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늘자 ‘종교 전쟁’ 터지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6.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신교·불교, 주5일 근무 시대 맞아 ‘신개념 전도·포교’로 정면 승부

 
오는 7월1일부터 관공서 및 종업원 3백인 이상 사업장으로까지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실시되는 것을 앞두고 종교계가 다시 한번 숨을 죽이고 있다.   다른 나라 예를 보면 긴장할 법도 하다. 우리보다 40~50년 앞서 주5일제를 채택한 지역에서 종교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1950년대만 해도 일요일이면 1~4부 예배 식으로 몇 차례씩 예배를 보는 유럽 교회가 많았다고 임석순 목사(바울의교회)는 전한다. 

그러나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교회는 침체의 길을 걸었다. 문 닫는 교회도 속출했다. 신자들, 특히 젊은 신자들은 ‘주일성수(主日聖守, 주일을 성스럽게 지키는 것)’ 교리를 엄수하기보다 야외로 놀러 나가거나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재연될까? 전망은 엇갈린다. 한 가지 특징은, 종교에 따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편차가 크다는 사실이다. 특히 개신교와 불교가 그렇다. 

거칠게 일반화하자면 개신교는 주5일제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주5일제 도입이 논의되던 초창기,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주5일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주5일제는 ‘주6일을 성실하게 일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주5일제가 대세가 된 지금 기독교계는 더 이상 이런 교리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단 주5일제가 확산되면 교회가 가시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데 목회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지난해 CBS와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대표 옥한흠 목사)가 개신교 목회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5일제가 한국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자는 57%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자(25.3%)에 비해 배 이상 많았다.

주5일제, 기독교에는 위기 불교에는 기회?

이에 반해 불교계는 주5일제를 ‘위기’라기보다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행과 레저 활동이 증가하게 될 주5일제 시대에 명산에 대찰을 많이 소유한 불
 
교는 그 입지 자체만으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다. 때마침 불어닥친 웰빙 열풍 또한 단순하고도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불교의 정신과 맞아떨어진다. 이 때문에 교계 일각에서는 지금이야말로 ‘불교 역사 2천 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포교의 기회’(나윤중 동명정보대 교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반박 또한 만만치 않다. 기독교계 시민단체인 하이패밀리 송길원 대표는 “반드시 주5일제 때문에 구미 지역 교회가 쇠퇴했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공단 지역에 치중된 교회 입지, 신학적 자유주의 사상 확대, 교회의 경직된 대응 따위가 두루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불교계 내부에서도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명산 대찰이라는 것이 유리한 조건임에는 틀림없지만 직장인들이 매주 야외로 나갈 수 있는 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닐 바에야 이것만으로 사람들을 유인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종교계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개신교의 경우 일단 눈에 띄는 것이 잇단 전원 교회 출현이다. 전원 교회란 말 그대로 전원에 자리 잡은 교회를 말한다. ‘한국 최초의 전원 교회’를 표방한 새빛전원교회(경기도 광주시)는 본래 서울 강남 개포동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 교회는 1995년 도심 인근의 전원주택 단지로 교회를 옮긴다는 결단을 내렸다. 공해와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에게 ‘참 쉼터’를 제공하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이런 전원 교회들은 한결같이 ‘자연 속의 휴식’을 내세우며 일반인을 유혹하고 있다.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도심 교회 예배당과 달리 통유리창을 과감하게 사용한 이들 교회 예배당에서는 숲 속에서 예배를 보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맛볼 수 있다. 주말 농장을 곁에 두고 예배 후 농사를 짓게 한다거나 숙소·기도원·편의시설 등을 함께 운영하는 전원 교회들도 있다.

 최근에는 이런 풍광 좋은 교회들만 골라 소개하는 책자도 선을 보였다. 전정희씨(<국민일보> 기자)가 쓴 <꼭 한번 가고 싶은 아름다운 전원 교회>(엔크리스토 펴냄)가 그것이다. 엄숙주의자들은 ‘교회를 관광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분개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교회 또한 사찰 못지 않게 충분한 답사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일깨운다. 

그런가 하면 대형 교회에서 부설 수양관·기도관 형식으로 전원 교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사랑의교회(서울 서초구)는 경기도 안성에 호텔급 시설의 수양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요일마다 본당과 연결된 화상 시스템을 통해 화상 예배가 제공된다.

이밖에 영락교회 광림교회 성광교회 초동교회 소망교회도 특색 있는 기도원 내지 수양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 대형 교회가 운영하는 이들 전원 교회는 자칫하면 교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각의 우려를 낳고 있다.

전원 교회 세우고 금요 예배 도입

개신교가 주5일제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예배 시간을 바꾸는 것이다. 서울 구로구 갈릴리교회(목사 인명진)에 가면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안내판이다.

여기에는 ‘1부 예배:금요일 오후 7시30분’이라고 적혀 있다. 보통 일요일 오전 7시나 8시에 시작되는 1부 예배에 익숙한 신도들에게 이는 파격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금요 예배를 처음 도입하면서 이 교회는 ‘이단’이라는 욕도 숱하게 들어야 했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금요 예배를 도입한 인명진 목사의 주관은 확고하다. “시대가 달라지면 교회도 달라져야 한다. 주일성수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매일, 상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는 것이다.

 
그 결과 갈릴리교회의 금요 예배는 정착 단계에 들어간 상태이다. 5월27일 금요 예배에서 만난 교인 이수경씨는 “이번 주말에 지방에 갈 일정이 있어 오늘 예배를 드리러 왔다. 과거에는 남편이 교회를 다니지 않아 주말마다 갈등이 많았는데, 이제는 타협할 여지가 생겨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주5일제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각종 소모임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 사능교회(목사 백용훈)는 인근에 ‘들꽃과 허브’라는 수목원을 운영하고 있다. 2만평 대지 위에 각종 들꽃과 허브가 만발한 이 수목원은 교인뿐 아니라 일반 지역민에게도 나들이 명소로 손꼽힌다. 

그러나 교회가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 의식에 따라 사능교회는 사람들을 주말에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소모임들을 고안했다.

무엇보다 이 교회는 베드 타운으로 분류되는 서울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이른바 잘 나간다는 중산층보다는 사업하다가 실패한 사람 등 어쩔 수 없이 이 동네로 떠밀려온 사람이 많았다고 교회측은 전한다. 패배 의식과 무력감에 젖은 이 사람들을 위해 백용훈 목사가 떠올린 것이 스포츠 소모임이었다. 

열심히 땀을 흘리다 보면 정신도 건강해진다는 소신에 따라 축구·족구·탁구·농구 소모임을 결성한 백목사는 처음부터 스파르타식으로 이들 모임을 운영했다. 이를테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축구 연습은 일요일 오후 3시에 시작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했다.

야외 훈련을 갈 경우 버스는 출발 예정 시각을 정확히 지킨다. 3분만 늦어도 버스 못 탈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끈끈한 유대를 쌓은 덕분에 사능교회는 다른 교회들처럼 ‘남성 및 청장년층 교인 수의 감소’를 걱정하지 않는다. 65세 이상 교인 비율이 50%를 넘어선 일반 농촌 교회와 달리 이 교회의 노령 인구 비율은 1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가족을 겨냥한 각종 프로그램 계발도 주5일제를 대비한 기독교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당수 교회는 이미 결혼 예비 교육, 부부 관계 향상 교육, 부모 역할 교육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조계종, ‘템플스테이’ 시행 사찰 43개로 늘려 

기독교가 이처럼 각개약진 식으로 주5일제에 대비하고 있는 것에 비해 불교계는 대한불교조계종 지휘 아래 좀더 체계적인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시기에 도입되어 불교계의 대표 브랜드로 떠오른 ‘템플스테이(Temple Stay)’ 프로그램을 적극 확장해 주5일 수요에 대비한다는 것이 조계종의 기본 구상이다.

템플스테이는 무엇보다 절을 대중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과거에도 이름 난 산사들은 일반인을 상대로 여름 수련회 같은 것을 열곤 했다. ‘단기 출가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수련회 참석자들은 귀한 수행 체험을 하는 대신 엄격한 규율을 지키느라 몸 고생·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이에 비한다면 템플스테이는 좀 ‘말랑말랑’한 편이다. 한 예로 가장 성공적인 템플스테이로 손꼽히는 전남 대흥사 ‘새벽숲길’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없는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참석자들은 기상·예불·공양 등 최소한의 규칙과 일과만 준수하면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숲 속을 산책하건, 좌선을 하건, 독서를 하건 자유다. 심지어 낮잠을 자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언뜻 보면 지나치게 분방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대둔사 수련원장 법인 스님은 “산사의 일상 생활 자체가 일반인에게 감동을 준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단지 새벽 숲길을 산책하고 등산하고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도 참가자들이 자기 손을 잡고 “스님, 굉장히 행복했습니다”를 연발하곤 한다는 것이다. 

단 템플스테이의 경우 명성에 비해 참여는 아직 저조하다는 것이 불교계 내부의 냉정한 평가이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 36개 사찰에서 진행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참가자는 3만6천여 명에 달했다(이 중 3천2백여 명은 외국인).  

일반의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부터 템플스테이 시행 사찰을 43개 사찰로 늘리기로 한 조계종은 양적 확충뿐 아니라 질적 확충에도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초창기의 템플스테이가 주말을 맞아 공기 맑은 데서 영혼을 쉬어가는 ‘귀향(歸鄕)’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면 최근의 템플 스테이는 ‘회향(回向)’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라고 조계종 템플스테이사업단 유상우 기획홍보팀장은 말했다(회향이란 스스로가 쌓은 공덕이나 수행을 사람이나 살아 있는 생명에게 되돌리는 일을 일컫는 불교 용어이다). 

이를테면 지난 4월 전남 보성 대원사에서 있은 템플스테이의 주제는 ‘생명 평화의 밤’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신도들은 ‘도룡농 소송’으로 유명한 지율 스님을 모시고 생명과 평화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밖에 중증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륵사(경기 여주), 실직자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마곡사(충남 공주), 격월로 깊이 있는 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황사(전남 해남)처럼 특성화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사찰도 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는 지역 사회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템플스테이의 새로운 전범을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월정사는 천년의 숲 걷기 대회, 산사 영화제, 오대산 불교문화 대축제, 지역 주민과의 축구 대회 등을 잇달아 기획하며 사찰과 지역 사회의 이미지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곳 주지 정념 스님은 “한국 사회에 부족한 것이 무형 문화이다. 이를 발굴하고 시대에 맞게 가공하려면 불교도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5일제 시대, 피 말리는 종교 전쟁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결과가 어찌 되었든 하이패밀리 송길원 대표는 고정 관념부터 버리라는 처방을 내놓는다. ‘주5일 근무제’라는 고정 관념 대신 ‘주2일 휴무제’라는 신개념을 받아들여 주말을 적극적이고 깊이 있는 포교의 기회로 인식할 때 종교계 또한 21세기형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