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광주·전남을 움직이는가
  • 이숙이 기자 (sookyiysisapress.comkr)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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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 공동 여론조사 결과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광주·전남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투 톱’으로 꼽혔다.

어떻게 조사했나
■누구를:광주·전남 지역 10개 분야 전문가
■몇 명을:500명(행정관료 51명 교수 50명
   언론인 50명 법조인 50명 정치인 50명
   기업인 51명 금융인 50명 사회단체 인사 48명
   문화예술인 50명 종교인 50명)
■어떻게:전화 여론조사
■언제:2005년 5월9~13일
■누가:미디어리서치

<시사저널>은 본격적인 지방자치 1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누가 지역을 움직이는가’ 시리즈를 한 달에 한 번씩 게재한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래 매년 실시하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지역판인 셈이다. 지난 9월 대전·충남 편에 이어 이번에는 광주·전남 지역을 움직이는 인물과 세력을 조사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행정 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시민사회단체 인사·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 전문가 총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현장 취재와 분석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지면을 구성했다. 조사 대상 선정과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가 담당하고, 모든 질문은 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폐쇄형이 아닌 개방형(보기를 주지 않고 직접 답변하게 하는 주관식)을 택했다.

이번에 광주·전남을 택한 것은 5·18 25주년이라는 시기적 변수가 작용했다. 1980년 이후 광주·전남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보여준 ‘특별한’ 선택에는 무엇보다 5·18 정신이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마침 열린우리당의 재·보선 참패, 민주당의 상승세, 한나라당의 ‘구애’ 등 이 지역을 둘러싼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많아 이번 조사 결과는 더욱 눈길을 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광주·전남의 민심이 민주당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주·전남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종합 순위와 정치인 분야 양쪽에서 민주당 인사들이 상위권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두 분야의 베스트 10에 오른 인사들의 면면만 보아도 민주당 대 열린우리당 비율이 7대 3 또는 6대 4 정도로 민주당이 우세하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을 조사한 항목에서는 민주당이 32.4%를 얻어, 27%에 그친 열린우리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는 아직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민주당 지지도보다 높게 나오지만, 적어도 여론주도층에서는 민주당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향력 있는 인물 1, 2위는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나란히 차지했다. 박-박 콤비의 차이는 불과 0.2%, 민주당 소속인 두 지방자치단체 수장이 광주·전남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박광태 시장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은 기본적으로 지역 예산을 많이 따온 데 있다는 것이 지역의 중론이다. 광주 예산은 실제로 올해 30%가 늘었다. 물론 예산을 확보하는 데는 국회의원의 역할이 더 크고, 광주 지역 국회의원은 모두 다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3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 사정에 밝은 박시장이 여야 의원을 설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시장은 14, 15대 의원을 거쳐 16대 의원 시절 광주시장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장 출신인 박시장이 광(光)산업을 비롯한 21세기 첨단 산업을 유치해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애쓰는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박시장은 최근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현대비자금 수수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지난 5월13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 후로 박시장의 활동 반경이 훨씬 넓고 자유로워졌으며, 표정도 무척 밝아졌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민주당은 웃고 열린우리당은 울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복덩이’다.
지난해 6월 전남도지사 재·보선에 박지사가 후보로 나섰을때만 해도 민주당 안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기류가 강했다. 박지사가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으로 DJ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과 국정홍보처장을 지내기는 했지만, 지방행정 경험도, 선거에 출마한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이 지역 총선에서 압승한 직후였다. 하지만 박지사는 열린우리당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당선해 민주당 재기의 초석이 되었다. 그 후로 치러진 전남 지역 재·보선에서는 민주당이 줄곧 승리하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박지사에 대한 세간의 평은 꼼꼼하고 성실하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최하위인 데다 호남푸대접론으로 민심이 흉흉하기까지 한 전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1주일에도 몇 번씩 서울을 오가며 투자 유치와 예산 확보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영향력 3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위는 ‘리틀 DJ’로 불리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차지했다. 두 사람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분야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해, 김 전대통령은 정신적 지주로서, 한화갑 대표는 현역 정치인으로서 각각 이 지역의 핵심 주주임을 과시했다(영향력 있는 정치인 순위는 김대중, 한화갑, 박광태, 박준영 순으로 1~4위만 자리바꿈을 했고, 그 아래는 종합 순위와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이 지역민들의 식지 않는 애정은 결국 한나라당 의원들의 DJ 재평가 작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권 탈환을 위해 어떻게든 호남 민심을 파고들어야 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지역의 정신적 지주 격인 김 전대통령과의 화해가 선결 과제인 셈이다.

정의화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5명과 당직자들은 지난 5월26일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김 전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김 전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거인으로 국가 미래를 위해 늘 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업적 또한 출중했다”라는 극찬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조만간 DJ와 YS를 재평가하는 세미나도 열 계획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호남 공들이기가 실제로 득표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DJ와 호남에 대한 한나라당의 접근법이 크게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호남의 정치적 주가가 올라가면서 현역 정치인으로서는 가장 영향력이 ‘센’ 것으로 나타난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분당 이후 집권 여당의 대표에서 제4당 대표로 추락하는 아찔함을 맛보기도 했던 한대표는 그 후로 이 지역 재·보선을 연거푸 승리로 이끌고, 최근 들어 무소속 최인기 의원(전남 나주·화순) 영입에 성공하는 등 재빠르게 당을 추스르고 있다.

최의원 입당이 확정된 5월25일 민주당사에서 만난 한대표는 앞으로 민주당만이 호남 정서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될 것이라며, 당분간 유력 인물 영입에 주력해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는 확실하게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각에서 나오는 ‘민주당= 지역당’이라는비판에 대해서도 “호남당이라고 해도 괜찮다. 구멍가게도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지지 기반이 확고하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재산이다”라는 논리다. 한대표는 오는 10월 군산시장 재·보선을 필두로 전북 선거도 휩쓸어 명실상부한 전라도당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BR>
열린우리당에서는 염동연 의원(광주 서구 갑)이 5위로 이 지역 대표선수 자리에 올랐고,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광주 서구 을)이 6위, 김재균 광주 북구청장이 9위를 차지했다. 10위에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의원이 이름을 올렸지만,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이 지역이 노풍(盧風)의 진원지인 데다,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대거 당선된 것에 비추면 여권에는 수치스런 결과가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총선 1년 만에 이처럼 이 지역 민심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반응을 종합하면 이렇다. “기껏 당선시켜 놓았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대북송금 특검을 해서 DJ를 궁지로 몰아넣질 않나, 광주에 와서는 ‘내가 이뻐서 찍어줬냐? 이회창 미워서 나 찍워줬지’ 하는 식의 발언을 해서 이 지역 민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도 탄핵 사태가 터지자 이 지역에서 다시 한번 노대통령을 지지했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주다시피 했는데, 그 후 1년이 지났는데도 이 지역에서 뭐 하나 제대로 완결된 일이 없다.”

이해찬 총리는 ‘공공의 적’으로 몰려

광주·전남에서는 요즘 이해찬 총리가 ‘공공의 적’이다. 올해 초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호남고속철은 경제성이 나빠 조기 착공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힌 이후부터다. 노대통령 대선 공약이었고, 한나라당도 지지하는 정책이어서 잔뜩 기대를 걸고 있던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총리의 매몰찬 반응이 나오자 배신감이 들끓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조차 “이총리 발언의 역풍이 거셌다”라고 말할 정도다.

한 택시기사는 이 지역 민심을 이렇게 대변했다. “열린우리당이라…. 인기가 없소. 총선 때 다 밀어주었더니, 이해찬씨가 와가지고 호남고속철 못해준다 그럽디다. 경제성이 없어서 못해준다니, 그러면 경상도는 경제성 있어서 고속철이 다닙니까? 이것이 말이요, 막걸리요? 말이 안됩니다. 이러다 열린우리당 큰코다칩니다.”

 
노대통령이 최근 5·18 행사에 참석차 광주에 들렀다가 “경제성으로만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식은 재고하겠다”라며 다독였지만 쌓인 앙금이 쉽게 가셔질지는 미지수다.
한전 유치 여부도 이 지역 민심을 술렁이게 만드는 변수다. 한전은 반드시 광주·전남으로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도민들은 지난 5월23일 전남도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낙후한 도에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호남고속철을 조기 착공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이처럼 지역 민심이 싸늘하게 돌아서자, 열린우리당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비빌 언덕’이 없어진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소속 광주·전남 의원들은 일단 최근의 민심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여당이 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예산만 해도 여당 의원들이 다 따냈고, 서·남해안 개발사업인 S프로젝트도 대통령이 적극 밀어줘서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은 “민주당에 대한 동정심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마당에, 민주당에 우호적인 이 지역 언론들이 여당의 실적은 무시하고 조그만 실수는 침소봉대하는 바람에 실상이 잘못 전달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광주·전남 출신 여당 의원들이 매주 모여 지역 현안을 논의하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권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영향력 5위권에 든 염동연 의원은 “그동안 우리는 배부른 고양이마냥 느긋함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나만해도 일개 초선 의원이었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당이 더 이상 배가 부른 상태도 아니고, 나 역시 호남의 전폭적 지지로 지도부에 입성한 만큼 이 지역 대표성을 가지고 조직 구축과 홍보에 적극 나서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민주당과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려는 열린우리당이 다시 한번 격돌하는 계기는 내년 5·30 지자체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 여전히 합당론이 나오고 이번 조사에서도 ‘합당해야 한다’는 의견(52.6%)이  ‘반대한다’는 응답(44.4%)보다 높지만, 민주당이 힘을 얻으면 얻을수록, 합당은 성사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물론 합당에 적극적이던 일부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지자체 선거 전 합당은 물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두 당 다 우리 사람들인데 지자체 선거는 갈라져서 치르는 것이 인물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낫다. 합당은 대선 전에 하면 된다”라는 주장들이 점점 더 힘을 얻는 추세다.

 
차기 광주시장감으로는 현역인 박광태 시장이 현직 프리미엄을 업고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강운태 전 의원(민주당), 김재균 광주 북구청장(열린우리당), 정동채 장관(열린우리당), 최인기 의원(민주당)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차기 전남도지사감으로는 역시 현역인 박준영 지사가 1위를 차지했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 강운태 전 의원, 김효석 의원이 그 뒤를 이었다.

5위에는 무소속인 박주선 전 의원과 송재구 전 전남부지사(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열린우리당)이 동시에 올랐지만, 전반적으로는 민주당 소속 인사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DJ 정부 이래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의 기구한 운명을 경험한 박주선 전 의원이 조만간 민주당에 입당한 후 지자체 선거를 통해 명예 회복에 나설 생각을 가지고 있어, 민주당은 당분간 내부 교통 정리를 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생겼다.

진정성을 가지고 호소하면 이 지역 민심은 조만간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는 열린우리당과 이제 호남의 대표 세력은 자기들밖에 없다며 부활을 선언한 민주당, 그리고 그 틈새를 뚫고 어떻게든 교두보를 마련해 보려는 한나라당이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어 광주·전남은 또다시 주목되는 정치 1번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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