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에 찔려 피 보는 것 아냐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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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침술 둘러싼 의료계 이전투구 ‘한의계 판정승’…양의계 반격 예고

 
‘독도(침)를 다케시마(IMS)라고 우기면 너네(양방의사) 꺼 되나?’ ‘의사가 침 놓으면 동네 개는 수술한다’. 이번에는 한의사들이 들고일어섰다.   

지난 4월 말 의사들의 IMS(신경근자극술:Intramuscular Stimulation) 처치에 대해 건설교통부 산하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자보심의회)가 진료 수가를 결정해 공지하면서부터 긴장감이 높아졌다. 

처음 자보심의회가 결정한 수가는 1만~2만원(Simple IMS A 1만원. Simple IMS C 2만원). 현재 한의사들의 침술 처치는 종류에 따라 각각 3천1백80원과 4천2백30원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25일 대한한의사협회 임시 총회는 한의사 1천5백명이 모인 가운데 험악한 모양새로 치러졌다. 안건은 회장 탄핵과 ‘IMS 사태’ 대책 마련이었다. 관련 재심의가 5월27일로 예정되어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이튿날 총궐기가 예정된 마당이었다. 하지만 일부 한의사들이 들고일어섰다. ‘이미 결정난 뒤에 모여서 뭣 하느냐’며 회장 탄핵안을 들고 25일 임시 총회를 급조한 것이다. 

안재규 한의사협회 회장은 “섭섭하다. 5월27일 재심회의가 마련되어 있는 만큼 조정이 가능하다”라고 해명했으나 끝내 격앙된 회원들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건물 바깥을 둘러싼 한의사들은 안회장의 해명 발언에 연신 ‘집어치우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안회장은 결과에 상관없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가까스로 탄핵을 면했다. 

“유사 한방 침술” vs “찌르면 다 침이냐”

27일 자보심의회의 재심의 결과, 이후 청구건에 대해서는 IMS 처치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 유예키로 해 사실상 IMS 파동 이전으로 돌아갔다. 한의학계가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지난해 말 컴퓨터단층촬영(CT) 판결과 한의학계의 감기 포스터에 의료계가 발끈했다면, 이번에는 IMS 수가 결정으로 한의학계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IMS는 양방 쪽에서 통증을 없애고 마취하는 데 적용해온 기술. 이에 대해 한의계는 ‘한방 침술의 가장 초보적인 형태를 도입해 마치 새로운 의료행위인 양 포장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부르는 것’‘찌르면 다 침이냐?’  

이에 의료계는 ‘찌르면 다 침이냐?’고 맞서고 있다. 대한IMS학회 안 강 부회장은 “개념이 다르다. 침술이면 손에 장을 지르고 목을 잘라도 좋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재심의를 통해 IMS 수가 결정이 유예되면서 앞으로 의사들의 공세가 예상된다. 

 
대한IMS학회 장현재 보험이사는 “한의계는 한방정책관실 신설 이후 청진기를 접수한 데 이어 약물 주사와 CT, 초음파를 비롯한 현대 의료기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IMS는 침술이므로 의사들이 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라고 말했다. 장이사는 한의계가 ‘내 것은 내 것이요.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놀부 심보를 드러내고 있다며 “자보뿐 아니라 건강보험에서도 보험 급여를 통해 환자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미 한·양방 사이에는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고 있다. 5월27일 현재 한의원을 대상으로 한 의료계의 고발 건수는 2백68건. 허위과장 광고와 부당 의료기기 사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약 부작용 알리기라는 본 게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는 일선 의사들에게 한약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를 수집하기 위한 보고서 양식을 배포했다. 한약으로 인한 독성과 부작용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입증’해 소송 자료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의학계 또한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10배 보복’을 부르짖으며 맞고소를 진행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특히 IMS 진료수가를 결정한 자보심의회에 의료계 6명이 할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계 대표가 단 1명도 포함되지 못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방쪽 힘이 딸리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법정 다툼이 이어지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도 빈발하고 있다. 최근 제품에 항진균 성분인 케토코나졸을 넣었다는 혐의가 제기된 한 소아과 전문 한의원은 “사실이 아니지만 해명에 나서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크다. 병원 이름이 언급되지 않도록 해달라”며 숫제 애걸복걸했다. 
 
한의원과 병원에 두루 납품해온 한 침구제작소는, 최근 문제가 된 IMS 니들(침)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김 아무개 대표는 “도매상을 통해 어수선한 얘기들이 들어오고 있다. 어차피 한방 수요가 많기 때문에, IMS 니들은 생산하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납품받아 의사들에게 공급해온 유통 회사는 졸지에 공급선이 끊기는 사태를 맞았다. 신뢰도에 크게 상처를 입은 대표 이 아무개씨는 거래 병원에 사정을 알리느라 진을 뺐다. 그는 “제작소가 제품 생산을 중단한 것은 결국 한방쪽 압력 때문 아니겠느냐.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방사선 강의 보이콧 등 곳곳 후유증

 
죽기 살기로 상대를 욕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분노를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드러내 놓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CT 판결이든, 이번 IMS 수가 결정이든 당사자를 격앙시킬 요소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침구류 제작사 대표는 “연원을 따지기 전에 침은 3천~4천원, 의사가 놓는 IMS 요법은 2만원이라면 한의사들이 수긍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2심이 진행되고 있는 한의사 CT 진단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한의학까지 두루 공부한 한 한의사는 “한의대에서 방사선학을 배우지만 그걸로 판독까지 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말한다. ‘CT로 복부 비만 정도를 체크하는 데 뭘 그리 시비냐’는 한의계의 태도는 위험천만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약 그 화면에 종양이 잡혔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비만도만 체크했을 경우 나중에 환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심각한 의료 분쟁감이다. 의사들은 그런 긴장감을 갖고 임한다. 한 학기 배운 것으로 판독이 가능하다고 덤비지는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언뜻 비상식적으로 비치는 ‘강의 보이콧’ 운동은 그런 사정을 알리기 위한 방편이다. 지방의 한 한의대에 출강하던 방사선과 전문의 강 아무개씨는 10년 넘게 맡아오던 방사선학 강좌를 이번 학기에 하지 않고 있다. 전문의 강씨는 “CT 판결 때 한의대생도 방사선학을 배운다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잘못된 판결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활용될 수 있어 잠시 중단한 것이다. 방학 때 특강을 마련하는 등 제자들을 가르칠 방법을 찾고 있다”라며 씁쓸해 했다. 

문제는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조정파’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전망이 어두울수록 강경파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어 싸움은 쉽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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