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리스트는 있는가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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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비상…구여권 인사 가운데 잠 못 이루는 사람 많을 듯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것인가? 김우중 회장 귀국과 함께 정치권이 부산하다. 정치권의 관심은 ‘김우중 리스트’로 모아진다. 검은돈을 받은 정치인 명부는 ‘살생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우중 리스트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대우경제연구소장 출신인 이한구 의원은 지난 6월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회장이 귀국한다니 잠 못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9일 이의원을 의원회관에서 만나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이의원은 “치밀한 김우중 회장이 빈손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의원은 “정치권으로 흘러간 비자금의 실체를 공개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김회장 판단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김우중 리스트와 관련해 김씨는 딱 한번 공식 해명을 한 적이 있다. 도피 중인 2003년 7월, 대리인 석진강 변호사를 통해서다. 당시 석변호사는 항간의 의혹에 대해 “리스트는 존재하지도 않는 데다,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신변의 안전을 위해 활용한 적도 없고, 앞으로 활용할 생각도 없다"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 공식 해명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리스트가 있는데 ‘몰리면’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한 여권 인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어 김우중 후폭풍을 예고했다. 대우 위기가 시작된 1998년 민주당 고위직을 지낸 이 인사는 ‘김우중식 로비’를 ‘적재적소 올인’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중 회장은 꼭 줄 사람한테 몰아준다. 대우가 넘어가기 전에 총공세를 했을 것이다. 나한테도 학연 ·지연을 통해 김회장이 수 차례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대뜸 자동차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더라. 그런 사람이다. 상당수 정치인이 김우중 돈을 받았을 것이다.”

이 여권 인사는 김우중씨가 입을 다물고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김씨가 구명용으로 리스트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고비 때마다 정치권과 ‘딜’을 통해 난국을 타개했다. 노태우 정권 때, 김씨는 국책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에게 직접 1백50억원을 제공했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수사 때 밝혀진 사실이다. 당시 김씨는 뇌물죄로 사법 처리되었다가 사면 복권되었다.

1992년 대선 때도 김씨는 줄타기를 했다.  김우중씨는 YS에게 반기를 들고 대권 출마를 저울질하던 이종찬씨와 박태준씨를 지원 사격했고, 김씨 자신의 출마설까지 돌았다. 그런데 그 이종찬씨를 주저앉힌 사람이 바로 김우중씨였다.  대신 그는 문민정부와 통 큰 ‘딜’을 했다는 것이 정치권과 재계에서 회자되는 김우중식 돌파수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에서는 김우중씨가 특유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치권에서는 실제로 김우중 리스트가 공개되면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현정권보다는 지난 정권의 여야 실력자들로 보고 있다. 베트남에서 김우중 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김종률 의원은 “대우가 어려워진 것이 1998~1999년이다. 로비를 받았다면 당시 여야 정치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선 자금(1997년)과 관련한 메가톤급 폭로가 아니라면, 예상 외로 김우중 후폭풍은 ‘미풍’ 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17대 국회는 초선이 대부분이다. 공개되더라도 상처 입을 현역은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종빈 총장, 김우중 리스트 파헤친 경험 있어

김우중 리스트와 관련해 관심을 가지기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2001년 대우사건 수사 당시와는 달라진 분위기다. 당시 검찰 수사 라인은 정치권으로 흘러간 검은돈과 관련해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표출하지 않았다. 이유는 열쇠를 쥐고 있는 김우중씨가 도피 중이고, 풍문 외에는 수사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같은 판단을 한 당시 수사 라인이다. 2001년 대우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사건을 맡았다. 박순용 총장, 신승남 대검 차장, 김대웅 대검 중수부장이 수사 라인이었다. 하지만 꼭 1년 뒤, 총장까지 역임한 신승남 전 총장(사시 9회)과 검찰 내 호남 인맥을 대표하는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13회)은, DJ 측근들이 연루된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불구속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때 선배 검사를 소환해 조사하고 기소까지 한 ‘독한’ 후배(사시 15회)가 바로 현재 김종빈 검찰총장이다. 김총장은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맡아 공적 자금 수사까지 했다. 그때 김총장은 김우중 리스트의 일부를 파헤치기도 했다. 최기선 전 인천시장, 송영길 의원, 이재명 전 의원 등이 김우중씨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사법 처리되었다.

일단 법적으로 김우중씨는 2001년 5월부로 기소 중지된 상태다. 관련자들의 공소 시효가 자동으로 정지되었다. 김우중씨가 입을 열고 정치인의 혐의가 드러나면 뇌물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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