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줄다리기’ 결판나나
  • 베이징 · 정주영 통신원 ()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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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환율 왜곡 비판하며 절상 압력…중국 “조건 성숙되면 알아서 올린다”

 
중국 위안화 절상에 대한 미국과 유렵의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대중국 무역 적자가 1천6백19억 달러에 이른 미국이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미국경제정책연구소(EPI)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1989년에서 2003년 사이에 20배나 증가했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계속해서 무역 총액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과도한 무역 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미국의 최대 무역 수지 적자 상대국인 중국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압력이든 행사해야 하는 처지이다.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와 엔화의 강세로 유럽과 일본의 대중국 무역 수지 적자액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2003년 1~5월 중 유럽 지역의 대중국 무역 적자액은 1백53억 유로로 전년 동기에 비해 16% 증가했다. 같은 해 1~7월중 일본의 대중국 무역 적자액은 1조2천2백35억 엔이었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중국은 금융 당국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달러 당 8.27~8.28 위안을 유지하는 사실상 고정 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 제도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무역 수지 흑자는 준(準)고정환율제를 통한 위안화의 의도적 저평가에 기인한다고 주요 선진국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에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중국에 평가 절상을 요구하는 전화를 하는가 하면, 미국 정계는 중국의 환율 정책을 비판하는 깃발을 높이 들고 나섰다. 존 스노우 미국 상무장관은 미국 하원에 보낸 보고서에서 중국의 환율 정책이 왜곡되어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미국 의회는 중국이 6개월 안에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을 경우 27.5%의 보복 관세를 물리는 법안을 오는 7월 표결에 부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고압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정부의 비공식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당국에 최소 10%의 위안화 절상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근거해, 중국 내부에서는 오는 7월 위안화 절상론과 연내 절상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의회가 중국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관세 보복까지 단행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은 최후 통첩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여겨진다. 내년에 있을 중간 선거를 의식해서라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강압적 분위기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며, 부시 대통령도 자신의 지지 기반인 중소 제조업체들의 위안화 절상에 대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G8 정상회의에 참석해 부시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7월에는 위완화 절상 방침이 발표되리라는 예측이 있다.
  
그러나 위안화의 안정을 요구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난 5월24일 신화통신은 ‘위안화 평가 절상은 중국 경제 성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 대학 교수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는 위안화 평가 절상은 미국의 경상 적자를 줄이는 데는 별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중국의 빈부 격차만 심화시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S&P도 “중국의 은행들은 아직 갑작스런 환율 변동을 감당할 만한 내성이 없다”라고 보고 있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강력한 위안화 절상 요구는 사실상 부시 정권의 책임 떠넘기기다”라고 지적했다.
 
 
위안화 절상은 일차적으로 중국의 수출에 직접적 타격을 미친다. 경제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경제 성장률도 하락할 것이며, 투기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처지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분위기도 위안화 절상 자체에 대해서는 기존의 ‘절대 불가’ 입장에서 상당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그러나 시기와 절상 정도가 문제다.
 
우의(吳儀)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지난 5월23일 중국의 명확한 입장은 환율 제도를 개혁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조건이 성숙되면 외부의 압력이 없어도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시기는 시장이 위안화 절상 문제에 대해 둔감해졌을 때라고 덧붙였다.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월25일 미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중국을 방문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건이 성숙되지 않는 한 위안화 절상은 없을 것이라고 중국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도 중장기적으로 환율 제도 개선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환경적으로 보자면 중국이 평화롭게 위안화 평가 절상을 단행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봐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압력은 강해질 것이고 이에 대해 중국도 단순히 무시와 버티기 작전을 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의 섬유 및 의료 등 특정 제품에 수입 쿼터를 제한했다. 그러나 중국이 가진 카드도 만만치 않다. 미국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국 국채를 매도할 경우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할 수 있다. 2003년 7월 기준으로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1천2백61억 달러로 일본(4천4백38억 달러), 영국(1천4백23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이다.

 
또한 미국의 보복 관세는 오히려 중국에 진출한 미국 업체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 중국이 맞불 작전으로 미국에 대해 보복 관세를 적용한다면, 이 또한 미국 업체들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다. 미국으로서도 계속 강압적으로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 당국과 관변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올해 안에 위안화 평가 절상을 하되 그 폭은 5%를 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제시한 10%는 이상적인 목표치에 불과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일 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연 질긴 줄다리기를 벌였던 위안화 절상이 올해 그 결실을 보게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양 국의 분위기를 볼 때 그 시기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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