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전설’ 쓴 그때 그 천재들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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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이하 세계축구선수권대회 빛낸 스타들의 ‘과거와 현재’

6월10일부터 7월2일까지 세계 축구계의 이목은 네덜란드로 쏠린다. 바로 20세 이하 세계축구선수권대회(FIFA world youth championship)가 열리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이나 또 어느 분야에서나 구성원들이 점차 연경화(年輕化)하고 있는 것이 최근 추세. 축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 대회가 앞으로 10년간 세계 축구계 판도를 가늠할 대회로 평가받는 이유다. 20세 선수는 사실상 성인 선수나 다름이 없다. 심지어 웨인 루니(20·잉글랜드), 호나우두(20·포르투갈)는 10대 시절부터 국가 대표로 뛰고 있다.
세계청소년대회가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대회가 세계적인 스타들의 등용문이라는 점. 청소년대회에서 좋은 기량을 뽐낸 '될성부른 떡잎'은 대부분 성인 무대에서도 정상급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스카우트들에게는 이 대회가 대어를 낚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대회마다 수많은 '축구판 헤드헌터'들이 모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대 청소년대회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선수들은 누가 있었을까. 그 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금까지 청소년대회를 빛낸 선수들은 축구 문외한조차도 이름을 들으면 대번 무릎을 칠 만한 톱스타들이다.

 ‘축구계의 전설’  마라도나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MVP(골든볼).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신의 손’ 사건을 일으킨 악동. 이쯤 되면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 그 역시 세계청소년대회 출신이었다.

마라도나가 뛴 대회는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제2회 대회. 그는 당시 득점 랭킹 2위에 오르면서 아르헨티나에 첫 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물론 대회 MVP 또한 그의 몫.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은 ‘특별한 프리킥 실력, 재치 있는 패싱력, 정교한 크로스, 세계 정상급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기술을 겸비한 골게터’라고 극찬했다. 그는 청소년대회 후 1982년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2시즌 동안 무려 38골(58경기)을 뽑았고, 1984년부터 1991년까지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1백15골을 넣었다. 최근에는 마약 중독 치료를 받으며 새 삶을 꿈꾸고 있다.

 삼바 전성시대를 이끈 ‘브라질 듀오’ 둥가·베베토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함께 세계청소년대회 최다 우승국(4회). 브라질의 전성기는 1983년 멕시코 대회, 1985년 소련 대회였다. 당시 브라질은 사상 첫 2연패를 달성했다. 2연패의 주역이 바로 둥가와 베베토. 이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삼바군단을 이끌며 1994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우승컵을 안겼다.

둥가는 브라질이 자랑하는 역대 최고 수비형 MF. 오른발 프리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싸움닭으로 파워풀한 축구의 대명사였다. 1990, 1994, 1998년 월드컵에 출전했고 1994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우승컵을 안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아기 달래는’ 세리머니를 한 선수, 그가 바로 베베토다. 그는 ‘펠레→지코→소크라테스→호마리우→베베토→호나우두→아드리아누’로 이어지는 브라질 공격수 계보를 당당히 장식하고 있는 공격수였다.

‘골든 제너레이션’의 선두주자 루이스 피구

역대 14개 대회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대회 2연패를 기록했던 세 팀 중 하나가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은 1989, 1991년 대회를 잇달아 석권했다. 포르투갈이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0) 4강, 유로2004 준우승을 거둔 힘도 청소년 시절부터 발을 맞추어온 이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포르투갈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세대로 평가받는다.

당시 멤버를 살펴보면 후앙 핀투·후이 코스타 등 지금도 유럽 프로 축구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그 중 대표 격은 루이스 피구. 현재 ‘초호화 군단’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주전이다. 피구는 국제축구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지난 2001년 또 하나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다.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당시 세계 축구 사상 최고 이적료(5천6백만 달러)를 기록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래킨 것이다.

‘아트사커’의 초석을 놓은 티에리 앙리

현재 브리질과 함께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프랑스는 세계청소년대회 우승은커녕 4강에도 든 적이 없다. 그러나 1997년 말레이시아대회에 출전한 프랑스 청소년 대표 선수들은 지금의 ‘아트 사커’를 완성한 주역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현 프랑스 대표팀 간판 공격수 앙리(아스날). 그는 당시 대회에서 3골을 터뜨려 다비드 트레제게(5골)와 함께 프랑스 공격진을 이끌었다. 프랑스가 8강에서 우루과이에 승부차기로 패하는 바람이 빛이 다소 바랬을 뿐이다. 그는 최근 끝난 잉글랜드 프리어 리그에서 2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축구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현존 최고 공격수임에 틀림없다.

아르헨티나에 역대 네 번째 우승을 안긴 비운의 ‘작은 거인’ 사비올라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제13회 대회에서는 작은 거인이 탄생했다. 신장 170㎝의 작은 체구를 가진 사비올라가 주인공이었다. 사비올라는 이 대회에서 두 차례 해트트릭을 포함해 모두 11골을 넣었다. 역대 최다골 득점왕으로 골든슈를 수상했고 MVP(골든볼)마저 석권했다.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의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목도한 아르헨티나 팬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상대 수비진을 휘저으면서 연속 골을 터뜨리는 것이 마치 20년 전 마라도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그에게 붙여진 닉네임도 ‘제2의 마라도나’였다. 사비올라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대표적인 선수다. 대회 직후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로 옮겼지만 지금은 프랑스의 AS모나코로 밀려났다. 2002년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최근 유럽 축구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박지성·이영표가 뛰는 에인트호벤에게 무릎을 꿇었다.

호나우디뉴·로비 킨 등 그밖의 스타들

1997년 대회에서는 굵직한 스타들이 유달리 많았다. 아이마르·리켈메(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마이클 오언(잉글랜드), 최근 수원 삼성과의 친선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잉글랜드 챔피언 첼시의 더프(아일랜드) 등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선정한 ‘2004년 올해의 선수’에 뽑힌 바르셀로나의 천재 플레이메이커 호나우디뉴(브라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의 간판 MF 로비 킨(아일랜드),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소속 오노 신지(일본), 이번 시즌 스페인 리그 득점왕에 오른 비야레알의 포를란(우루과이) 등은 1999년 제12회 대회를 통해 배출된 스타들이다.

사비올라의 원맨쇼로 끝난 2001년 대회에서는 이번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 AC밀란(이탈리아)의 플레이메이커 카카(브라질), AC밀란을 꺾고 챔피언스리그 챔피언에 오른 리버풀(잉글랜드)의 공격수 시세(프랑스) 등이 사비올라 그늘에서 눈물을 삼킨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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