것보다 풍부한 정보로 만족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라고 말했다.

최근 MBN은 종합 뉴스 채널로 거듭나기 위해 허물을 벗고 있다. 정국장은 “모기업인 매일경제신문사가 경제 뉴스를 바탕으로 종합지가 되었듯이 MBN도 경제 뉴스를 중심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경제와 연관된 정치 뉴스와 사회 뉴스도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투니버스 장진원 국장

케이블TV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투니버스는 케이블TV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로 시작한 투니버스는 어린이 종합 채널로 성장해 같은 시간대 시청률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편성 전략을 주도하는 장진원 국장은 투니버스의 성공 비결이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국장은 “누가 아이들을 더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의 승부였다. 10년 동안 보낸 시간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파악하는 데 보냈다.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라고 말했다. 

업계 1위가 되었지만 투니버스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일본 수입 만화 의존 비율이 기형적으로 높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자체 제작 역량이 전무한 것도 지적된다. 그는 “이제 충분히 기반을 닦았으니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 국내 애니메이션을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에도 참여하겠다”라고 밝혔다.


 
현대홈쇼핑 쇼호스트 유난희씨

유난희씨(40)는 이미 유명 인사다. 국내 쇼 호스트 1호로, 최초로 억대 연봉을 받은 쇼 호스트로 잇달아 언론을 탔다. 단시간에 가장 많은 판매 실적을 올린 기록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홈쇼핑에서 ‘클럽 노블레스 위드 유난희’ 코너를 방송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홈쇼핑 채널 밖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두 번째 책이자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순정아이북스)를 펴냈고, 4월 말에는 모교인 숙명여대의 리더십 주간 때 특강을 했다. 숙명여대 멘토 위원으로 후배 20여명과 꾸준한 인연을 맺고 있다.

5월11일, 낮에는 회의하고 방송하느라, 저녁에는 방송 아카데미에 강의 나가느라, 그녀의 휴대전화는 하루 종일 꺼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야 연결이 된 그녀가 특유의 방송용 하이 톤으로 말했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해라. 실패하더라도 그게 낫다. 후배나 학생들을 만나면 늘 그렇게 말합니다.”


 
YTN 돌발영상팀 임장혁·장민수 PD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 정상의 특징은? 어딜 가나 맨 앞자리에 앉는다, 둘이서만 어울린다, 부부애를 과시한다, 그리고 우산은 혼자만 쓴다. YTN <돌발영상>이 5월11일 ‘폭로’한 미·러 두 정상의 모습이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승리 60주년 기념행사를 캡처한 장면 속에서다.

<돌발영상>은 YTN 기동취재팀 소속 9~11년차 기자인 임장혁(36)·장민수(35) PD가 만들고 있다. 1분30초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자사 카메라 기자와 풀단에서 제공받은 화면을 매일 서너 시간씩 돌려본다. 아이템이 확정되면 필요한 화면을 편집하고, 재미있는 자막을 더해 방송에 내보낸다.

2003년 4월 첫 방송된 <돌발영상>이 정가에 미친 영향은 크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에 앞장선 야당 정치인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어 화제를 낳았다. 다른 방송에도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생겨날 정도로 <돌발영상>은 방송가에 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온게임넷 황형준 국장

케이블TV 온게임넷은 세계 최초의 게임 전문 채널이다. 애니메이션 채널인 투니버스에 공채 1기로 입사한 황형준 국장은 온게임넷의 창업 공신이다. 온라인 게임에 스포츠 개념을 도입해 e스포츠라는 장르를 개척한 그는 게임 전문 채널로 온게임넷을 기획했다.

게임 전문 채널을 일구며 그가 택한 방법은 스타 마케팅이었다. 그는 임요환 등 스타 게이머를 키우며 동시에 이들을 통해 채널도 키워냈다. 다행히 온라인 게임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빠른 시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전례가 없는 게임 전문 채널을 만들면서 그는 모든 것을 새로 창조했다. 비디오자키를 차용한 게임자키라는 말도 그가 만들어낸 말이다. 이제 온게임넷 프로그램은 게임 방송의 표준이 되었다. 온게임넷은 지상파 방송사가 가장 많이 모방하는 케이블 채널이다. 앞으로 국내 신규 게임 소개에 주력하겠다는 그는 “온게임넷은 온라인 게임 덕에 컸다. 이제 역으로 온게임넷이 온라인 게임을 키워줄 차례다”라고 말했다.


온스타일 김제현 팀장

<싱글즈 인 서울>은 온스타일의 최고 ‘효녀 프로그램’이다. 도시 남녀의 라이프 스타일과 사고 방식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신생 채널인 온스타일의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각인했다.

온스타일의 김제현 팀장은 바로 이 <싱글즈 인 서울> 기획자다. 싱글 남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그녀는 이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메트로 섹슈얼’ ‘콘트라 섹슈얼’ 등 새로운 트렌드를 잡아내자 케이블TV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언론에도 크게 소개되었다. 

후발 주자인 온스타일이 선발 주자인 동아TV와 GTV를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여성들이라고 해서 전부 페미니즘적인 것은 아니지 않을까?’ ‘여성들이 정말 패션쇼 보는 것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그녀는 ‘여자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했다. 아직 정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