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핵탄두를 달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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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축구’를 구사하는 박주영의 등장으로 한국 축구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뜨렸다. 다른 스타 플레이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박주영만의 ‘4대 비밀 병기’는 무엇인가.

 
한국의 6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박주영(20·FC 서울)의 발에서 이루어졌다. 실마리를 풀지 못해 끌려가던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박주영은 천금 같은 동점골로 팀을 나락에서 구했다. 이어진 쿠웨이트전에서도 박주영은 전반 선제 결승골로 승부의 균형추를 단숨에 한국으로 돌렸다. 전남 황선홍 코치는 “우크베키스탄 경기에서 박주영이 골을 터뜨린 게 원정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6월 9~10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알리는 거의 모든 일간지가 박주영의 사진을 머리 기사로 올렸다.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한 단 두 경기를 통해 박주영은 ‘차세대’ ‘기대주’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대표팀 공격수 투톱의 한 자리는 박주영 몫이 되었다. 이제 나머지 자리를 놓고 안정환·이동국·차두리·설기현·김진용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 축구는 박주영의 시대다. ‘성장 가능성 무한대’라며 열을 올리던 스트라이커 히라야마(20)에 대한 일본의 자랑은 박주영의 기세에 눌려 쏙 들어갔다. 박주영은 한국 축구가 바라던 이상적인 스트라이커에 가장 근접해 있다. 축구팬들은 박주영이 한국 축구 100년 과제인 문전 처리 미숙이라는 고질을 타개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박주영이 뛰는 경기에 구름 관중이 몰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시즌 평균 관중 1만2천4백18명이던 박주영의 소속팀 FC 서울의 올 시즌 평균 관객은 2만8천6백58명. 구단에서는 박주영이 게임당 1만5천의 관중 동원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박주영 효과는 현재 프로리그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다. 

천부적 골 감각

박주영은 ‘축구 천재’로 불린다. 박주영·차두리·이천수·최성국 등을 지도한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주영이는 두리·천수·성국이가 부족한 부분을 모두 가졌다”라고 말했다. 박주영에게는 차범근·최순호·황선홍·안정환·이동국 등 걸출한 스타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것이 있다.

 
첫째가 천부적인 골 감각이다. 박주영은 청구고 시절 33경기에서 47골을 기록했다. 고교 1년 선배 김동현(수원 삼성)이 골잡이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주영은 1학년 때는 사이드 어태커, 2학년 때는 미드필더로 뛰었다. 스트라이커로 나선 것은 김동현이 졸업한 고3 때부터다. 이때부터 박주영의 골 감각은 빛을 발했다. 2003년 주영은 4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04년 전국대학선수권 득점왕, 아시아청소년대회 득점왕 등 출전한 대회마다 득점왕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청소년대표로 출전한 16경기에서 17골.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일본전부터 카타르 8개국 초청 대회 일본전까지 무려 6경기 연속골 기록을 세웠다. 올 프로 무대에서 9골로 전체 2위, 국가대표로 출전한 2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박주영은 찬스만 잡으면 흥분하는 여느 공격수들과 차이가 있다. 공을 세게 차지 않는다. 박주영은 “자신이 있어서 골 찬스가 나면 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도 침착할 수 있다는 게 나 자신도 놀랍다”라고 말했다. 박주영은 그의 냉철한 킬러 능력이 잡념 없이 경기를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신앙심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박주영은 공을 차기만 하면 하나님이 도와준다는 확신이 있다고 한다(상자 기사 참조).

부드럽되 강한 테크닉

두 번째, 박주영은 공을 쉽게 찬다. 고1 때 브라질 지코클럽에 유학한 것이 그의 축구를 한 뼘 자라게 했다. 그의 스타일이 호나우두와 닮은 것은 이 때문이다. 고교 시절 박주영을 일찌감치 ‘찜했던’ 조민국 고려대 감독은 “주영이의 부드러운 면에 끌렸다. 감각 자체가 다른 선수들과는 달랐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박주영이 점점 더 쉽게 공을 차고 있다고 한다.

박주영은 자신의 강점을 “막 헤집고 다니는 돌파력과 드리블이다”라고 꼽았다. 아시아청소년대회 결승에서 중국 선수 4명을 제치고 넣은 슛은 마치 축구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박주영은 볼을 세우는 법이 없이 그대로 처리한다. 드리블의 보폭도 짧고 킥의 궤적이 짧아 슈팅 타이밍이 빠르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순간 스피드가 다른 공격수에 비해 빠른 것이 파괴력을 높이고 있다.

영리한 머리

세 번째, 박주영은 영리하다. 박주영은 쉽게 패스를 받는다. 볼을 받을 장소를 미리 찾아가 있다.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능력도 탁월하다. 잉글랜드의 주전 골잡이 마이클 오언과 흡사하다. 동료들이 공을 안 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박주영은 이 능력을 기자에게 ‘잔머리’라고 했다. 박주영은 “잔머리를 잘 굴리는 편인데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이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박주영은 대구 반야월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IQ 150에, 공부도 1~2등을 도맡아 했다. 뛰어난 머리 덕분에 박주영의 부모는 운동보다는 공부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박주영은 이미 축구에 빠져 있었다. 부모 모르게 축구를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는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갔다. 그러기를 한 달. 하지만 부모님께 덜미를 잡혀 3개월 정도 축구공을 차지 못했다. 박주영을 지도한 시덕준 감독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고 부모를 설득해, 박주영은 축구화를 신을 수 있었다.

 
남다른 생활 자세와 낙천성

네 번째, 박주영은 다른 스타플레이어와는 생활 자세가 다르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새벽 3시에 들어간 박주영은 6시 새벽 훈련에 나갔다. 훈련과 기도는 빼먹는 법이 없다. 지인들은 주영이가 잡기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한다. 박주영은 주량이 맥주 한두 잔이지만,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대구에 있는 교회에서 만난 한 살 연상의 여자 친구 외에는 여자와 관련해 들리는 소리도 전혀 없다. 스타가 된 후 연예인들과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던 몇몇 선배들의 생활은 박주영과는 거리가 멀다. 박주영의 소속팀 FC 서울 고정운 코치는 “생활 자세에서 다른 선수와 견줄 수 없다. 축구밖에 모르는 성실함 때문에 주영이는 차범근 감독처럼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박주영은 스타플레이어로 집중되는 관심 속에서도 선배들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경기가 끝나면 박주영은 반드시 상대방 수비수와 골키퍼를 찾아가 인사한다. 선배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프로 리그에서 박주영이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거친 반칙성 수비를 당하지 않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박주영은 “막내니까 인사도 잘하고 청소도 열심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왕따당한다”라고 말했다.

낙천적인 성격도 보탬이 된다. 박주영은 밖에 나가면 여간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 웃고 농담 잘하는 분위기 메이커다. 6월3일 매니저의 부인에게는 전화로 생일 축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팀 동료들은 박주영을 ‘쭈’라고 부르고 귀여워한다. 

6월11일 시작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는 박주영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박주영의 기술이 세계에 통할 것인가라는 의문보다 강행군을 소화해온 체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민국 고려대 감독은 “전후반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과 근력을 보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주영은 “월드컵 예선을 마치고 피로가 쌓여 발목에 통증이 조금 있지만 이번 청소년대회에서 체력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매니저 이동엽씨는 “주영이가 세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뒷산에 올라가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산에 규칙적으로 오른 것이 하체 강화에 큰 도움을 줬다. 체력에 대한 걱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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