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죽어라 할 때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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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쩌다 보면 편집국에 악재가 겹쳐 죽어라 죽어라 할 때가 있는데 요즘이 딱 그렇다. 얼마 전에는 지난 대선 당시 <시사저널>이 보도했던 ‘한인옥 여사 10억 수수설’이 오보라고 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정치 공작꾼들의 하수인 겸 홍위병 노릇을 했다’는 욕을 들어야 했다. <시사저널>의 보도에 정치적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주장은 터무니없지만 보도 내용이 틀린 것은 사실이어서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호에는 청계천 재개발 비리에 관련된 김일주씨(전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사진을 동명이인의 것을 잘못 싣는 큰 실수를 했다. 사진부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해 두었던 사진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인데, 피해자인 농촌문제연구회 김일주 회장께는 실로 면목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평생을 농촌 문화운동에 헌신해온 김회장과 김회장을 존경하는 분들에게 거듭 사과를 드린다.

최근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을 가장 고심하게 만들고 있는 인물은 26년 전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특수공작원 이 아무개씨의 고백을 토대로 보도했던 <시사저널>의 김형욱 파리 양계장 암살설과 배치되는 기사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MBC <PD수첩>이 이씨와 파리 동행 취재를 한 뒤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정원 과거사건진상규명위원회가 관계자의 진실 고백으로 김형욱 실종 사건의 진상 규명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 결론이 양계장 살해설과 거리가 멀다는 보도도 나왔다. 뉴욕한국일보는 미국 국무부 비밀 해제 문서를 인용해 김형욱씨가 파리를 떠나 취리히를 거쳐 사우디 아라비아의 다란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뉴욕 한국일보의 보도를 근거로 일부 언론은 양계장 암살설이 사실 무근이라고 단정했는데 이는 성급한 결론이다. 국정원 해외 파트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이것을 미국 국무부 공식 입장이라고 해독하면 곤란하다. 첩보 차원에서 이런 보고도 들어왔으니 참고하라는 수준이다. 그런 첩보를 조사했다는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첩보였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기왕 시작한 일인 만큼 이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유난히 진을 빼며 5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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