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의 ‘우익 본색’
  • 시미즈 기요시 (필명·일본 현직기자) ()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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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주변국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며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 현직 언론사 기자가 그 내막을 심충 분석했다.

 
  “향후 외무 사무차관으로서의 발언은 신중해주기를 바란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지난 5월27일, 외무성의 야우치쇼타로(谷內正太郞) 사무차관이 한국의 여야 국회의원단과의 비공식 회동에서 한·미 관계와 관련해 ‘미국은 한국을 믿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야우치 차관을 불러 엄중 경고했다. 마치무라 외상의 이런 행동은 한국측 반발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집중 공격을 받은 야우치 차관은 “비공식 의견 교환인데도 발언 내용이 대외적으로 알려져 당혹스럽다”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그는 또 “발언의 진의는 한·미·일 연계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여러 형태로 한국 내에서 문제시되어 유감이다”라고 해명했다. 야우치 차관은 이런 견해를 한국의 나종일 주일 대사에게도 전했다.

일본에서 ‘매파’로 통하는 야우치 씨가 사무차관에 임명된 것은 올해 1월 일 본 외무성내 차관급 인사가 단행될 때였다.

당시 인사 내용은 현 일본 외무성 정책과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당시의 인사로 인해, 외무성의 정책 중심은 미·일 동맹 강화로 모아졌다. 야우치 차관의 ‘미국은 한국을 믿지 않는다’는 발언에는, ‘미일 관계를 한층 더 강고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엿보인다. 그 전체상이 드러나는 시점은 올해 가을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미·일 안전 보장 협력의 위치를 정하는 ‘방위 협력의 새 지침(가이드라인)’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이 지침에는 ‘테러, 대량살상무기 등 새로운 위협이나 북한·중국의 군사 행동 등 안전 보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국·일본간 역할 분담을 통해 동맹을 강화할 것을 지향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새 지침의 확정에 앞서 올해 가을 고이즈미 총리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회담하여 새 ‘미·일 안보 공동 선언’의 문서 형태로 교환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재일 미군 재편 협의와 함께, 비공식 논의를 계속해 내년 안으로 지침을 확정할 계획이다. 새 지침이 확정되면, 안전 보장 면에서 미국과의 ‘일체화’ ‘군사 동맹화’는 한층 더 진전될 것이다.

지침 재검토 작업에서는 테러 대책과 이라크 복구 지원 등의 국제 활동에서 협력이 가능한 분야를 검토해 역할을 분담하는 것과 더불어, 타이완 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일이 공동 작전 방향 등이 주요 논점이 된다. 또한 지금까지의 미·일 협력을 ‘평시’ ‘무력 공격 사태’ ‘주변 사태’로 3분해 규정한 데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자위대에 의한 재일 미군 지원, 일본의 전체적인 침략 배제를 위한 준비 등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 구조로 크게 바뀔 전망이다.

야우치 차관 돌출 발언, 왜 나왔나

미·일 정상 회담에서는 재일 미군 재편 문제도 논의될 예정이지만, 일본측이 표면으로 내세운 ‘오키나와 부담 경감’과는 동떨어진 내용이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측은 전략적인 입지 조건이 좋은 ‘오키나와’를 결코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 해병대를 오키나와에서 괌 등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구상도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측 처지에서는 실익이 없는 것이어서 공론에 그칠 전망이다. 재편 문제도 미군 주도로 진행될 것이고, 외무성이 미국측의 요구를 ‘묵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다.

일본 외무성 정책 노선이 미·일 동맹 강화로 굳어진 배경에는 외무 관료로서는 최고위인 사무차관에 야우치 씨가 등장한 것 외에, 눈여겨 보아야 할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야우치 씨와 동기로 입성(入省)해 일본 외무성 ‘넘버2’ 자리에까지 올랐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현 외무 심의관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미·일 동맹 강화 노선에 의해,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여온 다나카 씨가 올 여름, 외무성을 퇴임할 것이라는 정보까지 나돌고 있다.

그의 후임으로는 야부나카 미소지(藪中三十 二 ) 외무 심의관(경제 담당)이 유력시되고 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일본의 대미 추종형 외교 노선을 크게 전환시킬 만한 인물은 아니다.

 
다나카 씨의 사퇴로 일본의 대북 관계 전략 구조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일률적으로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북풍과 태양’을 예로 든다면, ‘북풍’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사태가 계속될 것이다. 과거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 회복에 공헌한 것은 다나카 씨가 제안했던 두 번에 걸친 고이즈미의 전격 방북이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주된 관심사는 ‘지지율 회복’, 다나카씨의 정상회담 주선 목적은 ‘북일 국교 정상화의 실현’. 이 두 개의 이해 관계가 일치해 두 번의 방북이 실현되었으며, 이는 일본 외교사에도 남을 쾌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와 납치 문제가 불거지면서, 북·일 관계는 교착 상태에 있다. 또 북한의 핵 실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어, 6자 회담의 앞날도 밝지 않다.

북한 몰아치기 ‘북풍’은 계속된다

북한의 정태화 북·일 교섭 담당 대사가 경질되자 일본 외무성 안에서는 ‘북조선도 (외교)채널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의 한 간부)며, 대북 전략을 새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외교 악순환은 현재의 수준 이상으로 애국주의 색채를 띠는 모습으로 나타나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중국.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관련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일본 최남단 오키노토리 섬(?ノ鳥·도쿄도 오가사와라)을 둘러싸고 ‘섬’이냐, ‘바위’냐가 논쟁이 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이곳이 자기네 관리 하에 있다는 것을 호소하기 위해 ‘오키노섬 일번지’라고 쓴 간판을 6월 안으로 설치한다. 중국측은 유엔해양법 조약에 기초해 ‘사람이 거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 지점을 ‘EEZ 설정이 불가능한 바위’라고 주장한다.

 
오키노토리 섬은 둘레 약 11m의 산호초이다. 이 곳은 태풍이 통과하는 지역이어서 침식이 일어나 밀물 때에는, 산호 내의 ‘히가시코토(東小島)’ ‘기타코토(北小島)’를 합쳐도 3평이 채 안되는 꼭대기 부분만 해면상에 드러난다. 국교성 직원은 일년에 두 번, 유지·보수를 위해 이 지점을 찾는다.

중·일간 ‘바위냐, 섬이냐’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는 이 섬에 ‘간판’을 설치하는 강경 방침은 외무성 후원이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국교성 단독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닌 것이다. 또 오키노섬 주변에서는 미군이 주시하고, 감시하고 있다. 미·일 동맹에 더 한층 기운 매파가 세력을 강화한 외무성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외무성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타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국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중국 국가 수상과 자카르타에서 회담을 갖고 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했으나, 중국의 반일 시위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판단한다’고 얼버무렸다. 야스쿠니 참배를 하면 중국의 반일 감정이 더 세차게 타오를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1년에 한번 야스쿠니 참배’라는 원칙을 파기하면, 이는 ‘국채 30조엔 한도’ 공약 파기에 이은 또 다른  공약 위반이 된다. 외무성 안에서는 ‘총리의 아킬레스건은 내정보다는 외교다’라는 견해가 많지만, 총리의 독주를 멈추게 할 사람은 없다.

이렇게 한국·중국과의 마찰이 식기도 전에, 고이즈미 총리의 의향에 따라, 외무성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입에는 이상할 정도로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최근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 5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서두에서는 역사 인식에 대해 언급하며, 전후 50년(1995년) 당시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 수상이 밝힌, 과거의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속으로부터 사죄하는 마음’을 되풀이했다.

“고이즈미 아킬레스건은 내치 아닌 외교”

또 아시아·아프리카 지역과의 우호 관계 강화를 지향하여, 정부개발원조(ODA) 증액을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경제 지원 방침을 내걸었다. 연설은 말하자면 전후 60년에 즈음한 일본 정부의 대 아시아·아프리카 외교의 지침을 밝힌 셈인데, 10년 전 ‘무라야마 담화’의 갑작스런 인용은 한국·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입장에서 보면 기이한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총리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돌이켜 보며 ‘(일본은) 평화 국가로서 발전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고, 이 뜻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고 언명했다. 역사 인식 문제로 반일 시위가 격화하는 중국 상황을 고려하는 태도를 내비침으로서, 상임이사국 진출의 적합성을 호소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 연설 대본의 지은이는 당연히 외무성의 관료이다.

또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경제 개발과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0.7%의 목표 달성을 지향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방재·재해 복구 대책을 위해 앞으로 5년간 25억 달러 이상의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상임이사국 진출 성사에 열쇠를 쥔 아프리카를 의식해, 아프리카에 대한 ODA는 ‘무상 자금 협력’을 중심으로 3년간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외교 정책의 기둥은 ‘아시아 각국과의 협조’보다는, ‘돈으로 상임 이사국 자리를 사는’ 일에 두어져 있는 셈이다.

일본 외무성의 외교 정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수상 관저나 방위청, 여당과의 매카니즘도 중요 요소다. 특히 역사적으로 외무성과는 ‘견원지간’이었던 방위청과 외무성이 최근 와서 한·중 양국에 대한 강경 노선에 발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방위청의 논리에, 외무성은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분고분 따르고 있다.

방위청은 지난해 말 ‘방위 대강’을 확정해 중국이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해양 자원 권익을 둘러싼 대립’과 ‘센카쿠 제도 영유권 문제’ ‘중국·타이완간 분쟁의 파급’ 등 3가지 경우를 구체적으로 상정했다. 앞으로 방위력 정비를 위한 예측이기는 하지만,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동중국해 가스유전 개발이나 센카쿠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국측의 반발을 자극할 각본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같은 배경 뒤에는 자민당 ‘국방족(國方族)’의 강한 뒷받침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아래 관련 기사 참조).

외무·방위 양 기구의 미묘한 균형 위에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총리, 즉 고이즈미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논포리(non-political)'에 속한다. 쉽게 말해, 외교에는 별 흥미가 없는 총리이다. 유엔 상임이사국 가입에는 강한 의욕을 보이지만, 아시아 외교를 적극 추진하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북 외교도 지지율 향상이 기대되면 적극 나서지만, 교착 상태가 되면 그것을 타파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다나카 히토시 외무 심의관이 퇴임하려는 중이어서, ‘불 속의 밤’을 스스로 줍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타이완 관계만은 외무성 노선과 동일하며,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은 마지막까지 관철하려 하고 있다.

지난 5월1일, 고이즈미 총리를 태운 정부 전용기가 동남아시아와 유럽 방문을 위해 일본을 떠났다. 이 전용기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룩셈부르크로 비행했다. 그런데 전용기는 이슬라마바드를 이륙한 다음, 아라비아해로 남하해, 이라크 국경을 따라 날다가 레바논 베이루트·지중해를 거쳐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소요 시간은 10시간. 이슬라마바드에서 카스피해 상공을 지나 유럽으로 들어가는 길이 거리·시간 면에서 훨씬 더 짧다.
 
고이즈미는 어째서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까. 총리는 이라크를 전격 방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을까. 총리는 ‘이라크를 돌연 방문해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고 그 가능성을 부정했지만, 그의 뇌리에 ‘일본의 군대를 총리의 입장에서 위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공로 설정은 ‘안전상의 고려’였다고 일본 정부는 해명하지만, ‘최소한 하늘에서라도 이라크에 주둔한 자위대를 보고 싶다’는 총리의 생각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무능한 외교 정책과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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