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는 뉴미디어의 사생아?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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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음란물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벌거벗은 여인을 앞세운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이 뉴미디어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 미국에서 세계 최대 컴퓨터 관련 첨단기술 전시회인 ‘컴덱스(COMDEX)’가 열릴 때마다 근처에서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린다. 바로 ‘어덜텍스(ADULTEX)’다. 포르노 제작자들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로 담아낸 포르노물을 선보이는 행사다.

포르노는 뉴미디어의 사생아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했을 때부터 뉘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했을 때는 물론, 모바일 데이터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바로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음란물이 유포된다는 것이다.  미디어 발전사는 성인 콘텐츠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뉴미디어를 위해 개발된 음란물은 뉴미디어의 확산을 돕는다. ‘벌거벗은 여인은 신기술 확산의 어머니’라는 말마따나 각종 뉴미디어가 음란물을 실어 나르며 정착했다. VCR 테이프가 베타 테이프를 제치고 대중화할 때와 DVD 표준이 정해질 때, 포르노는 알게 모르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가 정착하는 데에도 성인 콘텐츠의 역할이 지대했다.

포르노는 뉴미디어의 사생아!

지난 5월12일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성인 콘텐츠가 이동통신업체의 가입자 확보에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전체 비디오 서비스의 4분의 1을 성인 콘텐츠가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 이동통신 서비스업체 ‘오렌지’(프랑스텔레콤의 무선망 관련 계열사)와 홍콩·타이완·싱가포르·말레이시아 이동통신업체들이 서비스할 가상의 연인 서비스 ‘비비안’을 예로 들며 ‘전세계 대다수 무선망 사업자들이 신기술을 정착시키기 위해 성인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동영상을 내려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 단말기 보급 대수는 서유럽이 2천1백만대, 아시아가 1천9백만대, 북미가 1천4백만대 정도다. 시장 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사는 2006년까지 단말기 수가 현재의 4배 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전세계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 규모가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앞으로 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중요한 내용을 빠뜨렸다. 한국의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에 대한 현황을 취재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국내 이동통신 3사의 성인 콘텐츠 매출은 SK텔레콤이 3백34억, KTF가 2백억, LG텔레콤이 64억 원으로 약 6백억원에 이른다.

이 수익이 전부가 아니다. 통신사들은 성인 콘텐츠를 내려받는 동안 통화료 수입을 얻는데, 이 수입 규모가 정보이용료의 3~4배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성인 콘텐츠 관련 통화 수입이 SK텔레콤은 1천억원, KTF는 6백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수익까지 합칠 경우 이동통신 3사의 관련 매출은 2천억원을 넘는 규모로 전세계 성인 콘텐츠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3월, 성인 콘텐츠 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SK텔레콤의 성인 콘텐츠 구매 담당 과장이 구속되었는데, 업자들로부터 받은 금품 및 향응 액수가 15억원에 이른 것이다.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이 폭발하면서 기존 성인 콘텐츠 제작자들도 모바일 시장으로 골드러시를 이루고 있다. 성인 비디오 전문 제작업체인 초록스크린도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에 뛰어든 대표적인 업체 중 한 곳이다. <접촉> 등 패러디 성인 비디오로 인기를 모았던 초록스크린은 다른 성인 비디오 제작자들보다 앞서 모바일 시장에 진출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한 달에 한두 편씩 성인 비디오를 제작하던 초록스크린은 요즘 한 달에 5~6편 이상의 장편 성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10분 내외의 모바일 성인 콘텐츠를 30여편 이상씩 제작하고 있다. 초록스크린 황성우 팀장은 “오프라인 성인 비디오 시장과 온라인 성인 방송을 통한 매출은 30% 정도이고 모바일 성인 콘텐츠를 제공해서 올리는 매출이 70%를 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성인 방송 업체 노브라TV를 운영하던 마야엔터테인먼트도 신속하게 서비스 전환을 한 곳이다. 노브라TV를 비롯해 바나나TV, 엔터채널 등이 등장하며 2000년과 2001년 전성기를 구가하던 인터넷 성인 방송은 과다 노출 경쟁에 따른 정부의 단속과 불법 복제물 범람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야엔터테인먼트는 신속하게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에 안착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모바일 성인 콘텐츠 제작 업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현재 업계 관계자들은 모바일 성인 콘텐츠 제작 업체가 1천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실상 거의 붕괴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성인 비디오 시장이나 와해된 인터넷 성인 방송 시장에서 엑소더스를 감행한 제작자를 비롯해 각종 제작자들이 이동통신사의 성인 콘텐츠 제작자(CP)로 나섰다.

이들은 피라미드형 하청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피라미드의 정점은 이동통신사가 차지한다. 그 밑에는 이동통신사에 성인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관리업체(MCP)가 있고, 그 밑으로 성인 콘텐츠 제작자(CP)들이 줄을 선다. 군소 제작자들은 규모가 큰 CP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성인물을 제작하고 있는 형국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넷 성인 방송에서 모바일 성인 콘텐츠로 시장이 바뀌면서 성인 콘텐츠를 둘러싼 헤게모니 또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성인 방송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 많은 성인 콘텐츠 제작업자들이 IT(정보 기술)업체에 하청을 주었다. 인터넷 방송을 위한 스트리밍 기술, 온라인 결제 시스템, 서버 호스팅 등에 다양한 IT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인터넷 성인 방송 운영자들이 스스로 IT산업 발전의 공로자라며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에서는 관계가 역전했다. 역으로 IT업체들이 성인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성인 콘텐츠 시장의 파괴력을 체험한 IT업체들이 기술과 서비스의 흐름을 읽고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IT업체들이 MCP로 나서 성인 콘텐츠 CP들을 거느리고 있다.

모바일 시장에서는 IT업체가 성인 콘텐츠 시장 주도

 
성인 콘텐츠 시장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배우 성현아의 누드 프로젝트였다. IT업체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함으로써 주도권이 IT업체로 넘어가게 되었다.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IT업체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성인 콘텐츠 제작업체는 이를 하청받아 제작하는 관행이 형성되었다.

성인 콘텐츠 제작자들이 IT 기술자들에게 밀렸던 이유 중 하나는 뉴미디어에 대한 적응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오프라인 성인 비디오 시장이 붕괴하고 인터넷 성인 방송 역시 P2P 사이트에 의해 복사물이 유포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많은 제작자들이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성인 콘텐츠 제작자들의 위상이 약해진 것은 콘텐츠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바일 시장에서는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짧은 성인 시트콤과 코믹한 스토리 누드가 인기를 모았다. 황성우 팀장은 “이전까지만 해도 성인 비디오 시장에 인기 제작사도 있었고 인기 배우도 있었다. 나름으로 영상미도 추구했다. 그러나 조그만 휴대전화 화면에서는 그런 차이가 무의미해졌다”라고 말했다.

연예인 누드가 형성한 모바일 성인 콘텐츠 시장은 이제 누드 서비스·동영상 서비스·성인 소설·성인 만화의 네 가지 영역으로 분화했다. 모바일 화보 시장이 커지면서 이제 연예인들은 굳이 누드를 찍지 않고 세미 누드 수준의 섹시 화보만 찍어도 충분할 만큼 시장이 형성되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성인 콘텐츠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끝나면 다시 빠른 속도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역습’을 준비하고 있다. 마야엔터테인먼트 강동운 대표는 “성인 콘텐츠 시장은 첨단 기술에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면서 인터넷 성인 방송이 바로 붐을 일으켰고,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하자 곧바로 연예인 누드가 대박을 터뜨렸다. 이제 관건은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적응력이다”라고 말했다.

성인 콘텐츠 제작자들 뉴미디어 환경 활용해 역습 노려

성인 콘텐츠 제작자들이 역습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은 위성/지상파 DMB(이동 멀티미디어 방송), 와이브로(휴대 인터넷), IPTV(인터넷 TV서비스),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재생기) 등 다가올 뉴미디어 환경이다. 특히 DMB는 역습의 교두보로 각광받고 있다. 강대표는 “DMB 환경이 되면 다시 콘텐츠 제작 능력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시장을 미리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DMB 환경에 맞는 성인 콘텐츠를 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1일 서비스를 실시한 위성DMB 채널에는 아직까지 성인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제작자들은 공중파 방송사들이 위성DMB에 재송신을 하지 않고 있어 킬러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TU미디어가 곧 러브콜을 보내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미드나잇 채널 이강봉 본부장은 “위성DMB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성인 콘텐츠를 찾게 될 것이다. 피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유혹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위성DMB 콘텐츠를 주관하고 있는 TU미디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성인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고려할 수도 있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뉴미디어의 첨병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 모델 전문 성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옵테인퓨처 코리아 최준혁 이사는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얼마나 좋은 품질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느냐에 따라 미래 첨단기술이 승자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 승자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에는 반드시 성인 콘텐츠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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