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최후의 샹그리라
  • 백승기 기자 (fox@sisapress.com)
  • 승인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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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시며, 짜릿하고 경이로운 풍광을 즐기고, 진정한 웰빙을 만끽할 수 있는 부탄은 ‘여행의 성지’이다
 
만약 당신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한다면 부탄 왕국으로 눈을 돌려보라. 흔히 사람들은 부탄을 마지막 남은 샹그리라(Shangri-La)라고 부른다.
한때 지상 낙원으로 칭송받았던 티벳과, 인도 북부의 휴양 도시이자 잎차 산지로 유명한 다지링은 잃어버린 낙원으로 ‘추방’된 지 오래다. 그 두 지역은 이미 정치적으로, 혹은 문명화 과정에서 순수성이 훼손되었다.

 

부탄에는 느림의 여유가 있고 맑은 물과 공기가 존재한다. 모든 농사는 유기농으로 짓는다. 현대인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마지막 웰빙 국가’가 바로 부탄이다. 부탄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겠지만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근대적 의미의 성장을 거부하거나 유보한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거나 무시했으니까.
부탄은 동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적인 불교(라마교) 왕국이다. 인구는 79만명이고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인 46,600㎢, 1인당 GNP는 5백80 달러다. 주요 산물은 쌀·보리·과일이고 생산한 전기의 60%는 인도에 수출하며 언어는 종카어를 쓴다. 부탄 사람들은 부탄이라는 나라 이름보다 드럭 율(Druk yul)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그 뜻은 ‘천둥소리를 내는 용의 나라’이다.

최근 10년 동안 부탄을 다녀간 외국 관광객은 7만명이 채 안된다. 그것은 오랫동안 폐쇄되었던 이 나라의 관광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부탄 관광청의 도지 나딕 관광국장은 “전통 문화와 환경을 지키기 위해 혼자서 하는 배낭 여행을 금지하고 오직 정부가 인가한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허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해발 2,400m에 있는 수도 팀푸(Thimphu)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저소득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냄새가 나지 않고 깨끗하다. 고층 건물과 신호등이 없는 지구촌 유일의 수도로도 유명하다. 부탄이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대량 생산 공장이 없는 저개발 국가라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대량 소비라는 탐욕의 덫에 빠지지 않은 생활 습관은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지 않는다. 농촌 경제는 쓰고 남은 것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리사이클링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팀푸에 고층 건물·신호등 없어

부탄은 법이 없는 나라이다. 사회의 룰은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인데, 최근에는 부탄 국왕이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이행하기 위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부탄 국민은 누구나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의무적으로 전통 의복을 입고 다녀야 하며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거나 강제 노역을 한다. 휴일에는 일부 젊은이들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지만, 아무리 얼굴 생김새가 비슷해 보여도 전통 의상을 입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네팔·인도 등지에서 흘러 들어온 외국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부탄의 전통 문화는 건축에서 잘 드러난다. 부탄에 하나뿐인 공항인 파로(Paro)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전통 양식의 공항 건물이다. 으리으리한 국제 공항에 익숙해진 여행객 눈에는 시시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단아하고 우아한 건축미는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공항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부탄 고유의 건축 양식은 공공 건물에서부터 민간 가옥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원형은 교통과 전략적 요충지에 성채처럼 세워진 종(Dzong)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부터 짓기 시작한 종은 이 나라의 종교·행정·입법·사법 기관이 합쳐진 일종의 종합 청사이다. 그 근처에는 대부분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종은 국가의 주요 업무와 종교를 관장하는 중심지이다. 특히 수도 팀푸에 있는 타시초 종 (Tashichho Dzong)에는 부탄의 거의 모든 중앙 행정기관이 들어가 있으며, 정면 오른쪽 제일 높은 곳에는 부탄 국왕의 집무실이 있다.

 
부탄의 종은 부탄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이하게도 부탄의 모든 지도에는 종의 위치와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사실상 부탄 여행은 종에서 종을 찾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곧 마을과 마을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고산 국가인 부탄의 거의 모든 육로는 차량 두 대가 겨우 엇갈려 갈 수 있을 만큼 좁다. 도로 옆은 수천 길 낭떠러지이다. 이런 길에서 속도를 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차량의 평균 시속은 20km를 넘기지 못한다. 부탄에서는 이른바 문명국의 속도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속도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 해방되어 여유 있게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부탄 여행의 매력이다. 차량끼리 마주치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지나는 차에게 길을 비켜 주는 양보의 미덕이 있다.

일부다처·일처다부 공존

부탄에서 관광객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거의 모든 집마다 처마 또는 대문 입구에 달려 있는 남근 상징물이다. 이는 다산과 다복을 기원하고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한다. 언뜻 보면 부탄이 남성 중심의 사회인 것 같지만 정반대이다. 한 예로 부탄 사람들은 여자가 임신하면 뱃속의 태아가 여자이기를 원한다.

 
남녀 교제도 아주 개방적이다. 혼전 섹스와 이혼이 자연스럽다.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도 있다. 그런데 여자가 이혼을 요구하면 남자는 반드시 이혼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남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 여자가 거부하면 이혼은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합의 이혼을 할 경우 남자는 재산의 절반을 아내에게 주어야 하고 자녀 양육도 여자에게 우선권이 있다. 인간적 감정에 충실할 뿐 남녀 간의 사랑을 제도적으로 구속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지 않는 사회이다.

인터넷·아리랑TV 즐길 수 있어

한국인에게는 부탄이 매우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외양이 우리와 닮았고(몽골리안), 전통 민속이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탈춤과 제기차기를 즐긴다. 쌀로 빚은 전통주는 한국의 막걸리와 맛과 제조법이 거의 같고,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보는 음주 습관도 흡사하다. 부탄의 전통 의상은 우리의 생활 한복을 연상시킨다.

부탄이 현대 문명과 거리가 먼 나라라고 하지만 인터넷과 위성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송출하는 아리랑 TV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인도·네팔을 경유하는 육상 루트를 통하거나 42인승 프로펠러 항공기로 방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24인승 에어버스 A319가 운항되어 항공기 예약도 편해졌다.
 
부탄 정부가 공식적으로 책정한 1인당 하루 체재비는 미국 돈 2백 달러이다. 그중 20 달러는 부탄 현지 여행사 몫이고 65 달러는 부탄 정부가 세금으로 징수하며 나머지 1백15달러는 가이드 비용과 교통, 숙식비이다. 부탄을 여행하기 위한 비자 신청은 3~4주 전에 해야 한다. 오는 7월부터는 국내 3~4개 공식 여행사를 통해 부탄을 여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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