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투기 삼매경’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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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투기 갈수록 극성…개발예정지 등 노른자위 가격 ‘껑충’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정부가 부동산 투기만큼은 근절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가 집값을 중점적으로 규제하자 부동산 투기꾼들은 개발 예정지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정부는 국제 도시를 만들겠다며 인천, 부산·진해, 광양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고, 제주 국제도시 등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전국 26곳에 산업단지를 지정했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도시, 혁신도시, 지식기반도시도 22곳에 만들 계획이다. 각 지방 정부가 쏟아놓는 각종 개발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뉴타운, 신도시 개발 등 주거환경 개선 명목으로 전국에서 연간 평균 1천여 곳이 재개발되고 있다. 이런 개발 계획을 모아놓으면 전국 땅의 상당 부분을 갈아엎어야 한다.

덕분에 투기꾼들의 먹잇감은 도처에 널렸고, 그들의 무대는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지난 4월중 토지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9.1%나 증가했다. 아파트 거래 필지 수가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개발 예정지에서 땅을 사고 판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탓이다.

토지를 사고 파는 사람이 늘수록 땅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참여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전국 땅값 총액(공시지가)은 무려 5백조원 가까이 늘었다. 2002년 1천3백54조원이던 전국 땅값 총액은 2004년 1천8백29조원으로 증가했다(표 참조). 2년 동안 공시지가 총액 증가량만 따지면 전국 땅값이 35%나 올랐다는 말이다. 물론 2000년부터 공시지가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해 공시지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용도를 변경해 개발하고, 호재가 나타나면 땅 투기꾼이 몰리면서 전국 땅값 총액은 더 크게 올랐다.

재건축·재개발에도 투기꾼 ‘입질’ 요란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집값 잡기에 나선 2003년 말 이후 큰손들은 천안·평택·대전 등으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한탕 해먹은 그들은 다시 또 중국 상하이로 가거나 전국의 개발예정지로 흩어졌다”라고 전했다. 개발예정지를 노린 땅 투기꾼들은 개발이 확정되기 전 땅을 헐값에 사들인다.

 
그리고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2~3배를 받고 되판다. 개발 사업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땅값은 통상 3~4회의 가격 상승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초기에 들어간 투기꾼이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치고 빠지기’ 수법을 쓰는 과정에서 시세 차익만 거두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개발예정지 땅값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상당 폭 오르게 마련이다. 실제로 개발예정지역의 땅값 상승률은 전국 평균치를 훨씬 웃돈다. 지난 4월 한 달 전국 지가상승률은 0.525%이지만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은 그 세 배나 높은 1.923%나 올랐다. 개발예정지가 몰려 있는 충청권·수도권의 경우 논밭(농지)이나 임야는 40~50% 이상 오른 곳도 수두룩하다. 

개발 이전에 땅장사로 돈 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개발 자체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계천 비리’로 논란을 일으킨 을지로 삼각동·누하동 일대 재개발사업을 보자. 시행사 미래로RED는 이 일대 땅을 일괄 매입한 뒤 재개발할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미래로RED가 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개발 이익만 1천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시행사가 땅을 모조리 사들인 뒤 개발해 그 이익을 독차지하기보다는 주민 조합 형태로 개발을 공동 진행해 주민과 함께 이익을 분배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개발 호재가 있으면 땅값이 오른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기 때문에 시행사가 일괄적으로 땅을 사들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상 복합이 어우러진 도심 재개발일 경우 대부분 ‘공동 개발, 이익 공유’ 형태로 진행된다. ‘도시·주거 환경 정비 기본 계획’에 따라 2년 전부터 도심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대전시 중구 은행동을 보자. 대전시와 이 지역 주민 5백50명은 현재 이 지역 2만8천5백 평을 확 바꾸려 하고 있다. 무계획적으로 생긴 상가와 주택 들이 엉켜 있어 낡고 헐어빠진 이 지역을 미래형 첨단 도시로 새로 건설하려는 것이다. 물론 개발로 인한 부가 이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땅 없는 서민만 ‘죽을 맛’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정비 사업 전문 업체 알바트로스플러스 유한원 대표는 “이 지역은 위치가 좋은 상권인데도 낡은 탓에 1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정체해 있었다. 그러나 주거와 상가, 리조트와 공원 등을 다양하고 고급스럽게 배치해 도시를 탈바꿈시킨다면 가치는 네 배 이상 뛸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 지역 땅값은 평당 5백만~3천만 원 한다. 

유한원 대표 말대로 개발 뒤 가치가 4배로 상승한다면, 그 1차적 이익은 땅을 제공한 주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주민은 재개발에 드는 비용을 내지 않고도 공사가 끝나는 5년 후 새 가게 또는 집을 분양받는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주비를 받고 다른 곳으로 이사해 살면 된다. 공사에 참여하는 시공사도 공사비로 개발 이익을 챙긴다.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알바트로스플러스도 도시 정비 컨설팅 수수료를 챙기고, 건축설계사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개발 이익을 나누는 셈이다. 대전시는 이 지역에서 새로 분양되는 상가와 주택에서 나오는 세금을 적지 않게 걷어 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심을 재개발하는 데 드는 공사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아파트 재건축비의 대부분은 원래 주인이 아닌 여유분을 분양받는 사람들이다. 일반 분양가에 아파트 전체 공사비를 떠넘기기 때문이다. 도시 재개발 과정도 비슷하다. 도로나 하수구 정비와 같은 공공시설에 드는 비용은 지방자치단제 예산으로 충당하기도 하지만, 공사비용 대부분은 나중에 새 상가나 주택을 분양받는 사람들이 내는 셈이다. 이 지역 땅과 재개발 프로그램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공사 후 생기는 상가나 주택 여유분을 분양한 대금으로 금융사 대출금을 갚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가 챙기는 이득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최근 금융사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관련 기사 참조).   

물론 재개발은 사업 추진 단계에서 이해관계가 얽히고 인허가 과정도 복잡해 사업이 중단되거나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중간에 뇌물 따위로 누수되는 돈도 적지 않다(관련 기사 참조). 하지만 일단 계획한 대로 진행된다면 개발 주체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투기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거나 땅 한 평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개발 이익이 ‘그림의 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개발하는 곳의 도로 등 사회간접시설 확충에 따른 세 부담이 늘어나고, 땅이나 건축물 값이 올라가 뒤늦게 사려 해도 사기 어려운 형편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으로 인한 투기가 줄어들지 않는 한 ‘죽어나는’ 것은 땅 한 평 없고, 투기 대열에 합류할 수 없는 대다수 국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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