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을 닮은 중국음식점
  • 벵자맹 주와노(문화평론가, 요리사) ()
  • 승인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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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계층과 계급을 망라한 모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보통 사람의 음식점을 좋아했다.  일전에 삼각지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뜻밖에도 내가 매우 좋아했던 파리의 작은 비스트로(프랑스식 바)와 매우 흡사한 분위기의 장소를 발견했다. 겉모양은 볼품없고 내부 공간이 비좁아서 손님들은 자리가 날 때까지 문 앞에서 끊임없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중국 음식점이다.

이 음식점에서는 파리, 보르도, 리옹의 오래된 음식점들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이 중국 음식점의 ‘일품요리’는 탕수육과 만두였다. 바삭거리게 튀긴 고기를 너무 달지도, 너무 끈적끈적 하지도 않게 만든, 간이 딱 맞는 소스에 버무려 먹는 탕수육은 그 맛이 정말 일품이다. 만두는 만두 속 재료들이 맛이 서로 섞이지 않고 각기 그 맛을 간직하고 있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 식당은 모든 식당 주인들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식당 내에서는 실제적으로 주문을 받지 않는다. 중국 북부지방 출신인 듯한, 볼이 발그레한 소녀가 길게 줄 서 있는 손님들의 주문을 미리 받으러 다닌다. 이렇게 하면 저녁 시간에 좀더 많은 손님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손님은 손님으로서의 의무감을 느끼며 손님 대접을 받는 다는 사실 자체를 감사해 한다. 만약 손님이 너무 까다롭게 굴거나 너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교활하게 굴면 바로 비난을 받을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곳에서는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손님들이 보이는 거만한 행동들, 즉 손바닥을 쳐서 종업원을 여러 번 불러 까탈스럽게 주문하며 메뉴 내용마다 시비를 걸어 종업원을 괴롭히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와는 반대로 종업원 아줌마가 음식을 가져다 줄 때, 우리가 수줍게 주문하는 것을 적을 때마다, 우리는 주문을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감격스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치게 된다.

요리가 나왔을 때, 손님들은 마치 영광스런 경험을 한 것처럼 겸허해지며, 의식에 참여하는 것처럼 경건하게 맛을 보게 된다. 그 영광스런 맛을 음미하며 맛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말로 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마치 최면에 걸려 천천히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교도들처럼 고개를 끄떡인다.

식당 규모가 매우 작은 것이 식당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좁은 관계로 식사를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초조하게 기다린다. 이들은 식사하는 잠깐 동안만 손님이 된다. 먹기가 무섭게 돈을 내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계산서를 지불한다는 느낌보다는 사원에 기부를 한다는 느낌이 든다.

맛에 대한 존경심을 일으키는 곳

이 식당의 인테리어는 소박함 그 자체이다. 먼지가 풀풀 나는 달력, 사방에 붙어 있는 파리똥과 음식 잔여물들, 포마이카 테이블이 인테리어의 전부다. 세련된 데커레이션이나 실내 장식은 전혀 필요치 않다. 이곳의 데커레이션은 바로 손님들의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이다. 낡은 건물 외관은 좋은 평판을 지닌 오래된 음식점의 분위기를 풍긴다. 데커레이션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단골 손님들은 이 식당 종업원들과 장난을 칠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된다. 그들이 마치 식당의 모든 분위기를 장악한 듯하여 우리는 그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런 음식점들은 정말 맛을 아는 진정한 단골 손님만이 즐겨 찾는 곳이다. 유행에 민감한 식당과 달리, 여기서 손님은 소비자로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맛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식사를 한다. 여기서 손님들은 진정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리의 참된 진리와 식사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다. 불행하게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런 비스트로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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